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악회 신년 첫 산행
2024년 갑진년 값진 추억을 함께 할 우암산악회의 신년 첫 산행지는 울산바위다!
오랜만에 설악산에 간다. 설악산은 사시사철 그 명성에 걸맞은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라 하마터면 회장님과 총무님도 참석 못할 뻔할 정도로 신청 경쟁도 치열했다.
새벽 7시 30분! 간택받은 40명의 회원을 태운 버스는 3시간도 안 걸려서 설악동 국립공원입구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이 나온다. 며칠 전에 내린 눈들이 설악의 펼쳐진 산등성이 골마다 하얀 조가비가루가 메워져서 거대한 수묵화의 획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다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케이블카를 이용할 관광객들과 외국인 관광객 몇몇이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다. 신흥사 부근은 대 부분의 설악산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라 이 정도의 사람은 없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흥사에서 울산바위 코스는 비교적 짧은 코스라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오르는데, 귀한 분 하나가 우리를 맞고 있다.
산양이다.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멸종위기종인데 절 입구에서 우리를 경계하며 잔뜩 노려보고 있다.
눈이 덮인 겨울철에 먹이가 부족해서 산 밑에 있는 절 앞에서 얼지 않은 풀을 뜯고 있었는데, 우리가 감히 귀하신 몸의 식사를 방해했나 보다.
속으로는 가소로웠다. 저 놈이 사람을 겁도 내지 않고 째려보기까지 하다니...
아무리 사람들이 유해를 가하지 않는다지만 두려움이란 인간이건 동물이건 위험을 감지하여 신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준비태세에 돌입하거나 대응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생존 확률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정서인데 말이다. 개발이다 뭐 다해서 자연이 훼손되는 이때 저 귀한 분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모를 일이다.
부디, 이 땅에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한 세상 자알 살다가 미련도 후회도 없이 떠나 시길 바라본다.
울산바위코스는 이번이 네 번째이다.
첫 번째는 오랜 전 친구와 둘이 눈이 오는 설악산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 찾아왔었고,
두 번째는 딸아이가 어릴 적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을 동해로 택해서, 첫 시작을 설악산부터 하느라 왔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우라지가족의 여행스케줄 중 하나였다. 숙소가 내려다 보이는 울산바위에서 다람쥐와 놀았던 추억을 만들었고, 오늘이 네 번째다. 산악회원들과는 처음이다.
멀리 보이는 노란 도깨비감투 같은 울산바위의 꼭대기를 바라보며 걷는데 이전 세 번의 기억에 비하여 다소 실망스럽다.
굵은 울릉도호박엿가락을 겹으로 붙여 질서 없이 모아 놓은 엿덩어리 같아서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빛나는 파란 하늘에 담겼는데도 별 볼품이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피라미드에 붙어서 거대한 피라미드의 웅장함과 그 형태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처럼 울산바위 발밑에서 산행을 시작한 탓이다. 그동안의 산행에서도 이 코스를 택하여 왔었지만 그때는 눈이 내리는 흐린 날이었거나 안개로 인해서 울산바위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거대하고 웅장한 울산바위의 모습을 그리며 올랐던 것이다.(울산바위를 제대로 보면서 산행을 하고 싶다면 반대쪽에서 올라야 한다고 한다. 다음에 울산바위를 오게 된다면 그 코스를 택해야겠다.) 이제 남은 것은 정상에서 바라볼 동해바다다. 타이탄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오늘같이 빛나는 파란 하늘과 맑고 깨끗한 공기를 덮고 있을 속초시내와 끝도 없이 이어질 수평선은 타이탄이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계족암 흔들바위를 스치고 곧장 올랐다. 사람이 밀어도 흔들린다는 흔들바위의 신기함이 우스개이야기 소재로 쓰인 지 오래되었고, 몇 명의 사람이 달라붙어 밀어도 흔들리지 않는 흔들바위의 스토리는 추억 속의 재밋거리로 묻어 둔다. 어릴 적 흔들바위는 정말 신기했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보는 반대쪽의 설악의 봉우리들이 장관이다. 대청봉과 울산바위사이 금강굴너머로 공룡능선이 들어있고 더 멀리 대청봉의 정상석도 보인다. 맞나? 맞겠지? ㅎㅎ
설악산은 용아장성만 빼고 한 번씩 다 가본 듯하다. 정상 가까이에 대형거북 한 마리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못 보고 지나쳤었는데, 보는 이에 따라 각자 그려내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편집증이 심해지는 것은 아닐 테고 이 거북형상은 나만 그리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상이다.
올라오면서 그린 기억과 같았다.
깊고 맑음이 풍부한 로열 블루(Royal Blue)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 거대한 타이탄의 어깨를 밟고 서니 밝은 햇살은 바다와 하늘을 이어주고 끝없는 수평선 만이 엷은 선으로 바다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색의 유혹"이라는 책에서 파랑은 그리움이라 했다. 그리운 사람이 떠올랐다. 이 광경을 첨으로 함께 했던 그 친구. 눈 내리는 설악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자 눈이 내리는 그 어떤 날 사진장비를 챙겨 여기를 왔었다. 사진장비를 챙기느라 산행장비를 못 챙긴 탓에 힘들게 비선대 계곡을 걸었고, 간신히 금강굴에서 삼각대를 펴고 눈나리는 설악을 사진에 담았고, 마지막코스로 울산바위에 왔었지만 그때는 눈이 많이 내려 정상에는 서지 못했었다. 일과 여유를 함께 했던 소중한 나의 동료였고, 틈틈이 여행을 함께 즐겼던 친구였다.
벌써 그리운 기억들만 남고 놓고 떠난 지 여섯 해가 넘었다. 저 파랑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친구가 많이 그립다.
그리움은 휘발성이 있다.
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그리움의 기억은 다 날아가고 없고 함께하는 즐거움만 남았다.
소중한 사람들!
그리움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
시간은 언젠가 우리에게 그리움을 건네주거나 그리움이 되게 하겠지만 그 순간이 내일이라 할지라도 아쉽거나 후회 없도록 살아야겠다.
그리움이 그립지 않은 하루! 울산바위가 내게 주는 신년선물이다.
고맙소. 울산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