항상 생각해 왔다.
언젠가 글을 쓰게 되면 외삼촌 이야기를 가장 먼저 써야지 하는....
아무래도 삼촌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한다.
삼촌은 6남매 중 둘째이자 우리 엄마의 바로 아랫 동생으로 공사장에선 솜씨 좋은 목수셨다.
큰 잠자리 선글라스에 약간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나팔바지를 입고 잔뜩 포즈를 취한 사진 속의 젊은 시절 삼촌은 꽤나 멋쟁이셨던 것 같다.
게다가 삼촌은 나름 얼리어답터셨다.
새로운 가전제품이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집안에 들여놓으셨기 때문에 외갓집에 방문할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 질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사는 외로움이나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삼촌에게 오빠와 나는 첫 조카들이었다.
그래서 삼촌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 했고, 애정 듬뿍 담아 용돈도 자주 주셨다.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내가 기억하는 삼촌은 늘 취한 모습이었다.
가족들과 자주 언성을 높이며 크고 작게 싸우는 장면들이 낯설지 않을 정도였고, 함께 사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나이 많은 자식의 그런 모습을 영 못마땅해하셨다.
물론 다른 가족들도 술만 찾는 삼촌을 좋아할 리 만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의 결혼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가족들은 결혼식을 앞두고 고민을 했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기에 알코올 중독에 가까웠던 삼촌이 조카 결혼식이라고 기분이 좋아 술에 취해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예식이 끝나는 대로 다른 이모와 이모부들에게 삼촌을 모시고 가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드디어 결혼식날.
신혼여행을 막 떠날 무렵 무사히 결혼식이 끝났음을 알게 된 나는 엄마한테 전화로 여쭤봤다.
"삼촌은?"
"어~ 네 삼촌도 그날이 중요한 날인 줄 알았는지 술도 거의 안 마시고 집으로 갔어."
엄마의 말씀을 들으니 안도와 함께 괜한 걱정을 했나 싶어 삼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미안함은 예식사진을 보고서는 더욱 커졌다.
양가 친지들과 찍은 가족사진에서 유독 퀭한 눈에 가무잡잡한 낯빛의 삼촌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정갈하게 양복을 입고 희미하게 웃으시며 앞을 바라보시는 모습에서 조카를 생각하는 마음과 당신이 스스로 얼마나 조심했을지 짐작이 되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미안해 삼촌~~~"
하지만 이 말은 끝내 전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삼촌은 눈을 감으셨다.
간이 많이 손상되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50대 한창인 나이에 돌아가신 삼촌을 생각하면 받은 것만 기억이 나고 무엇하나 챙겨드리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다.
무엇보다 예식사진에서의 삼촌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더더욱 그렇다.
삼촌한테 예식장에 와주셔서 고맙다고 말할걸.... 그때 쓸데없는 걱정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걸....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하지 못한 이 말들은 마음 한 켠에 늘 머물고 있는 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