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신고 진행 중
사실 연애 때부터 스스럼없이 친구나 부모님께 나를 소개해 줘 왔던 그이기에 결혼을 위해 부모님을 뵙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서로의 부모님이 만나는 상견례 자리가 걱정이었다. 우리는 어린 나이였고 준비가 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양가 모두 걱정이 많으셨고 시댁에서는 좀 더 즐기고 제대로 준비를 하고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하셨지만 우리 둘은 끝까지 정한 바를 밀고 나갔다. 서로의 자식이 더 예쁘고 아까웠던 부모님들이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은 내가 겪은 일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벅찼다. 한 사람 마음에만 들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릴 적 내가 진 빚 때문에 많은 충돌이 있었고 그게 참 부끄러웠다. 이런 현실들은 한 없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사람을 죽인 죄를 진 사람처럼 비참 해졌다. 그 외 결혼식, 집, 경제권, 부채, 자산에 관한 모든 것들이 부딪혔다.
완전 다른 환경의 두 집안이 만나 어떤 집안은 쉽게 풀릴지 모를 두 번의 상견례 자리지만 우린 막장 드라마 같이 의견이 맞지 않아 큰 소리가 오갔다. 부모님의 싸움에 우리 둘도 상처를 주고받으며 언성이 높아졌다. 그래도 같이 살고 싶어서 자존심은커녕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에게 갔다. 답이 없는 거 같아서 이러다 끝나겠다 싶었던 우리는 구청에 가서 혼인 신고를 했고 양가에서 혼만 났다. 혼인신고를 했을 때 받지 못할 혜택 같은 건 따질 새도 없었고 우리는 여기저기 죄송하다는 말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지냈다. 혼인신고서를 제출 한 날 실감이 나지 않아 우리가 진짜 부부인가 의아해하며 돌아갔다. 구청에서 처리된 혼인신고서가 나온 날 발급해서 가족 관계증명서에 배우자로 나오는 그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보면서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한 참을 내다보고 힘들 때 꺼내봤다.
남편이나 아내라는 호칭이 이상했다. 3자들에게 서로를 소개할 때마다 목에서 한 번 브레이크가 걸리고 소리가 나오는 거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래도 같이 있을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런데 이 난리 법석 와중에도 우리는 아기를 가졌다. 빨리 식을 올려야 해서 식 날짜를 당겼다. 야외 웨딩 촬영을 하던 날에는 양가 부모님께서 말씀을 나누신다고 만나셨는데 촬영 도중 계속 전화가 오셨다 결혼 엎으라고 하지 말라고 처음부터 이러면 어쨌든 갈라 선다고 서로의 부모님은 서로를 불러서 불만을 토해냈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챙겨주고 믿어줘도 모자란 때 잘잘못을 따지며 최선을 다해 서로를 할퀴었다. 여러 번 죽고 싶었고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는 남으면 안 되니까 우리는 서로가 할 수 있는 걸 끝까지 하려고 노력했다. 서로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여러 시도를 한 끝에 양가가 조율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있어 봤자 쓸모도 없는 자존심 같은 건 버린 우리는 준비가 될 때까지 자주 오시지 않는 시댁에 들어가 살기로 했고 식도 우리 힘으로 돈을 모아 나중에 제대로 하기로 했다. 이땐 몰랐다 이 문제들이 신혼 생활 내내 언급되며 서로에게 비수가 될지
싸움이 날 때면 과거 이야기가 나왔고 그럼 그때 결혼식 왜 취소 됐냐로 시작해 그건 네가 빚이 있었고 부모님 때문이다 나도 빚 없는 멀쩡한 여자를 만날 수 있었다로 이어지면 그럼 넌 집을 해와서 시댁에 사냐고 말하며 차가운 우리나라 현실 속에서 서로를 비참하게 만들고 자책하게 만들었다. 무한의 굴레였다.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고 왜 그럴까 원인부터 찾아 해결하려 들어도 또 때가 되면 서로를 원수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제일 상처받을 말만 골라 던졌다. 너 때문이다 아니 너 때문이지 반복하다가 진전이 없는 상황이 너무 지쳐서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한 동안 고요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을 억누르고 매일을 울면서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이건 아닌데 하고 마주 앉아 대화를 했다. 우리가 서로 잘 못되라고 하는 말도 아니고 미워하지도 않는데 왜 계속 이런 일이 생기고 반복되는지 모르겠다고 앞으로 부모님, 결혼식 이야기 서로 꺼내지 말고 넘어갈 거 적당히 넘어가고 참으면서 다시 잘 살아보자 말했다.
