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관광이라우! (경주 불국사, 석굴암, 대왕암, 태화강 국가정원)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우리 산악회는 주말을 이용하여 등산활동을 하다 보니 먼 지역에 있는 명산이나 도서지역을 가보기가 힘들다. 때문에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1년에 두 번의 1박 2일 이벤트 산행을 하고 있다.
그동안 장보고의 땅 완도의 보석 같은 섬 금당도, 바다 공룡의 능선을 타고 넘는 통영의 사량도와 바다 위에 핀 연꽃 같았던 연화도, 호남의 금강산으로 기암과 숲이 명품인 영암 월출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을 품은 남해 금산, 여수의 해안선과 동백섬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일출 명소 향일암이 있는 돌산도, 등 등 평소에는 가보기 힘든 곳들을 여유 있게 다녀올 수 있었다. 이벤트산행으로 인해 우리나라를 왜 금수강산이라 부르는지, 외국여행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더 자랑 스러이 여기는지 알게 되었다.
(이번 이벤트 1박 2일은 9년 만에 다시 찾은 영남알프스이다. 첫날인 오늘은 경주 토함산에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단풍을 가볍게 즐기고, 울산 해안의 대왕암 그리고 태화강가에 있는 국가정원을 관람한 후 베이스캠프인 배내골의 산장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다.)
새벽 6시 30분! 거리가 거리인지라 평소보다 좀 더 일찍 버스가 출발했다.
오늘도 역시나 날씨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괜찮다. 그동안의 여행 경험에서 생긴 배짱과 여유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개가 끼면 끼는 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나의 추억록을 채워 주었었다.
이틀간의 추억을 만들어 갈 동반자 40명을 태운 버스는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비켜 달리고 있다.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풍요로움은 바둑판에서 흑돌을 따내고 남은 백돌 같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얀 비닐로 정리된 채 군데군데 놓여있다.
평소 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난 탓일까? 슬며시 끼어든 졸음을 받아들인다.
토함산 석굴암
4시간을 달린 버스는 박물관이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도시 전체가 온통 문화유산인 천년고도 경주에 들어섰다. 우리는 고도(古都)의 분위기를 위해서 노력한 흔적으로 보이는 기와지붕의 집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자, 국보의 대명사, 한국 전통불교 조각의 백미로 꼽히는 석굴암으로 향했다.
전국적으로 올해 단풍이 다른 해에 비해 곱지 않지만, 석굴암으로 향하는 길에는 단풍이 곱게 들어 우리 일행을 불국정토(佛國淨土)로 이끄는 듯했다.(불국정토: 부처나 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출처: NAVER)
재 작년에 친구 두 녀석과 경주여행을 왔을 때는 첨성대를 기점으로 월정교와 교촌한옥마을 주변에서 놀았기 때문에 석굴암은 딸아이가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 왔었다. 대략 20년 전쯤에 와보고는 처음이다. 그때 나는 딸아이에게 석굴암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이곳에서 떠오르는 토함산의 일출을 보여주고 싶어서 새벽에 올라왔었는데 다행히 산을 뚫고 솟아오르는 구름에 반쯤 가려진 일출을 보았었다.
20년 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다. 길이 좀 더 잘 정비되어 있고, 주변이 그때보다는 더 혼잡한 느낌?
맞다.
그땐 새벽이었다. 별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떠난 뒤, 여명의 빛이 잠들었던 세상을 데우는 새벽의 느낌은 해가 중천에 버티고 있는 지금과는 분위기가 다르지 않겠나?
석벽에 새겨진 시간의 무게, 고요한 기도가 울리는 석굴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경건해진다.
은은한 불빛이 가득 찬 석굴의 한가운데에 평화롭게 앉아 있는 부처님을 알현했다. 양쪽에는 부처님의 평화스러운 미소를 지키려는 듯 다소 험상한 표정의 두 보살이 양쪽으로 부처님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이 조용한 공간에서 시간이 멈춘 듯, 부처님의 미소는 영원을 담아 조용히 나의 내면을 읽고 있었다
불교신자인 아내는 연신 부처님을 행하여 예를 다하고 있었고, 나 역시 아내를 따라 부처님의 미소에 나의 방식으로 화답했다. 잠시였지만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들었다.
미소의 힘이지 않을까?
성자의 미소가 아니라 할지라도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온함을 준다고 생각이 든다.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둘러 일행을 쫒아야 했다. 오늘 일정이 좀 빡빡한 관계로 집합시간에 늦는 다면 함께 온 중생들의 원망을 사는 것이 자명할 것이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는 게 이런 거지 뭐!
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
부처님이 사는 나라 불국사에 입성했다.
