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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여자는 울면 돼. 아니면 0원 찍힌 계좌

"XE MÁY 오토바이_그 물결 속 법칙


길을 지나다 보면 꽤나 힘이 들어가 보이는 그들의 폼에 웃음이 나는데

운전대를 잡고 있다 만나면 심장이 쿵쾅 거리는 사람은?

바로 천하무적, 베트남의 교통경찰이다.


비가 오거나 러시아워가 되면 특히나 꽉꽉 막히는 인터섹션.

좌회전과 직진 신호를 동시에 주는 탓에 직진 라인의 오토바이들과 차들은 공격적으로 직진해서 달려오고

신호가 바뀌어도 좌회전 라인에 선 자동차 바퀴를 다 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호 체계부터 문제가 많지만

그걸 도우러 나온 경찰은 오히려 네 방향의 흐름을 더 꼬고 있을 때가 많다.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온다. 

"우리 제발 집에 빨리 갈 수 있게,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될까요? ~~ 네??"

간곡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신호 체계가 무너진 인터섹션 (좌) 도로가 막히면 인도 위로 달리는 것이 예사다 (우) (출처@Google)


꽉 막힌 도로를 탈출한 오토바이들이 너도 나도 따라 인도 위를 마구 침범해도

그 누구 하나 저지하는 교통경찰이 없다. 암묵적 허용이다.

하지만 러시아워도 아닌 평온한 시간에 도로 위를 멀쩡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이 

경찰의 곤봉대 앞에 시동을 꺼야 하곤 한다.

내가 미처 모르는 베트남의 교통질서와 규칙이 분명히 있는 거겠지? 해보지만

이내 그들만의 규칙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명절이 가까우면 많이 잡을 것. 

이유가 없지만 이유를 만들 것.

가끔 진짜도 잡을 것.

너무 비싸 보이는 오토바이는 잡지 말 것. (고위층의 자녀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일까 흠...)

이상하게도 힘없는 여자, 학생들의 낡은 오토바이가 확률적으로 많은 수로 경찰의 핸드바에 저지당한다.



'동푹 까인 쌋 DỒNG PHỤC CÀNH SÁT(경찰제복)'을 마주하거든 매뉴얼을 꺼내라.'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리는 사람들 (출처@Google)


우리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맞짱구치며 하하 호호하고 있다. 뭐가 그렇게 재밌나 싶어 귀 기울여 보니 각각 교통경찰 만났을 때의 매뉴얼에 대해 서로의 말이 끊길세라 자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찰에게 잡히면 바로 울면 돼"

한 여직원이 말하자 옆에 있던 직원은

"난 텅텅 빈 지갑을 보여줬더니 계좌이체를 하라는 거야.

은행 앱을 열어서 0원 찍힌 계좌를 보여 줬더니 한숨 쉬면서 그냥 보내주더라"

옆에서 나의 남편도 끼어든다.

"앞 범퍼가 깨진 스쿠터를 타고 가다 이유도 없이 잡혔는데 면허증을 보여달래서 보여주고는 빈 호주머니 양쪽을 꺼내 텅 빈 하얀 속을 보였줬더랬지. 한심스럽게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한국인이 이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지경이면 얼마나 돈이 없는 거겠나 하는 눈빛으로 가라고 하더라고. 오토바이 새로 사지 말아야겠어"


베트남 국가 공무원의 월급은 아주 낮다. 꽤 지위가 높은 사람이 그의 한 달 급여가 450불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는 모두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사석에서 만나는 그들의 손가락에는 아파트 한 채씩은 할 것 같은 다이아 반지가 끼어져 있다.

교통 단속에 걸려서 내는 벌금은 모두 국가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을 우리는 다 안다. 


명절이 가까워 오면 어쩜 저리 스마트 한 포인트를 잡았을까 싶은 지점마다 교통경찰이 숨어있다.

평소보다 유독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경찰님들, 

조금만 더 납득이 되게 스마트해지면 안 될까요?