사실 우린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크고 같이 행복 한 시간을 보내며 좋은 추억을 더 만들고 싶을 뿐인데 계속 부딪히는 게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싸우고 나면 서로 내가 왜 이렇게 말했나 후회하고 미안해하면서도 반복하는 게 싫었다. 부모님을 봐도 같이 산지 30년이 넘어 아직도 싸우시는데 언제 아무렇지 않게 될까 싸울 때마다 죽고 싶게 힘들고 지쳐 쓰러지게 감정 소모를 하고 슬프게 우는데 그 싸움이 끝이 없다는 게 두려웠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하나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다른 환경에 자란 우리가 둘이 되어 서로의 루틴을 모두 버리고 맞춰나가는 건 정말 어렵고 서로의 눈에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너 대신 내가 바뀌자는 생각으로 참아나갔다. 하다 못해 설거지하는 방식까지 안 맞는 우리였고 단순한 남편은 시키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는 반면 난 시키는 게 오히려 미안하고 불편해서 그럼 나 없을 때 넌 어떻게 알아서 혼자 했냐며 투닥거리고 집안일이 우리 일이지 나 혼자 일 이냐며 그럼 나도 나가서 돈 버는 게 더 편하니까 돈 벌어올게 대신 아무것도 안 할 테니 네가 집에서 내가 하던 거 그대로 해 라며 자주 싸우기도 했다. 익숙 해 질 때도 되었는데 각자의 방식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대부분의 싸움은 집안일이었지만 그 외 내 불만은 퇴근 후 출근 시 아무 말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할 말만 하고 가버리거나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린 해결 법으로 출근 전 힘내라고 사랑한다고 마중 나가 인사하고 출근 후 반갑게 고생했다며 안아주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남편도 경상도 남자라 표현이 잘 안 된다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손에 뽀뽀를 하고 지나가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아침 잘 먹는다 표현했다. 점점 나아지는 거 같았다.
이제는 입덧 지옥에 빠졌다. 싱숭생숭 슬펐다 짜증이 났다 호르몬은 제멋대로에 허리디스크가 때문인지 눕기 힘들 정도로 꼬리뼈가 아팠고 매일 같이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 임신 전엔 매일 같이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힘들 때 술을 마시며 풀었는데 초기라고 조심해야 해서 남편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집안 일 하고 적적하게 하루를 보냈고 스트레스를 풀어낼 내 최대 도파민은 드라마나 영화가 다였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난 말이 많아졌지만 피곤해 보이는 게 눈치 보였다. 가끔은 나가는 것보다 예능이나 영화를 같이 보며 웃고 떠들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는데 남편은 내가 내용 집중 안되게 말을 해대서 같이 보기 싫다며 피했다. 합의하에 예약까지 해서 돈 내고 같이 찍으려고 간 사진관에서는 사진 찍는 거 싫어한다며 티를 팍팍 내더니 막상 나는 자신의 취미라며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같이 낚시를 가서 허리 아파도 오래 앉아 있고 드라이브하고 싶으면 같이 나가서 대화 상대도 되어주고 먹고 싶은 거 있음 먹으러 가주는 건 내가 아무리 하기 싫어도 참고 좋아하니까 그 모습 보려고 같이 해주고 가기 싫어도 따라가주고 좋아하는 척도 해줬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아니 싫어 안 봐 안가 말하며 싫은 걸 참는 법이 없는 게 참을 수 없이 얄미웠다. 그래서 또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