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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바게트 요거트 리틀 프랑스

" BÁNH MỲ VÀ SỮA CHUA _바게트와 요거트의 나라

하노이의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동화 속 어느 작은 골목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많다.

프랑스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유럽풍 건물들과 덩굴식물 모양의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철제 난간, 

어린아이가 두 팔 벌려 문을 열고 환하게 웃어 줄 것만 같은 예쁜 나무 창문들이 나를 동화 속 아름다운 마을로 인도한다. 붉은색 처마 끝이 뾰족이 올라간 전통 지붕선과 아르누보의 정취를 담은 유럽식 지붕선들이 오묘하게 믹스 매치를 이루는 도시 하노이는 식지 않는 매력으로 오랫동안 날 설레게 하고 있다.


이국적인 여기는 지금 어디일까 하는 감성에 푹 빠져들어 있을 때에

나를 1초 만에 현실 베트남으로 돌아오게 하는 장면이 있으니

거리마다 빨강 파랑 노랑 목욕탕 앉은뱅이 의자 위에 앉아 '카페 쓰어다'(베트남식 연유커피)를 

즐기는 베트남인들의 모습이다.

카페 내부보다 거리를 마주하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기는 저 감성은 분명

멋진 카페테라스에 분위기 있게 앉아서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유럽인의 감성인데

분명히 같은데 완전히 다른 

베트남의 거리 풍경에 피식 웃음이 난다.

우리 카페도 지붕만 남기고 벽과 문을 다 뜯어 버려야 하나 진지한 고민이 될 지경이니 말이다.


프랑스의 백 년의 식민 통치기간 동안 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게 된 것은 

아름다운 건축 기술과 여유로운 커피 문화만이 아니었다.


바게트 빵과 요거트 제조 기술은 몰래 뺏어가고 싶을 지경이다.

빅씨(최근 Top mart로 바뀌었다)의 겉바속촉 바게트 빵과 목처우의 검은 찹쌀밥 요거트는 

특히 여러 브랜드 중에서도 진정한 탑이다.

이 두 브랜드의 대표들은 백 년 전 식민지 시절 속에서도 

바게트와 요거트의 프랑스 장인을 운 좋게 만났던 것일까. 

유독 맛을 따라올 수 없는 그 퀄리티에 짙은 궁금함이 따라온다.

긴 줄을 기다렸다 오븐에서 막 꺼낸 따끈따끈한 바게트를 연유에 꾸욱 찍어 한 입 무는 그 순간이란

정말 베트남 살이의 큰 낙이다.

이걸 먹어 본 사람들은 유명한 파티쉐의 바게트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고 한국의 대형마트 진열장에서 패키지 디자인 전쟁 중인 그 수많은 요거트들도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목처우의 공기가 담긴 하얀 요거트의 향긋한 우유풍미에 검은 찹쌀밥을 더한 베트남인들의 아이디어는 유럽의 것을 훨씬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바게트의 나라라는 타이틀은 프랑스에 밀리고 요거트의 나라는 덴마크에서 찾아오질 못하고 있으니

"베트남아 내가 대신 억울하다 말해줄게."


전통과 기술이 스며든 요거트와 바게트


음식도 정서도 한자권 언어도 다른 동남아에 비해 베트남과 한국은 비슷한 결이 참 많다.

베트남어도 한자어 기반의 언어이기 때문에 단어 중에 우리말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케이스가 많아서 (동행, 관리, 이혼 등등) 처음 배울 때에 정말 흥미로웠다.


하지만 한 가지!

한국과 아주 크게 상반되는 점이 있다.


일제 식민지의 기억을 단 하나라도 남겨두지 않으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찾아내며, 

일본의 잔재라면 다 부수고 없애야 마음이 시원해지는 한국이다. 우리는 일본의 패키징과 상품이 아주 훌륭해서 감동할 때가 많으면서도 우리보다 앞서있는 면에 대해 진심으로 인정해 주는 데는 야박할 뿐더러,

한일전은 반드시 우리가 이겨야만 하고, 

일단 일본의 잔재는 우리의 언어에조차 남아 있는 꼴을 허락할 수 없단 말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시절 지어진 건물들을 오히려 오페라 하우스 등 국가 주요 건물로 사용하고 있고, 차와 커피를 즐기는 테라스 문화도 요거트와 바게트를 즐기는 모든 모양도 그대로 지켜내고 있다. 

남아있는 프랑스의 잔재를 대표 주자로 사용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베트남 친구가 나를 더 어이없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 마틸다 하나씨


"좋은 건 다 우리 것으로 취해야지. 

식민 지배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들의 장점은 남겨두고 우리가 다 사용해야 덜 억울하지 않겠니.

그 아까운 걸 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 너는?"

할 말을 없게 만드는 한 편으론 일리 있는 답변이자 질문이었다.


베트남은

리틀 프랑스라는 이름에 당당하며

그 아픔을 기억하고 보존하고 재 사용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되갚아 주고 있다.


참 다르기도 하지.





바게트 왕국의 단면 ⓒ 마틸다 하나씨

(탑마트에는 이렇게 바게트 빵을 잔뜩 떼어가는 상인들의 카트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줄을 선다. 빵이 나오자마자 다 쓸어가는 이들 때문에 바게트를 하나 사려면 마트 한 바퀴는 다시 돌고 와야 살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오토바이를 세워 손쉽게 사갈 수 있도록 대형 마트 앞 대로변에는 바게트 상인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우리 가족은 이들을 '바게트빌런'이라 부른다. 온갖 사람이 만져서 세균이 득실거리는 카트에 종이 한 장 깔지 않고 빵을 실어가 팔고 그걸 사람들이 먹는다는 것에 나는 입틀막을 하곤 한다. 이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라도 베트남 뉴스에 마트 카트의 세균 수를 제보해야 하나 매번 고민한다. 정말 카트에 세균이 많다는 걸 몰라서일까, 아니면 내가 안 먹는 거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양심없는 놈 심보일까. 아무튼 여담으로 베트남의 '바게트빌런'들을 신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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