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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달 Nov 17. 2023

영남알프스 1박 2일 이벤트산행 2부

능동산~케이블카상부하차장~천황산~천황재~내원암~표충사주차장

열린 창 틈새로 맑고 시원한 바람이 코끝으로 들어와 잠을 깨운다.

슬며시 눈을 떠 보니 가려진 커튼 틈 사이로 여명에 쫓겨 달아나는 새벽 그림자가 산 너머로 몸을 감춘다.

숙취가 없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잔 덕분이다. 맑고 깨끗한 배내골의 공기 덕분이다.

깊은숨을 들어 쉬어 몸 안에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채워 넣었다. 나는 정화되고 있었다.


오늘 산행을 위해 속부터 채워야 한다.

조식으로 대파와 콩나물을 넣고 무를 넣어 시원하게 끓인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던 그 맛이 났다. 아무리 찾아도 고기 건더기는 보이지 않고 비게덩어리만 둥둥 떠 올랐던 그 소고깃국, 양파와 무가 고기건더기를 대신하였지만 그 마저도 자주 먹어 볼 수 없었던 음식이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고기와 양파, 콩나무를 듬뿍 들어 있는 오늘 아침 소고깃국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났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 말고는 들어갈 것 이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음식이 의문의 패배를 한 셈이다.

밥을 말아 시원하게 속 풀이를 하니 속이 든든해졌다. 요즘 경상도 음식 절대 뒤지지 않아…


오늘 산행은 A팀과 B팀을 나누어졌다.

20년 된 산악회이다 보니 젊은 시절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녔던 선배님들이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B팀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여행 삼아 이벤트 여행에 참여한 회원과 어젯밤 열정을 불살라서 에너지 고갈 상태의 회원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회원들을 버스에 남겨두고 우린 능동산으로 향했다.


최대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가지사이로 바람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오늘은 바람이 멈춘 가지들 사이에 안개가 들어차서 보석 같은 물방울을 달고 있었다.  물방울에 투영된 우리들이 익살스럽게 보여 웃음이 났다.

능동산 정상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상 옆에는 안갯속에 2미터가 조금 넘는 커다란 원뿔형 돌탑이 우뚝 서 있었다.

누가 저리 정성을 들였을까? 어떤 이유로 저 큰 탑을 세워야 했을까?

산마다 길마다 서 있는 많은 돌탑들을 보며 저 마다 이루고 싶은 것과 바라는 것이 저처럼 많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정상을 조금 내려서자 약수터 하나와 임도가 나왔다. 말 그대로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약수터이다.

흘린 땀이 없어 목이 마를리 없었지만, 만든 사람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한 모금 마셔보니 도시의 수돗물을 정화시킨 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 났다. 물 맛이란 게 원래 이런 거지...


물 한 모금씩 마시고 임도를 따라 1시간을 걸어도 계속 이 길이다.

뭔가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길에서 만난 한 등산객이 다른 등산로가 있다고 알려 준다.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초행길이라 조금만 걸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걸어왔다.

이제 어쩔 수 없다. 케이블카 선착장으로 보이는 건물이 가까이 보인다. B팀 일행들은 저걸 타고 올라와서 천황산 쪽으로 갔을 터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실바람에 넘실 거리고 있는 억새로 가득 찬 너른 평원에 삼거리 표지석(천황재-케이블카-능동산)이 나온다.


산대장님이 어디로 갔는지 없는 탓에 일행들의 불만이 평원을 다 채울 듯 커졌다.

대장님 우린 워쩐데요?

천황재와 케이블카길 사이로 오르막길을 선택하여 올랐다. 이 길이 맞는 듯하다.

아니면 할 수 없고...



천황산으로 가는 길은 온통 진달래 군락이다.

봄날 온 산을 불태웠던 진달래의 순정이 고스란히 억새들에 옮겨 가 있다.

함께 온 일행 중 경남 창녕군 남지가 고향인 한 형님은 어릴 적 동네에서 영축산이 보였는데, 봄만 되면 산이 불타는 듯했다는 말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었다.

진달래 군락 속에 군데군데 서있는 가지 많은 소나무가 군락의 단조로움을 깨어준다.

