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달 Feb 19. 2024

푸른 용이 꿈틀대는 계방산

오대산국립공원 (운두령-물푸레나무군락-전망대-노동계곡-야양장-주차장)

구름도 망설인다는 운두령 고갯길에 버스가 세워지자마자 산행을 서둘러야 했다.

올 겨울 마지막 눈산행이 될지도 모르는 산행을 즐기러 온 등산객들로 인해 1,089m 운두령 들머리에는 자동차와 등산객들이 뒤 섞여 혼란스러웠다.

서둘러 산행채비를 하는 데, 어느 여자등산객의 신경질적이고 짜증 섞인 푸념이 들린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왔냐는 것이다.

쳐다보니 실웃음이 나왔다. 예쁜 등산복을 잘 차려입었는데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해서 미워 보였다. 

제 자신도 그중 하나이면서...

저 마음으로 온전한 산행의 즐거움을 알 수 있을까?

얼마나 좋은 산이면 새벽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특히, 겨울 눈산행지로는 알아주는 곳 아닌가?

몇 개의 물음표가 더 떠오르는 것을 멈추었다.

우리 산악회도 이번 산행지가 계방산이 아니었다. 이틀 전 평창지역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은 집행부가 산행지를 급히 바꾸었다. 

제왕산, 함백산, 지난 두 번의 산행에서 멋진 설경을 즐겼는데, 계방산까지 욕심을 낸 것이다.

좋은 산, 아름다운 산을 주말에 즐기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함께 즐기자고요. 


벌써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하산을 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시간대를 피하고 산행 집중도가 높고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야간산행을 즐기러 무박산행을 온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니 오늘 날씨라면 일출이 장관이었을 것 같았다. 살짝 부러웠다.

코로나 이후에  산에서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쓴 멋진 젊은 청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코로나로 인하여 산행의 매력을  젊은 층도 많이 알게 된 것이다. 특히, 그들이 즐기는 SNS에 올릴 멋진 자랑거리가 시시각각 변하는 산에 가득하기 때문인 것이다. 가끔 젊은 친구들의 SNS를 훔쳐보는 즐거움도 만만찮다. 아이디어가 새로워서 참고할 만한 것이 많다. 특히, 젊은이들의 산행샷 포즈는 대단히 창의적이다.


정상까지 1,577m, 남은 거리 488m

고급 카펫을 밟고 걷는 듯  눈 내린 푹신한 산길을 줄지어 걸어 오른다. 

지난 함백산과는 달리 상고대는 증발되었고, 앙상히 뼈대만 남은 물푸레나무 군락들이 맑은 햇살이 받아서 하얀 눈 위에 누워서  그림이 되었다.

헐떡대는 숨을 참고 조여 오는 종아리를 느끼며 오르길 두어 시간 남짓!

확 트인 시야에 태백산맥의 등줄기가 숨겨둔 뼈대를 드러내며 굵게 파도치고 있다. 참고 있던 숨을 터트렸다.

아름답다! 비늘을 곤두세운 푸른 용들이 꿈틀대며 군무를 하는 듯했다.

시리도록 맑고 밝은 파랑이 푸른 용의 군무에 스며들어 보랏빛으로 느껴졌다.

어떤 그림이 이토록 역동적이고 강렬하게 표현될 수 있을까?

눈을 뗄 수가 없다. 뜨거운 기운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아름다운 강산에 살고 있는 뿌듯함이다.


계방산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19년 3월에도 같은 코스로 왔었다. 그때는 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었다.

같은 장소라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이다.

계절과 그날의 날씨, 시간, 온도, 습도 등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다.

지금의 이 감동도 새벽에 여기를 올랐을 그 젊은 무리들과도 또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풍경을 바라보고 이는 "나" 일 것이다.

행복한 기운을 담고 사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고,

사랑하는 나의 배우자와 함께 누릴 수 있는 순간이어서 더 감동적일 것이다.(그날도 똑같았는데??? 뭐지?)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정상에서 감동적인 순간을 인증했다.

그 어느 날 자동으로 올라져 있는 구글의 사진첩에서 이 순간을 발견하고 오늘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힘든 산행길에 따뜻하게 데워 온 뱅쇼(와인 끓인 것) 건네주던 환걸형의 인정과 산행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명배형부부, 그리고 정성 들여 담아 온 담근 주와 수육을 아낌없이 나눠주던 창영형님과 친구분, 회장님, 그리고 이날 함께 한 모든 이들의 미소와 친절함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확 트인 시야에 태백산맥의 등줄기가 숨겨둔 뼈대를 드러내며 굵게 파도치고 있다


비늘을 곤두세운 푸른 용들이 꿈틀대며 군무를 하는 듯했다.
2019년 3월과 2014년 2월!! 같은 장소라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이다.  계절과 그날의 날씨, 시간, 온도, 습도 등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다.
이날 함께 한 모든 이들의 미소와 친절함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울산바위의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