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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달 Jan 02. 2024

광교산 신년산행

소원을 빌다. 아우라지가족의 해맞이산행

2024년이다.

요란스러웠던 2000년대가 시작되고 한 10여 년 정도는 인식했었는데, 그 이후로는 뒤에 붙는 숫자에 대해서 특별히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내온 듯하다.

누군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벤트가 사라진다고 했다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 이유가 아니다.


2016년부터 가족이 된 사람들이 있다. 그전에도 산악회를 통해 만나서 서로 알고는 지냈던 사이인데, 그 해 아지랑이가 산천의 땅밑에서 푸른 새 생명을  밀어 올리고, 가지마다 노랑과 연분홍 꽃들을 달아놓던  어느 봄날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아우라지 강가에서 만든 추억이 가족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가족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글로 쓸 예정이다.)

이후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지 않아도 함께 하는 모든 일들이 이벤트가 되었다. 겨울을 이겨낸 동백꽃과 함께 봄을 맞이하러  남도로 떠났었고, 여름에는 강원도의 계곡이나 강가에서 모닥불에 둘러앉아 별을 노래하며 밤을 지새웠다 , 가을에는 예쁜 단풍잎을 모으러 전국의 산 그림자를 쫒았고, 겨울에는 한라산 눈꽃같이 아름다운 추억을 시간의 가지마다 달아 놓았었다.

만남이 곧 이벤트였다.


검은 토끼가 떠나고, 푸른 용이 등장한 첫날! 아우라지가족은 행복과 안녕을 비는 차원에서 광교산에 오르기로 했다.

애초에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며칠 눈이 내려서 길을 미끄러울 것이고, 어둠 속에서 자칫 위험해질 수 있어 욕심낼 필요가 없었다. 산행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새해 첫 번째로 만나는 늘 보아도 반가운 사람들...

성춘형님과 장군형수! 그리고 맥가형과 꼬미!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정자에 오르는 계단에 올라서니 동편 너머에서 푸른 용이 처음으로 토해내는 여의주 같은 붉은 해가 막 목구멍에서 밀려 나오고 있다. 그동안 광교산에서 여러 번의 일출을 봤었지만 오늘처럼 아름답게 떠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뭇가지에 가려지긴 했어도 그 마저도 예뻤다.

소원을 빌고 싶어 졌다. 특별할 것도 없다.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일 죽어도 털끝 만치도 아쉽지 않도록 오늘을 행복하게 지내자"가 나의 바람이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기적 같은 나의 하루를 보다 의미 있게 채우고 싶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에 행복한 기억, 아름다운 추억들을 더 많이 채우고 싶다.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정자에 다다르니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눈길에 미끄러지며 내려오고 있었다. 일출 볼 욕심에 별 준비 없이 올랐던 모양이다. 모든 준비는 여유로움을 낳는다. 겨울산에 오를 때는 꼭 아이젠을 챙기시라.

오늘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화답을 보내어 온다.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보내 오는 것이다. 올해는 정말 복을 많이 받을 것 같다.

누가 먼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간혹 통화를 하고 오는 사람이나 귀에 이어폰을 낀 사람, 애써 눈길을 회피하는 사람은 제외다.)


오늘 우리 남자들은 산책 나온 강아지들처럼 몇 발 가다 돌아서는 것을 반복했다. 안주인님들의 수다도 이유가 되겠지만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은 까닭이다. 아내 선혁도 심하게 감기를 앓고 나은지가 며칠 안된다.

이 산행으로 완전한 회복을 바랐다.

바람의 언덕 주변에서 라면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뜨끈한 라면 국물이 온몸을 데우니 피로도 추위도 스르륵 녹아내린다. 준비해 온 막걸리 한 병을 나누어 마시며 동생들에게 덕담을 돌리는 성춘형님의 건배사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8년 간 유지해 온 아우라지가족의 행복한 만남에는 성춘형님의 자상함과 배려가 바탕이 되었다. 우리 아우들은 그 바탕에 각자의 물감을 그려 넣었을 뿐이다. 그런데 형님은 언제나 물감에게 그 공을 넘긴다. 도화지가 없는데 그림은 어디다 그리나? 언제나 선을 넘지 못하도록 틀을 만드는 장군형수의 통솔력은 그림의 액자와 같다.

소중한 분들이다.

소중한 마음이 진해 질수록 소중함을 잃지 않으려고 가벼운 말이나 행동도 조심하게 된다.

나이 들면서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라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정상에 올랐다.

얼른 내려가고 싶었다.

아침식사를 하며 뒤풀이 식사는 인근 식당보다는 성춘형님 집에서 하기로 장군형수님이 결정을 내렸었다.

올 연말에는 갖지 못한 송년 파티 때 꼬미가 준비해 놓은 보쌈고기와 과메기, 그리고 형수가 준비해 놓은 문어와 홍어, 이것만 해도 진수성찬이 될 것이라 침이 고여서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바쁜 걸음에도 길은 조금의 물리적 양보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길이다. 언제나 마음의 몫이다.

2024년 갑진년 값진 추억을 하루만큼 묻어 둔 광교산을 내려온다.


장군형수의 진두지휘아래 일사불란하게 행복한 밥상이 차려졌다.  잘 삶아 낸 문어와 보쌈고기, 과메기와 홍어를 첩첩이 쌓고 김과 묵은 김치에 싸서 입안에 가득 밀어 넣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소원을 빌어본다.

이 행복이 용이 뱀이 되고, 뱀이 말이 되고, 말이 양이되고, 양이 잔나비가 되고, 잔나비가 닭이 되고, 닭이 개가 되고, 개가 돼지가 되고, 돼지가 쥐가 되고, 쥐가 소가 되고, 소가 호랑이가 되고, 호랑이가 토끼가 되고, 토끼가 용이되고, 용이 뱀이 되고.... 되고, 되고, 되고....

계속되기를...

갑진년 첫날 값진 새해를 맞이하러 아우라지가족 시루봉 정상에 서다
장군형수의 진두지휘아래 일사불란하게 행복한 밥상이 차려졌다


꼬미가 준비해 놓은 보쌈고기와 과메기, 그리고 형수가 준비해 놓은 문어와 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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