전국의 산 모양만큼이나 소나무의 모양도 각양이지만 이곳의 소나무는 사방으로 뻗어있는 모양새가 정말 특이하다.


드디어 하늘억새길을 만났다.

이번 산행을 기다리며 기대했던 영남알프스의 풍경이다.

구름과 안개가 뒤 섞여서 하얀 도화지 같은 하늘에 가득 그려진 억새잎들이 다소 쓸쓸하게 보인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 양 옆으로 온통 억새로 가득한 이 평화롭고 고요한 길을 걸으니 그동안 바빴던 일상이 지워지는 것 같다.


천황산 정상이다.

사방으로 확 트인 이 공간에서 가지산, 간월산 쪽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천황산이라는 명칭에 거부감이 들었다.

천황산이라는 지명은 재약산 1봉을 일제강점기 때 바꿔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전에 지명인 사자봉으로 부르자는데 적극 동의한다.

일본에도 일본알프스라는 지명이 있다. 영남알프스라는 지명도 일본알프스를 벤치마킹하여 생긴 지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서 산악회에서 챙겨준 점심 (컵케잌 두 개, 귤 2개, 음류수)를 먹고 나니 먼 산에서부터  파아란 하늘이 조금씩 드러나고, 물러가지 않은 구름사이로 밝은 태양빛이 아직 시들지 않은 산 아래의 단풍을 곱게 비춰주고 있다.

암릉에 올라서니 발아래에 펼쳐진 가을 물결을 타고 항해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을의 향기가 코끝을 감싸며, 바람은 얼굴을 쓸어주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고, 평화로움과 감사함이 선물처럼 내려왔다.


천황재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캐나다에서 살다 온 한 일행에게 물었다.

로키산맥이 있는 캐나다의 산과 비교해서 영남알프스가 어떤지 궁금했다.

웅장하고 멋진 산이 많은 캐나다의 산은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에 산과 호흡하고 즐길 수 있는 한국의 산들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뿌듯했다. 로키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천황재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회장님의 말씀이 지금 재약산을 너머 사자평원을 거쳐서 하산하기에는 시간상으로 어려울 듯하다는 것이다.

많이 아쉬웠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사자평원 밑에 있는 고사리분교가 있는 마을에서 민박하며, 민박집에서 담근 막걸리를 마시며 보낸 추억을 이번에 되살리고 싶었다. 고사리분교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몇 민박집을 그대로 있을까? 하는 수 없었다.

단체산행의 맹점이다. 3.4Km 정도면 여유 있게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억새사이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천황재에서 표충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탄한 하산길이 아니었다.

길은 가파르고, 낙엽으로 길이 덮여있어 매우 미끄럽고 위험하다.

평소 무릎이 좋지 않은 일행도 있는데 정말 낭패였다. 저 마다 계획된 코스대로 갔어야 했다는 말이 여기저기나 나온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좋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끝이 나 봐야 안다.

선택했다면 그 선택이 잘 못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즐겨야 한다.

살얼음을 걷 듯 조심조심 내려오니 허리와 다리가 뻐근하다.


내려오니 가을이 한창이다. 표충사에도 가을을 즐기려는 상추객들이 가득하다.

이번 기대만큼은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표충사에 내려놓고, 다시 한번 오겠다는 기약을 한다.

그땐 봄에 오는 게 좋겠다.

분홍빛에 불타는 영남알프스의 순정을 기대한다.

누가 저리 정성을 들였을까? 어떤 이유로 저 큰 탑을 세워야 했을까?


정상을 조금 내려서자 약수터 하나와 임도가 나왔다. 말 그대로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약수터이다.
천황재와 케이블카길 사이로 오르막길을 선택하여 올랐다. 이 길이 맞는 듯하다.아니면 할 수 없고...



전국의 산 모양만큼이나 소나무의 모양도 각양이지만 이곳의 소나무는 사방으로 뻗어있는 모양새가 정말 특이하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 양 옆으로 온통 억새로 가득한 이 평화롭고 고요한 길을 걸으니 그동안 바빴던 일상이 지워지는 것 같다.
가을의 향기가 코끝을 감싸며, 바람은 얼굴을 쓸어주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고, 평화로움과 감사함이 선물처럼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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