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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수박 조각가와 자몽 강아지의 추석

"CHẠM KHẮC 조각 _입체적인 사랑 

보름달 대신 문케익이 하늘에 동동 뜨는 베트남의 한가위가 다가올 때면

전 부치는 냄새와 가족들의 시끌벅적함이 섞이던 한국의 추석이 아련히 그리워지는 이방인이다. 가을 추수가 끝나기 전 햅쌀로 만든 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올려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풍성한 가을 음식을 즐기는 한국 추석에 대한 향수는 타국에서 괜스레 더 짙어지는 것만 같다.


일 년 삼모작을 하는 베트남 사람들에겐 한 차례 수확의 계절만을 손 모아 기다렸다 큰 파티를 여는 한국과는 추석의 정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추석 두 달 전 무렵이면 베트남 거리마다 문케익을 파는 팝업 부스가 설치된다. 아 곧 추석이 오는구나... 매년 베트남은 늘 친절하고 성실하게도 명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미리 알려준다. 그렇게 두어 달은 설레며 기다려 맞는 베트남의 중추절 '중투(Trung Thu)'이다.


수박 조각가와 자몽 강아지의 추석
TRUNG THU(중투)가 시작되면
어린이들의 잔치로 행복이 넘친다. 
베트남학교의 학급마다 엄마들의 솜씨가
보름달처럼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의 베트남어는 나만 홀로 자칭 수준급이다.

6 성조 발음을 한국어처럼 모노톤으로 하는 나의 베트남어를 센스쟁이 우리 직원들은 잘만 알아들어 주건만

1학년부터 베트남 학교를 다니고 있는 막내 녀석은

엄마가 하는 베트남어는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고 타박을 하는 탓에

외부인을 만나 베트남어로 찐 소통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사실 떨린다.


하지만 반장 엄마의 집에 헤쳐 모여야 할 때가 왔다.

시원시원 말은 좀 안 통해도 바디 랭귀지가 있고, 애들 파티상 차려 주는 거니까 가서 조용히 몸이나 쓰고 오면 되겠지 하고 반장 엄마네 집 초인종을 꾸욱 눌렀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다른 엄마들은 이미 모두 모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장에서 과일을 사 오느라 진작부터 만났던 모양이다.

집 안을 들어서서 과일이라도 씻어줄까 하며 주방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떡 벌어진 나의 턱을 닫는 일이나 도와줘야 했다.

대체 수박 위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엄마들

수박에 조각된 꽃들이라...

알알이 있어 손님상에 놓을 때도 생긴 모양대로라도 예쁘게 껍질을 벗겨내기 어려운 부어이(자몽과의 베트남과일)는 복슬강아지로 변신해 있었다.

수박 조각 껍질을 세모로 잘라 올려 토끼 귀 모양 장식을 내어 손님용 과일로 내어 준 적은 있어도

과일이 진짜 동물로 변신한 장면은 처음 보는 중이었다.


베트남 학교 엄마들이 직접 차린 중추절 한 상


중추절에 이 화려한 과일 장식으로 베트남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Thanks giving day에는 칠면조를 굽고 펌프킨 케익을 구워서 멀리서 오는 가족들을 기다린다.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모양 양말모양 틀로 찍어낸 쿠키를 굽고, 핼로윈에는 유령 모양의 기괴한 쿠키를 나누어 먹는다. 그날을 상징하는 직관적인 모양의 쿠키를 굽는 것이 미국의 문화이다.


차바퀴모양, 사각의 정방형등의 문양들을 떡 살로 찍어 내어 돌잔치, 경조사, 이삿날에도 결코 빠질 수 없는 떡을 돌리는 한국의 문화도 있다. 앞으로 잘 굴러 나가라는 뜻일 것이다. 사람들은 말하고 싶고 전하고 싶은 사랑과 기원의 메시지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 빵과 떡에 담는다.


중투의 학급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베트남의 중추절엔 수확된 햇과일들이 신이 나고 행복해서

귀여운 동물들로 변신하여 활짝 웃고 있다.

수박은 하나의 멋진 조각품이 되어 뽐내고

용과 동물들은 신이 나 탈을 쓰고 춤을 춘다.


과일을 조각하는 엄마들은 일 년의 감사를 집약한
섬세한 정성을 조각칼날의 끝에 담아내고
그것을 먹고 즐기는 자녀들에게
그 정성이 '행복함'으로 전환되어 전달된다.


한국의 추석과 모양은 다르지만 가족이 함께하고 풍성한 명절에 신이 나는 코드는 같다.

베트남의 중추절은 참 귀여운 추석이다.



호안끼엠 거리의 조각가_ 도장에 다양한 문양을 각인하고 나무 물고기 빵 틀을 조각한다 (출처@ Google)


호안끼엠 거리를 걷다 보면 장난감 가게를 마주친 어린아이처럼 나를 멈춰 서게 하고 한 참을 머물게 하는 곳이 있다. 대패에 밀려 나오는 나무 톱밥 냄새가 코 끝을 기분 좋게 하는 아주 오래된 가게이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다산의 복을 기원하는 소망이 담긴 붕어빵 틀도 빈티지하게 주르륵 걸려 있다. 명절의 떡과 빵 문양을 담당하고 있는 녀석인데 우리나라의 붕어빵 틀과는 사뭇 다르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조각가들 때문에
하노이의 거리 질감은 아티스틱하다.

 
호안끼엠의 조각집들 ⓒ 마틸다 하나씨


5년 전인가, 나의 생일날 직원들이 전해 준 선물에 보자마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중투마다 수박을 조각해서 정성스러운 학급 잔치를 열어주는 엄마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커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사장님의 생일 선물로 정성을 담아 수박을 조각했다. 이 친구들이 더 자라나 그들의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겠지...


수박 조각가는 중추절에만 출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 나와 처음 만난 사장님을 위해 이런 선물을 하겠다고

수박에 집중력을 모아 조각을 하고 있는 스무 살의 앳된 손가락을 상상하면 감동이 인다.


거리의 조각가에서부터 어린 청년들까지...

일상이 이 정도면 베트남은 미술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가?

학부형 엄마들도 우리 직원들도 이 일상의 오브제들을 한데 모아 개인전을 위한

갤러리를 예약해 주어야 할 것 같은 예술가들인걸

이리 숨어서 조용히 반짝이기만 하다니

억울하네 당신들…


카페 직원들이 조각해 준 생일 선물_수박 조각 예술품 ⓒ 마틸다 하나씨


베트남은 정말이지 예술의 손끝이 빚어낸 멋진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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