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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그대들의 잠옷은 All in One

" ĐỒ NGỦ 잠옷_ 패션 규칙 브레이킹 


2006년 하노이의 거리에는

와인빛, 금빛 혹은 블랙 실크 잠옷을 입은 여성들이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쏠쏠히 지나가곤 했다.

입은 벌어지고 눈이 동그래져서 그녀들이 사라질 때까지 내 고개는 저절로 따라 움직였다. 섹시한 끈나시의 실크 원피스부터(사실 잠옷이라기 보단 속옷에 가까웠다) 루이뷔통 패턴이 빼곡 채워진 투피스 잠옷, 귀여운 패턴이 인쇄된 면 잠옷까지 그녀들은 다채롭게 입고 나왔다. 너무나 새롭게 마주하는 광경 속에서 그것이 괜찮은 건지 문제가 크게 있는 건지 정의하기 전에 그녀들의 마인드 체계가 너무 궁금해졌다.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실크 생산국에 대한 자부심인가? 케이트 모스, 켄달 제너처럼 자유분방한 패션을 즐기는 할리우드 모델과 배우들로부터? 잠옷 패션을 리드하는 명품 브랜드의 영향으로부터? 유교 문화권인 베트남에서 좋은 시선을 받을 리가 없을 텐데 그녀들은 잠옷, 실내복, 외출복 사이의 경계와 패션 규칙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있었다. 


2023년 하노이의 거리에는

그 수가 많이 줄은 듯 하나 여전히 잠옷바람으로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나오고

어린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누나를 따라 다양한 캐릭터 잠옷 자랑을 하려는 듯 입고 나와서는 신나게 뛰어다닌다. 아파트 1층에 내려와 스트레칭을 하시는 할아버지와 아저씨들도 예외는 아니다. 긴 잠옷 바지면 차라리 나으련만 트렁크 팬티를 입고 흰 런닝은 가슴팍까지 걷어 부쳐 허여멀겋고 둥그런 배 자랑을 하고 있으면 내 시선은 갈 곳을 잃는다. 저녁마다 남편과 함께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데 늘 우리 앞에 두 세명은 잠옷을 입고 함께 운동하고 있다. 그뿐인가, 초저녁의 어둠이 깔리면 아파트 광장이나 인도 위에는 커다란 스피커를 들고 나온 아줌마 부대들의 에어로빅 향연이 펼쳐진다. 이 중에 에어로빅복을 갖추지 않은 자가 있다면 여지없이 실크 잠옷을 입고 대열에 야무지게 서서 허리와 엉덩이를 박력 있게 흔들어 대고 있다.

잠옷 패션은 섹시함을 표효하고 싶은 젊의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17년이 지났는데도...


'잠옷'은 베트남인의 버라이어티 한 외출복이며 운동복이다.


우리에게 잠옷이라 함은 은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가장 편안하게 입고 싶은 옷이다.

사실 나는 집에서도 그런 잠옷을 잘 안 갖춰 입는다. 편한 티셔츠에 부드러운 바지나 면 원피스 정도를 즐겨 입는 편이다. 나의 개념으로 보면 실크 잠옷은 결혼기념일에나 꺼내 입을 특수 의상이니까. 세 아들들 앞에서 실크 나시 잠옷을 입고 식사를 준비한다고 상상만 해봐도 민망해져 오는 나는 그저 한국인이다.


어쩌면 이들은 가장 부드럽고 편하지만 심미성도 갖춘 실크 잠옷을 최고의 외출복 겸용으로 인식하는 것일까? 섹시한 잠옷의 디자인이 혼자 보긴 아까워서 모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잠옷을 입고 외출했다 집에 가면 츄리닝으로 갈아입는 반전이 있는 건 아닐까? 

설마 저 옷을 입고 돌아다니다 집에 가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자는 건 아니겠지?

