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 금(금악) 오름에 가다.
50살에 남자 놈 셋이 함께 여행을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이 되었다.
그동안 제주도 캠핑과 올레길 걷기, 덕유대의 캠핑, 서울 궁투어 및 문화공간 체험, 경주 문화탐방, 강화도 기행, 수원 화성 둘레 걷기, 욕지도 낚시 등 1년에 서너 번은 여행이나 캠핑을 즐긴다.
여행을 시작했던 그 해 처음으로 제주도에 왔었다. 영실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돈내코까지 여섯 시간 산행 후에 5코스 올레를 걸어도 별로 피곤한 줄 몰랐던 우리가 요즘은 많이 걷지 않는다. 캠핑보다는 휴식하기 좋은 펜션을 찾는다.
여름휴가 때였던 석 달 전과 다름없이...(석 달 전 여름휴가 때도 셋이 제주도에 왔었다. 제주도는 창원과 인천, 용인에 사는 세 친구가 특별한 계획 없이도 만나기에 가장 편한 곳이 된 것이다.)
늙은 거지?
첫날 금요일은 업무 후에 시작하는 여행이라 어차피 늦은 도착이기도 했지만, 돌풍에 비행기도 1시간이 넘게 연착되어 바로 숙소로 가서 와인과 바비큐를 즐겼다. (숙소는 귀농에 성공한 사진작가가 운영하는 애견동반 독채펜션이라 정원이 넓고 환경과 시설이 매우 훌륭하다. 한림읍에 있는 "시선"이라는 곳이다. 광아 고맙다!)
낮부터 불던 매운바람은 한 밤에도 그치질 않았다. 밤새 바람이 짖는 소리에 잠을 설쳐야 했다.
평소에도 홀로 캠핑을 즐기는 광이는 이 바람에도 마당에 텐트를 쳤다. 날이 샌 아침에 들어오면서 바람이 텐트천장을 눌러 대며 코에 닿기를 반복했다는 너스레를 떨었다.
둘째 날은 연박이라 이동이 없어 14 올레길을 가볍게 걷고 들어와 펜션 자쿠지에서 반신욕을 즐기며 보내고, 금오름은 마지막날인 일요일에 광이가 순전히 숙소와 가깝다는 이유로 공항 가기 전에 가보자고는 의견을 냈다. TV예능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와 이상순으로부터 소개되었고, 이효리의 뮤직비디오로 유명해진 곳이라는 것을 덧 붙였다. 그리고 10분 만에 오를 수 있는 오름이라나? (하긴 제주에는 작은 오름이 많으니까)
오름에 가까이 갈수록 10분 만에 오를 오름이 아니다. 생각보다는 크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교적 주변 정돈이 잘 되어있다. 근처에 사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유명세를 탄 후부터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자동차로 올랐던 길을 차량통제하고 주차장도 만들고 걷기 좋게 주변 정리한 한 것 같다고 했다.
곧게 뻗어 있는 나무 숲길을 들어갔다. 피톤치드 가득한 맑은 공기와 냄새를 기대했는데, 분뇨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마을 전체가 축산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탓이다. 정상 분화구에 물이 있어 리틀백록담이라고 불리는 이곳이 제주오름 368개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화구 중 하나라는데 동의할 수 없다.
제법 높이 올라갈 때까지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 그리 세게 불던 바람도 냄새를 다 가져가지는 못했다.
10여분 쯤 올랐을까? 하늘과 억새가 만나는 콘크리트포장길을 올라오니 주변이 환해지면서 아래로 목장과 양돈농가들이 보였다. 목장은 유명한 성이시돌목장이었다. (올라갈 때는 몰랐다. 글쓰기 전에 궁금해서 찾아보고 안 내용이다.)
앞서 가는 이들을 따라 나지막한 콘크리트 길 경계석을 밟으며 몇 분 더 올랐더니 커다란 분화구가 눈에 들어왔다.
정정한다.
제주오름 중에서 인기 있는 오름 중 하나라는데 동의할 만큼 억새와 잘 어울리는 넓은 분화구에 감탄이 나왔다.
잘한 선택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 어떤 선택에도 우리는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셋 중 어느 누구도 불평 없이...
분화구에 물이 차있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까지도 물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고, 몇몇 사람들이 분화구 속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쪽으로 먼저 걸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들이 구름사이를 헤집고 나온 햇빛에 부딪쳐 신비스러운 빛이 났다.
사방으로 펼쳐진 제주 평원의 끝에는 바닷바람을 안고 도는 하얀 풍력발전기가 작은 바람개비처럼 돌고 있고, 크고 작은 오름들 사이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마을의 모습은 감탄과 경외감을 자아낸다.
모든 것이 단순해지고 복잡함이 멀리 흩어진다.
분화구를 따라 돌면서 제주서쪽의 풍경을 마시듯 훑었다. 몇 시간 후에는 다시 만날 일상을 누비고 다닐 활력이 충전되고 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언젠가 일상이 지루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가 올 때면 이곳의 풍경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금오름 탐방 기억을 접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