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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베트남. 너도 억울하고 나도 억울하다

"ÁO DÀI  아오자이__앞 순수 옆 섹시 베트남 여자로의 진화

하노이에서 10년째 카페를 운영하고 커피머신 렌탈 사업을 하는 나는 이따금 커피머신 홍보차 한베문화 축제에 참여하곤 한다. 한베문화 축제는 하노이에서 사업하는 여러 기업들이 홍보차 부스를 설치해 상품을 소개하고 베트남 먹거리들을 즐기며 케이팝가수들도 구경할 수 있도록 베트남과 한국이 교류하는 큰 문화 행사이다. 


직원들과 함께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부스 위에 카페 배너를 달며 오픈 준비로 분주한 아침이었다. 

첫 손님으로 두 분의 한국 아저씨들이 들어오셨다. 설명해 드리는 커피머신 임대 조건을 열심히 들으시다가 뜬금없이

"와~ 한국말 진짜 잘하시네요!"

"......"

"아... 전 한국 사람인데요?..."

"하하, 그래요? 꼭 베트남 사람처럼 생기셨어~"

"아... 그런가요? ㅎㅎ..."

그런데 기분이 왜 요리꾸리 한 거지...?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나는 베트남 여자 손님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처음 베트남에 온 17년 전보다 유난히 살결이 뽀얗고 화장마저 세련된 여자들이 많을뿐더러

딱 보면 아 한국 사람, 일본 사람이구나 하게 되는데

'우와 저 여자 베트남 사람 맞겠지?' 하게 되는 손님들이 늘었다.

어쩜 그렇게 당당하고 개성 있고 트렌드 따윈 담지 않은 패션 스타일로 각각 이쁜지 

마치 형형색색 화려한 호이안의 등불을 보는 듯하다.


원색러버인 내 안에는 엄청나게 화려한 패션 감각이 꿈틀댄다. 이따금 천시장에 가서 아주 만족스러운 패턴의 천을 떼다가 청바지에 코디할 요량으로 커스텀해둔 나만의 아오자이들을 아침마다 만지작 거린다. 

'내가 너무 튀게 입으면 우리 아들들이 창피할까...?' 중얼거리다

결국 원색 약간 담은 클래식 코디로 농문을 닫는 소심이라서 그렇게 스타일에 당당한 베트남 여자들을 보면 자꾸자꾸 시선이 끌려간다.


매년 5월이면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졸업 사진을 찍는 고등학생들이 거리 곳곳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아 정말 예쁠 때다~ ’ 소리가 절로 나온다. 청년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도 남을 순백의 뽀얀 아오자이 선에 홀딱 반할 때쯤 한 여학생이 포즈를 옆으로 살짝 돌리거든,

아오자이 절개 시작선을 따라 나뉜 두 변과 바지의 웨스트 라인 한 변이 만들어 낸 삼각형 속을 

옆구리살이 뽀얗게 메꿔 넣는다

앞 순수 옆 섹시의 기반을 타고 자라난 고등학생들이
개성까지 한 스푼 얹어 매력 뿜뿜 패셔니스타로 진화한단 말이지.
아오자이의 목선은 중국의 의상 같고 아랫부분은 서구의 랩 스커트 같기도 하게 오묘한 믹스매치의 매력이 돋보이면서도 베트남의 전통을 담고 있는 의상이다. (출처@ Google)


어느 날, 신호 대기 중인 오토바이 위의 여자의 실크 블라우스 뒤태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 층의 레이어들이 포슬거리는 게 참 여성스러운 디자인이네 하는 순간 신호는 바뀌고, 거리의 오토바이가 달리자 여자의 레이어는 딱정벌레의 날개가 되어 양 옆으로 활짝 펼쳐졌다. 바람이 펼쳐주는 날개 속에 뽀얀 속살이 드러나면

지나가던 시선의 시계초침들은 그 날개 속에 멈춰버린다. 


블라우스 뒷면의 넥라인만 유지해 준 채 일직선으로 반을 가로질러 쭈욱 잘라내 버릴 과감한 

생각은 아오자이의 옆구리 라인을 절개해 본자들만이 할 수 있는 거겠지? 