수많은 질문이 따라오며 설마 정말로 잠옷과 일상복에 대한 위생개념이 없어서일까 혀를 끌끌 차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베트남인의 의복의 수가 적어서, 오픈된 형태의 가옥구조에서 대가족이 주로 함께 사는 문화이기에 쓰임새 별로 옷을 자주 갈아입는 일이 쉽지 않아서라고 설명한다. 그 말도 맞다. 어르신들에게는 의복이 얼마 없고 상하의 세트로 구성된 잠옷이 외출복으로써 손색없을 포멀 한 느낌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베트남 여성들은 그냥 잠옷이 너무 편한 옷이니까 청바지류보다 외출복으로 선호한다 등으로 그 이유를 말한다. 여성의 평등과 신체의 해방을 주장하는 어느 페미니스트로부터 계획된 결과물이 유행을 만든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은밀함도 공유해야
만족감이 채워지는 민족'

이라고 해석하려고 한다.

아무리 편한 옷이라 해도 아무리 입을 옷의 수가 적다 해도 잠옷을 외출복 대용으로 사용하겠단 생각을 어느 나라 사람이 쉽게 할 것 인가 말이다. 나는 이들이 어느 상황에서도 대범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원하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당연히 은밀함에도 예외를 줄 수 없다. 잠옷 문화야말로 정말 베트남인의 과감함을 그대로 투시한다. 유명한 한 여배우의 한국행 공항 패션이 잠옷이었고 베트남에 잠옷 패션을 더 부추기게 되었다고 쓴 소리를 듣고 있다. 저 배우가 베트남 공항을 출발할 때도 많은 시선을 받았겠지만, 인천 공항에서 받았을 그 수많은 시선들을 생각해 보면 내 뒤통수가 다 따가워져 온다. 

 

공항 패션부터 슈퍼마켓 패션까지, 과감부터 화끈까지 ⓒ Danviet.vn


우리나라 예식장에는 '민폐하객'이라는 정의가 존재한다. 순백으로 빛날 신부에게서 시선을 분산시킬 화이트 의상, 너무 튈 화려한 무늬와 원색의 옷을 입고 가면 욕을 먹는다. SNS에서 민폐하객 의상 리스트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니 우리나라 예식장은 회색 검정 카키등의 어두운 모노톤으로 단장하고 가야 센스 있고 세련된 하객룩이라고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베트남의 결혼식은 놀 줄 아는 언니 오빠들이 모인 모두의 파티다. 반짝반짝 보석이 박힌 드레스부터 화려한 수가 놓인 아오자이를 맘껏 뽐내고 맘껏 즐기는 날이다. 그들의 파티는 활력 있고 해피하다. 친정에서 하루 시댁에서 하루 예식장에서 하루 그렇게 결혼식을 보통 3일에서 5일에 걸쳐 성대히 치른다. 파티를 진정 즐길 줄 아는 멋진 민족이라는 생각이 볼 때마다 든다.


파티의 민족인 이들은 5일의 결혼식 잔치를 누려도 성에 안 차는 것만 같다.

파티날만 화려한 건 참을 수가 없는 모양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들의 잠옷 패션은 일상에서조차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고 매일을 파티로 즐기고 싶은 성정으로부터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젖은 머리의 샴푸 향기를 날리며 잠옷바람으로 나와서 장보고 들어가 그대로 잠자리에 드는 그대들.

먼지가 다시 묻을 텐데 왜 순서를 반대로 하는 걸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실내 패션마저 남에게 보여줘야 직성이 풀리는 그대들에게 나의 위생 순서 따위는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2 in One도 아니고 All in One인 그대들의 잠옷패션

이제 너무 익숙하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런데 해외에서 '베트남'하면

제복을 입은 딱딱한 사회주의 이미지 혹은 

'논'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목가적인 이미지를 메인으로 떠올린다.

이런 화려함과 대범함을 다 갖춘 베트남 민족에게 씌여진 수수한 동남아국가의 이미지라니…

이건 너무 아이러니하고 억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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