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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달 Dec 08. 2023

추억을 소환 한다.감악산입니다

출렁다리-범륜사-화전민터-운계능선-감악산정상-임꺽정봉-장군봉-범륜사

지난 수요일에 어금니 쪽 이 세 개를 임플란트로 시술한 터라 이번 산행에 동참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이 번 시술은 며칠이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를 않고 여분의 진통제를 먹어야 할 정도 아프다. 그 좋아하는 술은 당연히 못 마신다.

금오산 산행은 친구들과 제주도여행으로 못 갔는데, 이번에도 못 가면 동네에는 나 혼자 남는다. 아픈 채로 덩그러니 혼자 남아서 TV만 보게 될 터인데, 그럴 바에야 합류하는 편이 속이 편하다. 뒤풀이 막걸리의 유혹이 대단하겠지만...

그리고 감악산은 꼭 한 번 가고 싶었다. 군대시절 악몽 같은 유격훈련을 받았던 감악산유격장이 있는 곳!

그때는  부대가 있는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세월은 진통제의 약효같이 고통의 순간을 지우고, 추억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다.

처방받은 항생제와 진통제 털어 먹고, 여분을 타이레놀을 챙긴 다음 산악회에 합류했다.

형님, 누나, 아우들을 한 주 못 봤는데, 무척 오랜만에 보는 듯이 많이 반갑다. 혈연보다 더 자주 만나는 이웃사촌님들이다.


감악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서 1시간 30분 남짓해서 출렁다리 입구에 도착했다.

감악산 출렁다리는 설마리 계곡을 연결한 제법 긴 현수교로 잿빛 숲 속을 가로지르는 빨간 다리가 예뻐서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한다. 어느 편 에세이에 지자체마다 출렁다리를 만들어서라고......... 비아냥거렸었는데,

여기는 이 다리가 없으면 안 되겠다. 범륜사 쪽으로 가야 하는데 여기서 보니 계곡이 깊고 거리가 있어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려면 매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니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갔다.


구름을 밟고 딛는 듯이 튕기듯  공중 다리를 사뿐사뿐 건너서 언덕을 올라서니 호랑이 담배 먹든 시절을 만난 듯이 신선의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신선이 범을 타고 다녔을 법한 이곳에 자리를 잡아 이름이 된 듯한 범륜사를 스치듯 지나니 흑룡 한 마리가 연못에서 승천할 듯이 하얀 날개를 펴고 승천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운계폭포이다. 비룡폭포라고도 불리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정돈이 잘 된 운계능선길을 따라 1시간쯤 올라오니 멀리 기상관측소 같은 것이 보여 잠시 멈췄는데, 여기가 까치봉이란다.  먼저 온 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커다란 바위에 어떤 이가 까만 글씨로 정성스레 써 놓았다. 동네에서 까치집들도 눈여겨 찾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더니만  모르고 지나치는 등산객을 위해 배려차원에서 써 놓은 것 같다.

그동안 산에 다니면서 배려심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름철 길가로 뻗어 나온 나무줄기를 정리해 놓거나 빠질 듯한 돌계단을 정비해 놓은 사람, 큰바람에 넘어진 나무를 길 옆으로 치워 놓은 사람, 눈 내린 산길에 길을 터 놓은 사람 등 등,  사소하고 작은 일이지만 감동스러웠던 장면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이 진정한 산사랑꾼이라는 생각을 했더랬었다.  이 번 기회를 빌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본다.


벌써 정상이다. 산행시간이 짧아서 인지? 기상관측소 때문인지? 여느 산 정상에서 느끼는 그런 감동이 없다.

대개 정상에 서면 하늘과 맞닿은 듯한 기분과 험난한 산행길을 이겨내고 완주했다는 성취감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감악산의 정상에는 감격, 환희, 평온, 숭고, 자유, 감사, 성취 등등의 단어 중에서 꺼내어 쓸 만한 단어가 없다. 막걸리를 파는 간이매점도 있다. 기상관측소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어 놓은 도로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간파한 한 장사꾼의 전략으로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기상관측소 앞마당 같은 널따란 장소에  덩그러니 서 있는 정상석에는 눈길 한 번 주고 싶지 않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굽이쳐 흐르는 임진강 옆으로 보이는 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적성면이다. 저곳에서 나의 금쪽같은 청춘의 시간을 국가에 의무봉사 했었다. 하루가 천일 같은 길고도 지겨운 날들이었다. 그 시절 밤마다 두들겨 맞는 일 때문에 생긴 두려움보다도 이유도 없고, 답도 없는 답답함이 나를 더 괴롭혔었다.


늦은 나이에 군대로 소환되면서 번창하고 있던 나의 학원사업이 제동이 걸리게 되고, 인생진로의 대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말하자면 너무 길다. 하지만 덕분에 아내도 만나게 된 셈이 되었고, 교편을 잡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돌이켜보니 새옹지마라(塞翁之馬)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 아는 명리철학자의 카톡 프로필글에서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塞翁之馬)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정말이지 행불행은 변수가 많아서 예측하거나 단정하기가 어렵다. 살아오면서 이것만 해결하면 다 될 것 같아 모든 정성을 기울였던 일이 발목을 잡는가 하면 사소하고 별일 아니다 싶었던 일이 내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산행도 마찬가지다. 험하고 거친 산행이 될 것 같아 준비를 단단히 했던 산행이 순조롭고 편했는가 하면, 가볍게 여기고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았던 산행으로 위험에 빠질 뻔 일도 적지 않았다.


