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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호수의 호는 호텔의 호?

" HỒ 호수_호안끼엠과 호떠이의 데이트

 처음 만난 베트남 사람들이 저돌적으로 질문한다.

 ‘엠 바우니에우 뚜어이? (너 몇 살이니?)'. 기분이 슬쩍 나빠지려고 한다. 

'첫마디부터 대뜸 나이를 묻고 그래. 대답을 해줘 말아? 그런데 내가 대체 몇 살인줄 알기나 하고 나더러 '엠(동생)'이라는 거야?'

상대에 따라 다른 호칭을 모든 문장의 주어마다 바꿔 써야 하는 베트남어의 특성상 서열정리를 하려면 필수 불가결한 첫 질문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막 들이대는 이들의 저돌성이 썩 괜찮지가 않다. 

하지만 이들의 직진 질문에 담긴 '직진' 기호는 
어디서나 배어 나오는 이들의 과감한 습성임을 알아버렸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당시는 한인 교민수가 7만 명이 되어가는 지금과는 달리 우리는 몇 안 되는 신기한 외국인이었다. 길을 걷고 있으면 갑자기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았다. 베트남 사람들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하지 하면서 깜짝 놀랐다. 어떤 이들은 영어도 프랑스어도 정말 훌륭하게 잘했고 또 어떤 이들은 잘하지 못했지만 잘했다. 좀 틀려도 영어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에 너무나 당당해서 토플토익 고득점 받아도 입술은 굳어있기 일쑤인 한국인 입장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꽤 불쾌하던 저돌성은 패기와 자신감으로 인정하도록 전환되어 갔다. 


그 당당함은 애정 표현에도 그렇게 직진일 줄 미처 몰랐다.


2006년 4월 작고 하얀 꽃잎이 날리고 호수 위에 비친 햇살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서쪽의 호수, 떠이 호.

하노이에서 가장 크다는 호수를 처음으로 구경 나온 날이었다.  

둘레가 13km나 된다는 강 같은 호수다. 떠이 호 맞은편의 쭉 박 호숫가를 빙 돌아 수십대의 오토바이가 라인업을 하고 있었다. 주차 사이의 간격은 1m를 넘지 않을 듯했다. 오토바이에 앉은 연인들이 그 가까운 간격 따윈 아랑곳 안 하며 키스 라인업의 진풍경을 선사했다. 어어어~ 이 사람들 여기서 왜 이러는 거지? 

지나가는 사람들도 아랑곳 안 하는 이 정도 스킨십이면 호수가 아니라 호텔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베트남은 호수의 '호'가 호텔의 '호'였어?'......


이 날 너무 놀랍게 목도한 그 광경을 늘어놓자 누군가 이야기하셨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민중들의 정치적 관심을 저하시키기 위해 성적 개방을 더 부추기는 경향이 있거든. 앞으로 베트남 살면서 쎈 걸 많이 보게 될 거야.” 

아이고…그럼... 여기서도 '직진?' 

'나는 그냥 기대를 하면 되는 거야?'

오토바이 라인업의 사진을 못 남긴 것이 아직까지 못내 아쉽다 (출처: @ google)



호수의 도시 하노이의 한자어 표기는 河内하내이다.

강을 뜻하는 하(Hà)와 안을 뜻하는 (Nội)

'강 안에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이름에 걸맞게 하노이 시내 안에만 해도 300여 개의 자연 호수와 인공 호수가 있다. 덥고 습하고 모기도 잘 생기는데 호수가 없으면 인공 호수라도 파서 아파트를 올리고 집값을 올리는 베트남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진정한 호수 러버인 이들의 낭만을 그 누가 말리겠는가.


호안끼엠 둘레의 나무들은 호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호수를 향해 굽어 버렸다 ⓒ 마틸다 하나씨


베트남의 전설은 천년의 역사를 담은 호수로부터 시작된다. 

올드 쿼터에는 돌아온 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호안끼엠(환검호)이 있다. 15세기 명나라가 베트남을 침략했을 때 레러이 어부에게 나타가 신령한 검을 준 황금 거북이 덕에 저항군을 규합해 항전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일화가 있는 곳이다. 훗날 레 왕조의 왕이 된 레러이는 승전을 자축하며 호수에서 예를 올리던 중 천둥이 치며 거북이가 물에서 나와 칼집을 낚아채 다시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깃든 호수다. 한 십여 년 전에 오백살로 추정되는 거북이가 실제로 이 호수에서 생포되었다. 사람들은 그 신비의 거북을 박제하여 호수의 응옥썬 사당에 모시고 있기도 하다. 하여 전설이 사실로 남아 있기도 한 신비로운 호수이다. 


하노이의 주요 관광지인 이 호안끼엠 호수를 중심으로 36개의 스페셜리티 길이 방사형으로 펼쳐지고 있고 각 거리마다 특성을 가진 상품을 팔고 있다. 은을 파는 거리, 실크를 파는 거리, 철물을 파는 거리, 문구류를 파는 거리 등등 각각의 특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인력거 자전거 시클로를 타고 이 길들을 한 바퀴 도는 것이 하노이 필수 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천년을 담은 전설도, 물건 구매도, 사랑도 데이트도, 낭만 챙기기도 

모든 것이 호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재미난 나라이다.


하노이 생활이 답답할 때면

'우리 오늘 호떠이에 바람 쐬러 갈까?'

호숫가 데이트가 스페셜 해진

어느새 우리도 반 베트남인이다.

"그럼 오늘은 오토바이 타고 갈래?"라고 해보지만

남편은 내 말을 알아듣는 건지 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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