단풍이 수를 놓은 불국사!
가을바람에 풍경소리가 흘러서 역사의 숨결 느끼는 길 위에 낙엽이 놀고, 시선이 닿은 곳마다 가을의 향기가 가득 차있다.
그동안 많은 절을 다녀보았지만 입구에서 절 전체를 바라볼 때 불국사만큼 멋진 절은 없다.
특히, 가을 단풍과 돌계단이 잘 어울린다.
불국으로 곧장 들어가는 자하문(紫霞門) 33단의 돌계단 청운교와 백운교는 국보라 보존을 위해 막혀있어 옆길을 따라 절 안으로 들어갔다.
절 안 땅 위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하늘에는 연등이 가득했다.
연등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두 개의 탑!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10원짜리 동전에 앞면에 새겨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탑이 다보탑이다. 역시 석가탑과 더불어 국보이다.
10원짜리 동전을 쓸 일이 없어진 때에 태어난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배웠겠지? 선생님께 한 번은 들었을 것이다.
나 역시 역사시간에 복잡한 세계를 상징하는 화려한 다보탑, 정신적인 간결성을 뜻한 단순미의 석가탑!이라고 배웠다.
나는 다보탑의 화려함 보다는 석가탑의 단순함을 더 좋아한다. 간결한 순수미를 더 좋아한다.
꾸안꾸!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아름다움이 좋다.
사람들이 연신 셔트를 누르고 있었다. 나도 셔트를 눌렀다.
시간이 없으니 사진에라도 담을 양으로…
아무리 바빠도 이곳에 살고 있는 부처님을 뵙고 싶었다. 절에서 불상이 모셔진 곳이 대웅전이다.
아내와 서둘러 대웅전으로 향했다. 서로 약간의 다른 이유로 부처님을 보고 싶은 것이다.
아내는 신자로서, 불국에 사는 부처님에게도 기도를 드리고 싶었고,
나는 부처님의 미소가 석굴에 사는 부처님과 어찌 다른지 보고 싶었다.
둘러보니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앗 큰일이다. 원망의 포커스가 우리에게 향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인류의 유산을 이렇게 감상할 수밖에 없음이 대단히 아쉬웠다.
개발도상국이었던 당시 우리나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는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서 여행 한번 할 수 없던 시절에는 오로지 수학여행을 통하여 유명 문화유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볼량으로 버스에 내리고, 타는 것을 하루에 십 수차례 하며 여행했었다. (봤다는 기억만 남아있고, 뭐가 뭔지는 나중에 책으로 알게 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제 OECD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살만큼 사는 나라의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행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참 오늘은 관광이지?
잊고 있었다.
여행음식
여행의 불만을 잠재우는 충족요건 중에 하나는 음식이다.
오늘 점심은 고등어구이! 간고등어구이이다.
간고등어구이는 냉장고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내륙지방에서 잘 먹기 힘든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서 오래 보관하며 먹었던 음식이라 매우 짜다.
바다가 도시에서 자란 내가 어릴 적부터 갓 구운 싱싱한 고등어살을 진간장에 찍어 먹으면 고등어살 특유의 담백한 맛이 입안에 도는 풍미를 아는 지라 간고등어구이의 짠맛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평소에 수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고향 마산과 통영 주변을 제외하고 경상도 지역을 여행하게 될 때는 음식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 산악회도 주로 전라도지역이나 통영 근처의 바닷가로 이벤트여행을 기획하는 이유 중에는 먹거리 문제가 크게 차지한다.
별 기대 없이 먹어서 그런지 그런대로 맛이 있다. 식당도 천장이 높은 인테리어도 쾌적하다.
주변에서도 요즘 경상도음식도 많이 좋아졌다는 품평이 들린다. ㅎ
그럼 저녁도 한 번 기대해 볼까?
대왕암공원
점심을 마친 우리는 울산으로 향했다.
울산은 현대자동차와 조선소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업도시로 알고 있겠지만 영남 알프스를 기점이기도 하며, 바다 쪽으로는 대왕암, 십리대숲길이 있는 태화강가의 국가정원이 있어 관광지로도 꽤 알려져 있다.
우리는 통일신라의 주역 문무대왕의 능이 있다는 대왕암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대왕암을 주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대왕암공원이라 한다.
옛날에는 이런 것이 없었는데...
그 옛날이 언제일까?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그리고 언제가 한 번 더 온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세월이 많이 흐른 뒤니 이렇게 잘 가꿔진 공원에 이상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기억을 더듬으며 해안산책로를 따라 대왕암으로 향했다.
