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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신뢰의 굴절

" XIN LỖI_'미안하다'는 말은 네 마음의 반사야

우리의 속도가 달라서일까…

우리의 매질이 달라서일까...


베트남 사람은 한국의 情을 몰라.

한 순간에 얼음처럼 돌아선다. 절대 정 주지 마.

믿지 말고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줘라.

그게 아니라면

한평생 먹고 살아갈 기술을 가르쳐 준다 생각하고 그들을 섬기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


베트남살이 선배들이 내가 바보같이

다친데 또 다칠 때마다 답답한 듯 조언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신뢰는 반사가 되어야 하고

시간과 함께 그 두께가 두터워져야 하는 법 이거늘.

이곳에서 내가 갖는 신뢰는 짝사랑처럼

매번 방향을 바꾸어

다른 각도로 꺾여 버리니까

참으로 이상도 하지.

갑을의 길은 원래 비스듬하게 생겨 먹어서 인가.

나란히는 당최 걸을 수 없는 비좁은 오솔길인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나쁜가.


십 년간 거쳐간 정직원도 아르바이트생도 합치면 천 명은 되지 싶다. 몇 년을 정주고 깊이 신뢰했던 직원들도 횡령이라는 화려한 배신을 날리며 떠나갔다. 심지어 우리 카페 살림을 떼어다가 두 집 카페 살림을 한 당당한 관리자도 있었다. 봉투로 급여를 지급하던 시절, 잠시 돌아서면 밑장 빼기 정도는 기본 스킬이다. 그러다 자신의 잘못이 들통나도 베트남 사람들 당최 '씬로이 Xin lỗi'(미안해요)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전쟁의 아픔을 겪어오면서 또 사회주의 공화국 체재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수반되는 가혹한 책임이 학습되어 그 한마디 말을 그리 아끼는 민족이 되었다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딱히 맘에 차진 않지만 그래도 몇 개월은 일할 거 같아 4주를 꼬박 교육시켜 온 직원이 첫 달 월급이 계좌에 찍히자마자,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는 문자를 찍어 보낸다. 그러고는 내가 답할 새도 주지 않고 스태프 온라인그룹에서 나가기를 눌러버린다. 그래도 우리가 더 번창하길 바란다는 인사라도 남기는 직원이 있다면 감동이란 걸 하고 있는 내가 참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그중에 가장 책임감 있어 보이는 녀석에게 온 비전을 쏟아주며 칭찬을 쏟아주었더니 한국에 가서 공부하는 게 꿈이라는 고백을 한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편은 한국에서 베트남 청년들을 지원하는 선교 협회에 열심히 다리를 놔주었다. 평생 잊지 않겠다는 인사로 몇 번을 꾸벅이고는 바로 이튿날 그 입을 딱 닦고 그만둔다는 통보를 한다. 이렇게 이해로는 이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배운다.


베트남 사람만 그런가?

10년을 넘게 믿은 한국 사람도 똑같더라

그의 반을 살짝 열어 보여주자 나는 바보처럼 내 것의 전부를 다 열어 주었다.

그 속에 있는 것도 빼앗고 밖에 있는 것도 빼앗아 열개를 가지고도 내게 남은 한 개를 마저 빼앗아 가더라.

마지막으로 남겨 뒀어야 할 죄책감을 거룩의 옷으로 덮어 입고 구역질 나는 위엄마저 갖추었더라.

너덜너덜 파르르 해진 마음 조각들을 어디 둘지 몰라 나만 그렇게 몇 년을 헤매었더라.


이런 나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따스한 햇빛 같은

이들도 있더라.

그만둔 지 몇 년이 지나도 매년 생일 꽃 바구니를 보내주는 귀여운 미소의 옛 직원이 있고, 몇 년이 흐른 뒤에 못 알아볼 모습으로 찾아와서는 우리에게 배운 시간이 자신의 성공에 귀한 초석이 되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고 금의환향하는 직원도 있었다. 아직도 몇 년을 한결같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직원이 있고,

회사에 들어온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뿐인데 십 년간의 그 어느 직원보다 우리의 생각을 공감하고 진심으로 동행하고자 하는 직원도 있다.

이건 내게 쏟아지는 축복의 답변이다.


그러니까 신뢰는 굴절되지 않는 게 정상이지.


믿지 않고 정 주지 않으면서도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일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방법을 나만 모르나.

그 어려운 걸 다른 사람은 다 할 줄 안다는 것인가.


아니.


굴절된 신뢰는

표면적 착시다


바다가 태양을 맞이할 때

공기의 길이 인도하는 방향과

바닷길이 인도하는 방향이 달라서

오른쪽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왼쪽으로 들어온 것 같아 보일 뿐


그저, 태양은 바다로 들어갔다


어쩌면 앞으로도

내가 베트남땅을 떠나는 날까지는

꾸준히 일관성 있게

신뢰라는 녀석이 굴절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굴절을 반사라고 읽겠다.

정체불명 굴절각은

나를 꺽지 못할 테니까.


반사는 애쓰지 않아도 된다. 베트남인이 미안하단 말을 아끼려 애쓰지 않기를. 그저 네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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