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ẾT QUÝT VÀ BÁNH CHƯNG _감귤을 치료한 바잉쯩
열두 살이던 큰 아들 녀석과 친구들 다섯 명이 아파트 관리소에 감금되었다. 경찰이 올 때까지 풀어 줄 수 없다고 누런 제복에 안장을 찬 구역 관리 소장이 날카롭게 각이 진 눈가의 주름살을 씰룩이며 어스름을 떨었다. 부모들이 박카스 한 박스와 과일 봉지를 들고 가 사과를 했다. 아이들이 잘 몰라서 그런 거니 한 번만 넓게 이해해 주길 부탁하고 사정했지만 그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 톤을 점점 높였다.
구정이 다가오면 길가에 부어이(포멜로) 나무, 귤나무, 매화꽃나무가 즐비하다. 열매가 많이 맺힌 나무를 집 안에 들일수록 그 해의 복이 그만큼 많이 들어온다고 철썩같이 믿고 사는 민족이다.
그런 민족의 나라에서 우리 아들과 친구 무리가 지은 죄명은
설날을 맞아 정성스레 구비한 그 귀한 감귤나무의 ‘복’들을 딴 것!
한 두 개를 딴 것이 아니라 다섯 녀석이 신나게 잔뜩 따서는 아파트 바닥에 다 터뜨리며 그 귤로 던지기 놀이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관리 소장의 화는 머리끝까지 날 수밖에. 베트남의 문화를 무시하고 장난질을 한 한국 아이들을 호되게 혼내 줄 것이라고 고집을 꺽지 않았고 아이들은 땀을 찔찔 흘리며 다섯 시간째 갇혀 있었다. 밤이 오고 오랜 시간의 이야기 끝에 결국 타협이 되고 풀려난 2007년 설 이브의 웃픈 해프닝이었다. 개구쟁이 나의 아들덕에 우리가 맞이한 첫 ‘Tết(뗏)‘ 베트남의 설명절은 호된 혼쭐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베트남의 구정 연휴 Têt(뗏)은 나라 최대의 명절이다.
달력상의 빨간 날로 따지자면 한국의 연휴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 뗏 명절은 앞 뒤로 두 달은 마비가 되는 시기이다.
한 달도 훨씬 전부터 뗏이 다가와 일을 할 수 없다고 하기에 어지간한 작업을 진행하기가 힘들다.
연휴가 끝나도 아직 고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필요한 일들을 제 때 할 수 없으니 적어도 명절 끝 한 달은 더 마음에 여유를 잔뜩 깔아나야만 뒷 목을 잡고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카페 직원들은 일 년에 한 번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두세 달 전부터 휴일 스케줄을 짜느라 여념이 없다. 열흘의 휴가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고향으로 내려갈까 나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한다. 달력을 들고 졸졸 따라다니며 나를 지치게 해서라도 휴일을 며칠이라도 더 챙기고 두둑한 보너스도 챙겨 가지만 연휴가 끝나면 돌아오지 않는 직원들도 꽤 있다. 뗏은 공공연한 이직의 기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먹튀의 계절이다.
설 명절이면 시집에 가기 싫어 시금치도 먹기 싫다는 한국 여자들이 있다면 나는 뗏이 다가오면 감귤 나무도 쳐다보기 싫은 베트남의 한국여자였다. 귤나무의 노이로제와 붕 떠있는 직원들을 제자리로 되돌리려면 몇 달은 족히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니 참으로 긴 이 나라의 설 명절 후유증들이 참 달갑지 않았다.
세월은 한 해 한 해 흐르고 정 많은 베트남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이런 나의 베트남 '뗏 증후군'을 서서히 회복시켜 준 치료제가 나타났다.
바나나 잎 향기를 가득 품은 초록빛깔 네모 꾸러미
쌀의 민족 한국인이 떡국을 끓여 한 살을 더 먹을 때
1700해리가 떨어진 곳의 또 다른 쌀의 민족 베트남인은
찹쌀밥 'Bánh chưng (바잉쯩)'을 쪄낸다.
초록 빛깔 쫀득한 찹쌀밥의 배를 가르면 그 안에는 노란 녹두와 후추향이 나는 보들보들 핑크빛 살코기가 삐져나온다. 한 입 베어 물면 바나나 잎 향이 입안에 사르르 퍼지고 더할 나위 없이 쫀득한 찹쌀밥 맛이 일품이다. 그 묘한 풍미에 중독이 되어 이젠 '바잉쯩'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오매불망 뗏을 기다리는 여자가 되었다.
올해는 베트남 친구가 언제나 우리 집을 들르려나 기다리고 있는 동안 사진을 보내온다.
"지금 시골집에서 커다란 솥에 너에게 가져다 줄 바잉쯩을 찌는 중이야.
내일 아침 일찍 가져다줄게"라는 그 친구의 메시지에 내 잎은 주욱 찢어지고 있다.
억울한 뗏인줄 알았는데
끈끈한 뗏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