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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Jan 16. 2024

백 년을 지켜 온 집_믹스 매치의 도시, 하노이

백 년을 지켜오는 동안

수만 개의 발자국이 지나갔겠지

수만 개의 이야기가 무늬 없이 각인되었겠지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 소중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진귀함으로 봉인되어

고이 간직되는 곳

그곳은 ‘집’


원거리 줌을 당긴 누군가의 망원렌즈에

한 사람이 담길 때에

지나치는 길가의 어떤 한 사람일 뿐인 인생으로

세상의 한 구석 소리 없이 피어나다 사라지는 연기 같건만


우리는

둘도 없을 소중함을 품은

소우주로 창조되어

이름을 남기고

이야기를 남기며

살다가

흙이 된다


소중한 순간들이 아스라이 사라지고

남은 흔적조차 닦여 나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시간이

겹치고 또 흐르고 흘러

가슴이 아린 옛 기억이 눈물을 흘릴 때에

아프고도 좋았던 그 그리움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가고

새 이야기로 덧입혀지는 백 년의 세월

집에는 또 그렇게 백 년이 다시 흐른다.


대부분 프랑스 강점기에 지어진

베트남의 가옥들은

때로는 낡은 백 년을 그대로 담고 있고

때로는 새 옷을 갈아입고

소리 없는 기품을 뿜어낸다.


1901년에 지어진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는

백 년이 넘은 세월을 거슬러 보기에는

옛날 옛적 사진을 찾아볼 길밖에 없다

프랑스 강점기에 지어진 오페라 하우스 (사진 수집)


장띠엔 백화점은 백 년을 거슬러 올라오며

명품매장을 보유한

하노이 면세점으로 성장하였다

백 년 전의 장 띠엔 백화점 (사진 수집)



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는 동안

살을 입히기는 했으나

뼈대는 그대로 지켜온 베트남의 뚝심이 참 존경스럽다

장띠엔 거리는 백 년 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해 오고 있다

왜 그간 이곳은 변하지 않았을까의 시선을 가진 한국인에게

백 년이 살아 움직이는 베트남으로 바라봐 주겠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거리는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지금보다 옛 길이 더 예쁜 건 아쉬운 일인데…

흑백이 컬러로 변했지만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클로는 굴러간다


올드쿼터의 중심에서

꾸준히 하얀 새 옷을 갈아입은

메트로폴 호텔은 세월을 느낄 수 없게 하지만

벽 위에 선명히 각인된

‘1901’

사뭇, 가슴을 뛰게 하는 숫자가

123년을 담은 집이라 당당히 말하고 있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 이렇듯

백 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지켜오는 집을 자주 만난다.

때로는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

때로는 각인된 건축 연도가 없었다면 가늠하지 못할 새 모양으로


부수고 새것을 세우고 채우는 것만이

발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도시

1900년대의 어딘가에서 2024를 들락날락하는 듯

오묘하게 옛것과 새것이 믹스 매치된 매력이

도시를 감싸 안고 있다.


백 년을 지켜내고

또 다른 백 년을 지켜가는

하노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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