바람과 오토바이가 콤보가 될 때만이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베트남 특수 딱정벌레 블라우스라니. 

얌전하고 공손하게 겹쳐 있다가 갑자기 활짝 펼쳐지는 딱정벌레의 날개가 엄청나게 섹시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베트남에게 쎄이 땡큐. 과감한 노출이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당당함 만큼은 인정이다. 베트남 여자들은 패션에 대한 아시아적 유교 마인드 따윈 당차게 서방에 팔아버린 듯하다.


이렇듯 나는 패션니스타들의 월드에 살고 있건만

한국만 가면 "월남에서 왔다며? 하시는 어르신들이 꽤 있다.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베트남 이미지의 비중은 월남전이 크니까 당연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어디든 가면 "해외에서 살아요"라고 설명해야 하는 순간 꼭 되묻는 사람들도 있다.

"해외 어디요?"

"하노이요"

"아 베트남~?"

"네..."

"요즘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사는 분들 참 많더라고요. 그렇죠?"

내가 베트남에 산다는데 갑분 레퍼토리는 국제결혼을 한 베트남 여성들이다.

한국에서 베트남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월남전과 노총각들에게 시집온 시골빛 띤 이주 여성들이기에 그럴 것이다. 필리핀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해 인생의 절반을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내게

우리 아빠는 "너는 왜 맨날 동남아 촌동네만 골라 다니며 사는 거냐. 좋은 나라 좀 가서 살지" 하시며 혀를 끌끌 차신다.

"베트남이 뭐 어때서...

요즘 얼마나 발전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미국이 시골이야 요즘은.

앞으로 한 15년 후에는 하노이가 서울보다 훨씬 더 잘 살 것 같거든"하며 큰소리를 치는데

왜 난 베트남에서 산다고 말할 때마다

"저 맨해튼에서 살아요" "파리에서 살아요" 할 때 따라오는 뭐 그런 뻐기감이 없는 건데...

억울하다...

해외에서 사는 건 똑같은데 말이지.


그 한베 문화 축제날 내 옆에 베트남 직원들도 여럿 함께 서 있었는데 

어느 베트남 손님은 굳이 찾고 계신 상품을 나에게 물으셨고

스타트를 끊으신 그 두 분의 아저씨 이후로도 나는 다른 한국분들로부터

한국말 진짜 잘한다는 칭찬을 두 번이나 더 들었다.

세 번째는 어이가 하도 없다가 재밌어지기까지 하길래 이렇게 대답해 드렸다.

"아니 한국말을 어디서 배웠어요? 진짜 유창하네~"

"제 남편이 한국사람이거든요"

"아.. 어쩐지... 그래서 그랬구나. 그렇다 해도 참 아주 한국어를 대단히 잘하네~남편이 좋겠어~" 라며

엄지를 치켜올려주시는데, 17년 전 길만 걸어가도 살결 뽀얀 외국인이 지나간다고 신기하게 쳐다보아 주던 이들이 너무 그리워졌다.

지난 세월 동안 참으로 성실하던 멜라닌 색소 녀석이 내 뽀얗던 얼굴에 거무칙칙 레이어를 겹겹이도

열심히 깔아주어서인가

딱 보면 한국인이다라고 읽히는 한국 스타일 옷을 안 좋아라 하는 내가

베트남 골목골목에서 한번씩 수확해 오는 옷들 입기를 즐겨서인가

아님, 베트남 물을 너무 오랫동안 마셔서 이제 그냥 동남아시아인으로 진화되어 가나 보다라며

훗, 하고 웃을 수밖에...


베트남에 미인이 많다고들 한다.

하노이에서 나는 진짜 매력적인 베트남 여자들을 많이 보고 산다.

호치민 여자들은 부티마저 줄줄 흐르던데

내가 너무 이뻐서 그런 걸 꺼야 해 보다가도

한국 사람이 내게 베트남 사람처럼 생겼다고 하는 말엔 왜 기분이 이런 거냐고...


베트남. 너도 억울하고, 나도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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