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을 지켜오는 동안
수만 개의 발자국이 지나갔겠지
수만 개의 이야기가 무늬 없이 각인되었겠지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 소중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진귀함으로 봉인되어
고이 간직되는 곳
그곳은 ‘집’
원거리 줌을 당긴 누군가의 망원렌즈에
한 사람이 담길 때에
지나치는 길가의 어떤 한 사람일 뿐인 인생으로
세상의 한 구석 소리 없이 피어나다 사라지는 연기 같건만
우리는
둘도 없을 소중함을 품은
소우주로 창조되어
이름을 남기고
이야기를 남기며
살다가
흙이 된다
소중한 순간들이 아스라이 사라지고
남은 흔적조차 닦여 나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시간이
겹치고 또 흐르고 흘러
가슴이 아린 옛 기억이 눈물을 흘릴 때에
아프고도 좋았던 그 그리움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가고
새 이야기로 덧입혀지는 백 년의 세월
집에는 또 그렇게 백 년이 다시 흐른다.
대부분 프랑스 강점기에 지어진
베트남의 가옥들은
때로는 낡은 백 년을 그대로 담고 있고
때로는 새 옷을 갈아입고
소리 없는 기품을 뿜어낸다.
1901년에 지어진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는
백 년이 넘은 세월을 거슬러 보기에는
옛날 옛적 사진을 찾아볼 길밖에 없다
장띠엔 백화점은 백 년을 거슬러 올라오며
명품매장을 보유한
하노이 면세점으로 성장하였다
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는 동안
살을 입히기는 했으나
뼈대는 그대로 지켜온 베트남의 뚝심이 참 존경스럽다
장띠엔 거리는 백 년 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해 오고 있다
왜 그간 이곳은 변하지 않았을까의 시선을 가진 한국인에게
백 년이 살아 움직이는 베트남으로 바라봐 주겠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거리는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지금보다 옛 길이 더 예쁜 건 아쉬운 일인데…
흑백이 컬러로 변했지만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클로는 굴러간다
올드쿼터의 중심에서
꾸준히 하얀 새 옷을 갈아입은
메트로폴 호텔은 세월을 느낄 수 없게 하지만
벽 위에 선명히 각인된
‘1901’
사뭇, 가슴을 뛰게 하는 숫자가
123년을 담은 집이라 당당히 말하고 있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 이렇듯
백 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지켜오는 집을 자주 만난다.
때로는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
때로는 각인된 건축 연도가 없었다면 가늠하지 못할 새 모양으로
부수고 새것을 세우고 채우는 것만이
발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도시
1900년대의 어딘가에서 2024를 들락날락하는 듯
오묘하게 옛것과 새것이 믹스 매치된 매력이
도시를 감싸 안고 있다.
백 년을 지켜내고
또 다른 백 년을 지켜가는
하노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