당신들이 세운 법칙들 때문에 '교통경찰로부터 해제되기 매뉴얼'의 급진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것보단

인도를 차도로 사용하는 비양심적인 무더기들을 잡고

대낮에도 등짝에 용기가 뿜뿜 하는 노상방뇨 자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일 것 같은데 말입니다. 빼박 증거를 가진 이들을 현장체포하면 매뉴얼을 꺼내들 일은 당연히 없을 거구요.'

이렇게 속으로 외쳐봐야 변함 없는 그들...

공정한 벌금으로 그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진다면 차라리 덜 억울할 것 같다. 


몇 년 전, 20km 정도의 속도로 아파트 정문 코너를 벗어나며 우회전을 하던 중이었다. 그랩 오토바이 운전자가 나가는 방향으로 역주행해 들어오면서 우리 차 범퍼를 박았다. 백 프로 역주행 운전자의 과실이었다. 그러나 교통경찰이 와서 중재하길 "네가 돈 많은 한국인이니까 이해하고 그냥 저 사람을 보내줘라. 그랩 운전자는 돈이 없어" 말도 안 되는 흥정이 들어왔다. 주위에 있던 그를 모르는 베트남 사람들은 그 운전자를 몰래 도망치게 해 주려 돕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안되지. 도망가는 그를 붙잡고 카센터로 같이 갔다. 한화로 약 50만 원의 견적이 나왔는데 세상이 무너진 듯 우는 그랩 운전자를 지켜보다 결국 우리가 반을 부담하고 그가 반을 부담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17년간 베트남이란 곳이 우리에게는 늘 이런 곳이었고, 자국민 보호가 1순위인 남의 나라에서 보상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보다 자가운전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이방인이었다. 


이러하다 보니 교통경찰에 대한 선입견을 버릴 래야 버리기 힘든 베트남이었다.

베트남 정부도 이러한 교통경찰의 부패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한 때는 배 나오고 뚱뚱해서 욕심 많아 보이는 사람은 교통경찰로 선발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경찰뿐 아니라, 군인, 관공서 직원, 경비 아저씨들마저 제복을 차려입는 

베트남은 '제복의 나라'이다. 

하노이는 언뜻 보면 상당히 자유롭고 무역이 활발한 나라인 것 같지만, 사업상 경제 경찰을 마주해야 하거나, 국세청 관료들을 만나게 될 때면 꽤 무거운 사회주의 공화국의 침전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자꾸만 이들의 제복은 삥 뜯는 관공서의 유니폼으로 보이곤 한다. 

카페에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올 때가 있다. 오늘은 무슨 돈을 받으러 왔을까 하며 의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 즈음 그의 연인이 들어온다. 로맨티스트 제복맨을 의심해서 얼마나 미안하게 느꼈었는지 모른다. 부패가 만연한 것도 사실이지만 선입견부터 갖고 있는 나를 질책할 때도 있다. 


2006년 4월, 베트남 공항에 처음 내린 날, 숨을 턱 막히게 한 아우라는 짙은 카키와 황토색의 제복들이었다. 어깨에는 금별이 달리고 가슴팍에 달린 빨간 국기마저 위엄 있게 수 놓인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탁한 색감과 굳은 표정으로 곳곳에 서 있었다. '아 내가 지금 사회주의 공화국에 발을 내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었다. 시내 한복판에는 북한 대사관이 있는데 그 건물의 창문이 열리는 걸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폐쇄적 분위기로 주변을 압도하고, 그 앞에 총을 들고 지키는 제복 경찰들은 하노이 시내에서 가장 심각해 보이는 것도 같다. 그렇게 베트남의 첫인상은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담긴 제복이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제복의 위엄을 무너뜨리지 않길 바란다. 

정의로운 경찰들로 탈바꿈하여 이전의 선입견으로부터 더 이상 억울해지지 않을 베트남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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