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걱정되면 술을 끊어!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다른 아파트들 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이 맑게 빛나고 있다.
행복하다.
오늘도 어제 보다 행복하다.
분명 속에서 도파민이 뿜 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새벽에 테니스 했으니 도파민 증가치가 기준보다 130%, 막걸리 한 잔 곁드렸으니 기준에 200% 증가가 된 것이다.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선 다음, 자동차 도로를 피해서 정평천가를 30분 동안 천천히 걸어서 클럽에 도착했다.
걸어오면서 기순형님한테 전화했었다.
도착순서 8번 전에 나와야 한다고...
주말 토요일은 코트에 불이 켜지는 5시 50분 전에 회원 8명 이상이 나온다.
코트의 면이 2개라서 8번까지 순번대로 시합을 하게 되면 9번부터는 약 40분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이때 정해진 파트너들이 돌아가면서 순서를 기다리게 되는 데 어긋나면, 함께 플레이를 하기가 어렵다.
기순 형은 5번으로 나왔다.
기순 형과 의 플레이는 일주일을 기다리고 있을 만큼 재미있다.
실력도 비슷하거니와 게임 중에 오가는 잡담과 농담이 승부를 떠나서 많은 즐거움을 준다.
광치리와 광파리, 케미가 딱!딱! 맞아요. 그리 잘났나? (운율과 추임을 넣어서)
물론 시합이니 이겨야 한다. 이겨야 더 재미가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겨야 형님을 놀려 먹을 수 있다.
지면 당연히 놀림을 당한다.
기분 나쁘지는 않다.
기순 형은 후배라 해서 동생이라 해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이 부분을 잠깐 짚어 본다.
기순 형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형이나 선배들은 대 부분 겸손하고 말에 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친절함을 택하는 사람들이다.
후배라 해서 다르지 않다.
좀 친해지고, 가까워졌다는 이유로, 뭔가를 가르치고, 도와준다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살면서 아직 자신이 한 말들로 인해 험한 꼴을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스럽기가 그지없고, 한심하고 상종하기가 싫어진다.
내가 어떤 클럽을 탈퇴한 이유도 이 부분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있긴 했지만 탈퇴를 결심한 내밀한 진짜 이유이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말조심이다.
얼마 전에 카톡방에서 술과 말에 대한 작은 논쟁이 있었다.
술의 폐해 중의 하나가 말을 함부로 하게 하여 사사로운 시비 거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술을 마시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같이 술 마시지 않는다. 맨 정신인데 말을 함 부로 하는 인간은 아예 안 만난다.
말은 그 사람의 인품을 담은 그릇이다.
똥이 담긴 그릇을 옆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예상한 대로 기순 형과 상대하여 첫 게임을 하게 되었다.
막걸리 다섯 병 내기!!!
결과는 5대 5
다소 싱겁긴 했지만 팽팽하여 긴장감을 주는 게임을 끝냈다.
비겼지만 오늘은 기순 형님이 막걸리를 산 다고 한다. 지난번 내가 샀던 것을 기억하시나? ㅋㅋ
막걸리 1병과 치즈 다섯 장!(체다치즈는 5장 들어있다)
편의점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새벽부터 편의점에 앉아서 술을 마신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니 또 한 마디 하겠다.
남의 인생에 너무 참견하지 말라. 삶을 사는 방식과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다 다르다.
타인의 삶과 방식을 존중할 줄 알아야 자신도 존중 받을 수 있다.
정말 참견하고 싶다면 와서 지갑을 연 다음 직접 말해 달라. 그렇지 않고 당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은 다면 신경을 꺼 달라!
당신의 맘에 안든 다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남의 인생에 간섭하거나 껴 들어서는 안된다.
시월이라 혼사가 많은 탓에 딱 한 잔만 드시고 형수님 모시고 천호동 예식장에 가신 단다.
그래도 좋다.
우린 술도 좋아 하지만 일주일 간의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는 걸 더 좋아한다.
중요한 것은 시시콜콜이다. 무거운 인생이야기나 교훈 보다 가볍고 유쾌한 정보들이 더 좋다.
찰리 형님이 합류했다.
내가 한 병 사드린다 했더니 굳이 기순 형이 사 줘야 마신다 한다.
챨리식 어리광? ㅋㅋㅋ
두 사람이 동갑이라 서로 주고받는 도움이 많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둘 만의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행사 상품 안내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횡재 수가 있나? 칭따오 650ml 병맥주 4개의 만원! 찰리 형님 한 병!, 기순 형님 한 병, 나 한 병! 한 병 남았네?
멀리 명배 형님이 오신다.
편의점파 완성!!!(영순, 철수가 빠졌다. 과반 이상 참석!!!) 명배 형님이 맥주 한 병 차지!
아무래도 오늘은 막걸리 추가는 어려울 듯하다.
나 역시 약속이 있다. (점심, 저녁 둘 다 가족모임이다.)
이야기 중에 건강검진 이야기가 나왔다.
순간 걱정이 된다.
나 같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 부분 가지는 걱정 아닐까?
2년에 한 번 받는 검진 때마다, 혈압을 걱정하고, 간수치, 혈당 등등
그중에 단연 걱정되는 것은 암진단이다.
암이 많이 극복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까지 전체사망률의 30% 내외를 차지할 만큼 매우 높다.
형 들은 60이 넘었고, 나는 아직 조금 남았다.
그래서 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술을 끊을 자신이 없다.
알코올이 도파민 기준치의 200%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300% 정도 되는 것 같다.
퇴근하고 와이프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에서 막걸리는 빠질 수 없다.
막걸리가 없는 식사는 길어야 15분인데 반해 막걸리와 함께 하는 식사는 30분 이상이다.
이 시간에 하루에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적어도 우리 부부의 하루 대화시간은 30분 이상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와이프의 테니스 레슨이 있는 화, 목요일에 저녁반 클럽회원과 목마름을 참고 끝낸 경기 후에 돌아오면서 빨대로 마시는 맥주 한 캔의 시원하고 짜릿한 맛! 이 마법스런 맛은 절대 거부할 수가 없다.
주말 등산과 가족 모임에서도 막걸리는 친목의 증폭제이자 윤활제이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만약 이 번 건강 검진에서 나쁜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지?
나는 어떤 삶은 살았었나?
그 동안 술을 많이 마신 것이 후회되지는 않을까?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하지?
.
.
.
신호가 바뀐다.
일단 건너야 한다.
건너면서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 본다.
파란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 나가고 있다.
다른 어느 쪽에서 부터 구름은 다시 나타나겠지?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
생노병사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숙명인데 걱정해봐야 뭐하겠는가?
행복한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