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일주문(전나무숲길)-월정사-동피골주차장-상원사 주차장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났건만 올여름의 푹푹 찌는 찜통더위는 기세가 꺾기지 않는다. 오늘 정기산행! 메인테마는 오대산의 선재길트레킹이다.
일부 회원들은 상원사에서 비로봉을 산행을 택했지만 아내 선혁과 그의 친구 그리고 나는 선재길트레킹을 택했다.
선재길은 월정사의 일주문에서 시작해 전나무숲길을 지나 동피골 주차장을 거쳐 상원사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약 9km의 트레킹 코스다. 선재길을 따라 흐르는 오대천계곡 어딘가에서 물놀이하며 심산이었다.
비로봉 정상 산행을 택한 일부 회원들이 탄 버스를 떠나보내고 월정사의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전나무숲길이 우리를 맞이했다. 수백 년을 묵묵히 서 있는 전나무들이 높이를 자랑하며 양옆으로 신장들처럼 줄지어 서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피톤치드를 뿌려주고 있다.
코 끝으로 들어온 피톤치드가 잊고 있던 기억들을 살려낸다.
살아난 기억이 시간을 거슬러가며 이곳 숲길을 함께 걸었던 이들과의 추억에 잠시 잠시 머물게 하더니 발걸음을 따라 또 하나씩 지워간다.
월정사에 도착했다.
한편에서 공사 중이다. 올 때마다 공사를 안 하고 있는 때가 없는 것 같다.
언제나 공사 없이 고요하고 적막감을 맛볼 수 있을까?
월정사 9층석탑도 여전했다. 그런데 저 기도하는 석상이 예전에도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은데...
한 때 소중한 우리 유산에 대한 매력에 빠져서 전국의 사찰을 구석구석 찾았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문화와 유산에 대한 탐구심은 뒷전이 되었고, 애정하는 이들과 숲과 자연을 찾아서 내 한 몸 강건하게 살고자 하는 욕심만 남았다.
월정사를 빠져나와 선재길에 들어섰다.
선재길 첫 번째 구간은 "산림철길"이다.
안내에 따르며 일제강점기에 오대산의 산림을 채별하기 위해 상원사까지 협궤열차를 깔아 소나무, 박달나무, 참나무등을 해방 전까지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해갔다고 한다.
후기의 조선은 이상적인 유교 사회를 실현하려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끊임없이 부딪혀 분열하고, 정세 변화와 외세의 침략, 내부 반란 등의 다양한 도전과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여 스스로 자기 주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한 대가를 무수히도 치렀다.
두 번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2구간은 조선사고길이다.
근처에 오대산사고가 있다. 오대산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도 일제에 침탈되어 소실된 것으로 기억한다. 선재길은 산림철길, 나중에 나오는 화전민길과 함께 일제강점기와 관련이 많다. 뼈 아픈 역사의 현장이 힐링코스로 변했다. 힐링은 하더라도 역사는 잊지 말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지 않는가?
근처에 섶다리가 있었는데 땡볕에 건너 보는 건 포기!
서둘러 식사자리를 찾았다. 계곡에서 가장 가까운 인적 드문 곳을 찾아 도시락포를 펼쳤다.
반찬가게가 따로 없을 정도의 다양한 종류의 반찬들이 시장한 이의 군침을 모아 놓기에 충분했다.
식사가 끝나고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근다.
올여름의 막바지 더위는 오대천의 계곡이 다 안고 내려가라!
3구간은 "거제수나무길"이다.
거제수나무가 많겠지? 근데 어떤 게 거제수나무인지 모른다.
계곡길을 따라 멋지게 만들어 놓은 데크를 따라 걸었다. 데크길이 아주 반듯하게 쭉 뻗어있다.
반듯한 길은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오대천 구비 구비 물길이 바위를 감싸 안으며 시원하게 내려간다. 어디까지 가나?
끝은 바다지 뭐!
인간의 길의 끝에 죽음이 있는 것처럼...
누구나 다 죽는다. 잊지 말자!
4구간은 "화전민길"이다.
일제강점기에 오대산 산림들을 벌채할 때 일하던 사람들이 150여 가구가 살았다는데 겨울에는 벌목을 하고, 여름에는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 한다. 지금은 집터만 간신히 남아있고 어설프게 집터 표식만 만들어져 있다. 화전민집터 주변에는 돌배나무가 많이 심어 놓았는데 관리를 안 해서인지 나무가 다 부실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다. 걷는 이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 같은데 심심하지는 않겠다.
숲을 빠져나와 동피골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길은 조금 더 깊은 산속으로 이어졌다. 산길을 따라 이어진 작은 계곡을 지나며 들리는 물소리는 오대산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진다.
5구간 마지막코스 "왕의 길"이다.
조선시대 세조와 문수동자가 만났다던 전설을 만들어 낸 곳이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자의 꿈에 나타난 단종의 어머니가 침을 뱉어서 종기가 나서 휴양차 들려서 문수보살을 만난 이야기로 기억한다.
임금이 되고서도 발 뻗고는 못 잤을 것이다. 인과응보다.
놀다 걷다 드디어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략 4시간 좀 더 걸렸다.
길 끝에서 상원사 쪽을 바라보며 갈까 말까를 망설이게 했다. 이미 여러 번 다녀온 곳이라 계곡 근처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이번 선재길트레킹은 단순히 걷기만 하는 길이 아니고, 예전에 알지 못했던 일제침탈의 역사현장이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을 걷기만 해도 충분한데, 아픈 역사를 새기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후손들의 더 이상 침탈의 역사를 겪지 않아야 한다.
언제 또 어떤 기회주의자들이 이나라를 자신의 부귀영화에 희생물로 삼을 지 모른다.
그러니 정신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