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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베트남 스웨그는 '논'으로부터

" NÓN _논만 쓰지 왜 바가지를 씌워

베트남 전통모자 '논(Non / Non la)'을 쓴 꽃 파는 아주머니

군데군데 녹이 슬어 빈티지함이 폴폴 묻어나는 자전거

그 위에 실린 라탄 바구니 속 풍성히 담긴 예쁜 꽃들


베트남 길가에서 이 셋을 한 자리에서 마주하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 동네 골목 귀퉁이에도

나의 감성을 향기롭고 따스하게 터치하는 꽃 자전거가 있다.

우리 직원이 가끔 예쁜 꽃 한 다발을 안겨준다.

"이만동(천원)에 샀어요. 너무 예쁘죠?"

하지만

내가 가면 십만동...이십만동...(오천원...만원)

"자꾸 이러기야.. 나 지금 17년차라고!'"

아직도 여전히 우리 동네 그 집의 꽃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못 사러 가는 아이템이다.

"나에게 정직하다면 당신의 매출은 엄청 올랐을 거야.

내가 카페에 장식할 꽃을 매일 사러 왔을 거고, 내 친구들도 다 소개해 줬을 테니까"

큰소리쳐보지만 고집스럽게 웃어버리는 꽃자전거 아줌마.

한결같은 아줌마 덕분에 이젠 내가 억울한지 그녀가 억울한지 헷갈릴 지경이다.

"자꾸 이러기면 난 아줌마 옆에 갓을 쓰고서 커피를 팔 거야

에브리바디 한 잔에 이만동, 하지만 아줌마만 이십만동!" 하면서 어깃장을 놔봐야 아줌마는 꿈쩍도 안 한다. 


꽃에 대한 진심이 일상에 녹아있고
커피와 차를 여유로이 즐길 줄 아는 베트남 민족

아침 장을 보러 나온 여자들의 손에는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싼 꽃다발이 들려있다. 

특별한 날에 꽃꽂이를 하는 한국의 정서로 보면 

베트남 여자들은 매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들인 것만 같아 보인다.

낭만이 있고 여유가 있는 아름다운 민족의 스웨그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이런 바가지 아줌마의 이상한 고집쯤에 내 카메라 렌즈 문이 닫히지는 않으니 어쨌든 베트남 '승'이다.


베트남의 시각적 낭만 아이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아이템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Non(논)'을 꼽을 것이다. 

여행객들의 손에 들려 비행기를 함께 타고 가는 수브니어도 바로 이 '논'이니 말이다.


꽃을 판다면 꼭 '논'을 쓰고 팔아라

베트남인들의 불문율일까.

감성 좀 아는 꽃집 아줌마들의 필수 아이템일뿐더러

거리의 청소부들도 이 모자를 쓰고

튀긴 도너츠 과자와 과일을 파는 상인들도 어디에서나 논을 쓰고 있는 걸 심심찮게 보게 된다.

논을 쓰고 과일과 야채를 파는 베트남 상인 (출처 @ Google)


이들에게 시선을 멈추고 있노라면 왜 한국인은 '갓'의 문화를 이어오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몰려온다. 

오버핏 룩에 갓을 코디하면 꽤 힙할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갓은 양반, 선비, 남자의 시니피앙(기호)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저 옛날에 머물러 있다.

자외선을 다 통과해 내고 비도 막지 못하던 비실용적인 갓은

선비의 절제미를 표현하는 그 미학적 가치만으로 세대를 물려 내려와 인기의 역주행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베트남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논을 만들어낸다. 

7개의 대나무 틀을 세우고 코코넛 잎, 바나나 잎, 옥수수 잎등을 물에 담금질 후 꺼내 말려 엮어 원추형 모양의 틀을 갖추고 마지막으로 바니쉬 칠까지 해주면 비도 거뜬히 막아내는 우산대용의 훌륭한 방수 모자가 된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신분의 차이 없이 누구에게나 충분한 모자의 역할을 하며 세대를 물려왔다. 현재까지 전통모자 '논'을 생활 속 어디서나 쓰고 생활한다. 


이들의 평범한 습관이 베트남 감성 1호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는 걸 보면 참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에 전시된 논을 만드는 재료 ⓒ 마틸다 하나씨



'논'은 뾰족한 산의 모양을 가졌다.

하늘 아래에
사람의 가장 위에
 '산'을 얹고 다니며
햇볕과 비를 막는 민족이다.


스케일이 크다.

스웨그가 있다.


어느 곳이나 사람들이 고전의 전통을 이어와 

그것의 가치가 오늘날까지도 반짝거리게 하며 사용하는 물건에는 

그에 흠뻑 깃든 멋이 있다. 

그 멋을 오늘날의 일상까지 무심한 듯 묵진하게 이어나가는 

베트남 민족에게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커튼콜 박수를 쳐주고 싶을 지경이다. 


전통을 일상 속에 이어오며 다져온 그 단단한 중력이 있기에

베트남에 깃든 이국적 감성은 모두 이 산으로 끌어 모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대를 물려 베트남 논을 만드는 장인 가족 ⓒ vinper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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