부대 쪽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단행본 하나만큼의 추억이 소환되었다.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불광동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시외버스주차장과 유일한 나만의 피난처였던 목욕탕, 그리고 다방과 중국집이 저 마을 어디쯤에 아직도 있을까?

제대하고는 이쪽으로 오줌도 안 싸겠다고 다짐한 저곳을 신혼 때 임신한 아내를 이끌고 다녀간 적도 있었다.

 어쩌면 제대 이후의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해 준 계기가 된 저곳의  추억이 나의 잠재된 기억 속에서 부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나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거지?)

임플란트시술과 가벼운 감기증세로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이번 산행을 선택한 것도 감악산 아래의 기억이 소환시킨 모양이다.


여행은 식후경이다.

회원들은 지난 금오산 산행에서 예상치 못한 산추위를 강렬하게 경험한 탓인지 점심 준비를 단단히 해 왔다.

대 부분이 추위에서 라면, 누룽지 같은 간편하지만 체온을 올려줄 따뜻한 국물류를 가져왔다. 아내도 북엇국을 준비했다. 뜨거운 북엇국에 밥 한 그릇 말아먹으니 감기증세로 추웠던 몸이 금세 따뜻해졌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호프형님이 정성 들여 중탕해 온 따뜻한 정종에 입맛만 다셔야 했다.

이번 산행에는 봉금누님의 대형쉘터가 히트다. 봉금파 대원들이 그 속으로 자리 잡았고, 초대된 몇 회원도 쉘터 덕분에 따뜻하고 여유 있는 점심을 즐겼다는 후일담도 전해 들었다.(내가 가진 비닐쉘터는 이제 버려야겠다 ㅠ.ㅠ)


임꺽정봉으로 향했다.

임꺽정! 홍명희의 소설에는 왜변 때 공을 세웠음에도 백정이라 공을 인정받지 못하자 산적이 되었다는데, 이것은 소설일 뿐이다. 실상은 탐관오리와 외척이 정사를 어지럽히던 명종 때의 산적이다.(문정왕후가 섭정을 하고,  외척 윤원형이 득세하던 시절이다. 늘 그렇듯 이런 시기에 백성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 한쪽으로 몰리면 생기는 현상이다.) 드라마에서 조폭이 아무리 미화되어도 조폭이 폭력배인것처럼  당시의 꺽정의 산적질 중에 부자들과 탐관오리들이 포함되었을 것이고, 대리 복수의 통쾌한 감정이 민초들의 입으로 전해지면서 의적으로 묘사된 부분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임꺽정봉에 다 다르니 신출귀몰했다던 꺽정의 활약은 산세에 힘입은 듯했다. 산적치고는 능력이 꽤 출중했던 것 같다. 그러니 임꺽정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불안하거나, 특정세력들이 득세할 때마다 드라마의 소재거리로 인기가 있었다. 큰 도적이든 작은 도적이든 도적은 없어져야 한다.


임꺽정봉에서 장군봉까지 가는 길! 구름을 헤집고 토해내는 빛 내림이 작은 호수를 둘러싼 크고 작은 봉우리에 떨어져 신비로운 기운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통천문을 액자 삶아 그 풍경을 담아 본다. 그 사이에 사랑하는 이들도 끼워본다. 그리고 앞으로 언제든 소환해 올 수 있는 추억저장고로 옮겨둔다.

내려오며 뒤돌아 보니 깎아놓은 듯한 바위암석이 산 귀퉁이에 우아하고 늠름한 자태로 당당하게 하늘을 지탱하고 있다. 장군봉이다. 어라? 눈앞으로 점점 다가온다.

장군형수다. 늘 기세 등등 하고, 당당하며 거침없는 행동으로 우리를 통솔하심이 장군봉과 닮았다. 그러니 장군이지...

막걸리 못 마시는 아우에게 따뜻한 누룽지 한 사발 대신 먹여주신 아우라지의 수호장군님!

형수! 오늘도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군님의 영도 아래 능선계곡길을 따라 출렁다리까지 편안히 내려왔다.  올라갈 때 구름을 밟듯 사뿐사뿐 튕겼던 흔들림은 내려올 때는 학다리 덩실거림으로 바뀌었다.

신명나는 삶이지 않는가?

유격장에서 죽고 싶도록 힘들었던 고난의 추억과 가슴을 찢어버리고 싶었던 하루가 천일 같았던 그 시절의 추억에 오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두고 감악산을 떠나온다.

구름을 밟고 딛는 듯이 튕기듯  공중 다리를 사뿐사뿐 건너서 언덕을 올라서니 호랑이 담배 먹든 시절을 만난 듯이 신선의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범륜사를 스치듯 지나니 흑룡 한 마리가 연못에서 승천할 듯이 하얀 날개를 펴고 승천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운계폭포이다. 비룡폭포라고도 불리는 이유가 있다.
동네에서 까치집들도 눈여겨 찾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더니만  모르고 지나치는 등산객을 위해 배려차원에서 써 놓은 것 같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굽이쳐 흐르는 임진강 옆으로 보이는 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적성면이다. 저곳에서 나의 금쪽같은 청춘의 시간을 국가에 의무봉사 했었다.
구름을 헤집고 토해내는 빛 내림이 작은 호수를 둘러싼 크고 작은 봉우리에 떨어져 신비로운 기운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통천문을 액자 삶아 그 풍경을 담아 본다. 그 사이에 사랑하는 이들도 끼워본다.
유격장에서 죽고 싶도록 힘들었던 고난의 추억과 가슴이 찢어버리고 싶었던 하루가 천일같았던 그 시절의 추억에 오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한 추억을 함께 두고 감악산을 떠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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