출렁다리가 나온다. 에라이~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에 관광지라고 불리는 곳에서 다리를 놓으면 다 출렁다리이다.
관광지마다 없는 데가 없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신기하거나 재밌다기보다는 비싼 돈 들여서 이걸 왜 만들었나 싶다. 다 세금인데...
어느 한 곳에서 인기가 있으면 너도 나도 하는 판에 먼저 한 곳까지 그 가치를 깎아내려 버리는 제 살 깎아 먹는 행정에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대왕암으로 찾아가는 길은 멋진 기암들이 이어진 멋진 해안길이다. 동해안의 푸른 바다가를 따라 바람과 파도에 기기묘묘하게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들을 바라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런 신비함이 대왕의 무덤을 품게 되었으리라. 바위해안길의 끝자락에 다 달으니 기억에 남아있는, 교과서에서 보았던 모양과 유사한 바위들이 나왔다. 물에 잠겨 나온 모양이 왕관처럼 보이는 저 바위들이 대왕암인가 보다.
실망스럽지는 않다.
사실 기억 속의 대왕암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에 소나무숲도 가꾸고, 해안길도 잘 닦여있고, 곳곳에 스토리텔링이 되어있어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여 놓았다.
이건 잘한 일이다.
후손들의 기억에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유산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태화강국가정원(십리대숲)
이제는 태화강 국가정원이다. 바쁘다 바빠~
한 두 번 지나쳐 갔던 적이 있지만 내려서 직접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국가정원이라고? 순천 같은?
그중에서 십리대숲이 유명하다고 한다. 강가에서 보니 멀리 대나무숲이 보인다. 멀리서 볼 때는 그리 멋질 것 같지 않다.
숲에 들어서니 굵고 푸른 세로획을 양 옆을 꽉 채워 벽지를 발라 놓은 듯 한 공간을 시민들이 신발을 들고 걸어 나오고 있다. 맨발 걷기 열풍이 이곳에도 내려와 있다. 이런 대나무숲길이 4Km라 하니 시민들에게는 쾌적하고 평온한 산책이 보장되어 좋을 만하다. 그 외에 소문만큼 특별한 아름다움은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럽다. 용인에도 이런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십리대숲을 빠져나오니 태화강국가정원이라는 분수대 뒤로 억새와 핑크뮬리로 가득 찬 정원들이 나왔다.
가을산을 파도치게 하는 물결이 억새라면 요즈음에 도심강변을 파도치게 하는 것은 핑크뮬리라는 생각이 든다.
외래종인 핑크뮬리는 특유의 은은한 보랏빛이 도심의 풍경에 신비로움을 더 해주는 탓에 서울근교에도 핑크뮬리 명소가 젊은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송파 올림픽공원, 상암 하늘공원 등 등 검색해 보시라)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빼놓을 수 없다. 핑크뮬리와 억새에 자리를 양보하고 남은 공간에 코스모스가 한가득 바람을 타고 하늘을 그려가며 춤추고 있다. 그 길을 노래처럼 따라 걸었다.(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다음에는 가을의 여왕 국화꽃들이 황금왕관을 쓰고 정원에 꽉 들어차서 멀리서 보니 노란 카핏을 연상하게 한다.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에는 가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짧은 시간에 태화강가의 가을을 다 누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였다. 그래서 다음 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단체가 아닌 지인들과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며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베이스캠프: 배내골
베이스캠프가 될 숙소는 배내골에 있는 꽤 큰 규모의 펜션이다.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삼겹살이다. 그런데...
돼지국밥의 고장에서 이렇게 질 떨어지는 고기를 제공하다니? 테이블 곳곳에서 컴플레인 제기 되었다.
바뀐 고기도 별반 다른 바 없다. 단체손님이라 팔고 남은 질 나쁜 고기를 제공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행에서 음식은 숙소와 더불어 만족도를 높이는 필수 항목인데 말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은 그리 나쁘지 않다. 배가 부르고 취기가 오르니 당연히 음주가무 아니겠는가?
식당은 순식간에 노래방으로 변했다. 널따란 스테이지도 앞에 있으니 회원들의 열창과 열정적이 춤 솜씨를 맘껏 뽐낼 수 있었다. 나 역시 목청 터져라 노래 부르며 피곤도, 불만도, 몸 밖으로 쏟아 냈다.
아내와 한바탕 춤추며 스테이지에 신나는 발그림을 그려댔다.
재미있다.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다.
첫날 베이스캠프의 밤!
숙소에 들어온 후에도 회원들의 흥겨운 열정은 활활 타 올랐고, 숯불같이 가을의 밤을 은은하게 익히며 꺼질 줄 몰랐다.
나 언제 잠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