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탄 사랑
연애시절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한 와중 부정적이었던 내 이야기를 더 깊게 꺼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굳이 예쁜 추억들을 두고 나쁜 기억을 꺼내냐고 묻겠지만 나의 부정이 아름다워지기까지 그와 나의 노력은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
나는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누구나 싫어하고 곁에 두면 지치는 그런 부류처럼 머리 아파, 속이 안 좋아, 허리야 그럼 옆에 있는 그 아이는 처음엔 괜찮냐 공감하고 걱정하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자 네가 그러면 자기도 같이 아파지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인증 약과 수면제를 달고 살았다. 약을 안 먹으면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 꿈속 세상에 사는 기분에 잠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 아이는 옆에서 약에 의존하지 않고 잘 수 있게 도와줬다. 피곤하면 자게 되어있다며 힘든 운동을 시키기도 하고 나를 꼭 안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몇 년 이 걸린다 해도 노력하면 나을 수 있다고 완치되지 않는 건 없다고 취미도 만들고 운동도 하면서 같이 해보자고 말했다. 나는 그 아이가 같이 아파지는 게 싫어서 습관 처럼 하던 아프다는 말을 줄이고 참는 법을 깨닫게 되었고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자게 되어 이인증 약만 처방받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가 하는 어떤 말들을 나를 향한 공격이라고 느끼고는 했다. 하나둘씩 바꾸면 된다는 말에 왜 나를 네 입 맛에 맞추고 가두려 하냐 말했고 어떤 말에서는 그가 나와 누군가를 비교한다고 느끼며 자격지심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게 아니라고 했지만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고 공격적으로 말하며 나를 방어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아서 쉽사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못했는데 그게 그에게도 보였는지 편하게 내려놓고 마음 열어 주면 좋겠다고 자신에게 선을 긋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날 위해 그렇게 까지 해주는 그에게 내가 마음을 닫고 선을 긋는 걸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괜히 민망하고 미안해졌다.
심지어 난 집안일이나 살림도 부모님께 제대로 배우거나 해 보려고 한 적이 없어서 자취를 할 때 마저 부족한 모습을 보였고 밥도 챙겨 먹지 않았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을까 말까에 건강에 관한 걱정이라고는 안중에도 없었고 배고픈 느낌은 너무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에 날 위해 뭘 먹는다는 행위의 귀찮음이 더 컸다. 그러다 보니 누가 봐도 아파 보이는 몸무게 누군가는 연예인 몸매라고 부러워하는 168/43kg를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속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아침을 먹으면 토를 했다 괴로웠다. 매일 같이 저녁에 퇴근을 하고 오면 힘듦을 풀고자 집에서 혼자 부실한 안주에 술을 먹었고 그게 걱정된 그는 아침마다 내 밥을 해주기 시작했다. 먹기 싫기도 했지만 토 가 나오려 하는 게 힘들어서 안 먹는다고 했지만 매번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먹으라고 차려버린 밥을 버릴 수도 없으니 억지로 먹게 되었고 그게 어느 날 아침을 먹는 습관으로 잡혔다. 저녁에는 자주 먹던 혼술을 끊고 가끔가다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술을 먹는 법을 알려주었고 조금씩 살림이나 청소를 같이 하며 이렇게 하면 더 좋다는 것도 무시하지 않고 기분 나쁘지 않게 알려주었다.
제일 큰 문제점은 난 의지가 약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하다 말고 다른 걸 찾기 바빴고 끝까지 하기보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며 사는 습관이 들어있었다. 약간의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원래는 나도 끝까지 하고자 하는 열정과 멋지게 끝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고등학생 1학년 때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4년간 한 곳에서 꾸준히 일을 해 부점장을 달기도 했고 돈도 열심히 모아 놨으니까 그런데 가족의 권유로 그 일을 그만두면서 내게 전혀 맞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다른 직장에 억지로 들어가게 되었고 카드비를 내야 하는데 모자라서 힘드니 그동안 모은 돈을 보태라는 부모님께 그 시절 나를 바쳐 모은 모든 것을 드리고 받지 못하게 되면서 돈을 모으고 꾸준히 일 하는 재미를 상실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있던 날부터 나는 진득이 하나를 끝낼 수 없게 되었고 나약한 의지만 남아 빠른 포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한심 했겠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는 조용히 바라보고 응원해 주며 끝까지 한 가지를 끝낼 수 있게 용기를 주고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널 믿는다고 말해주며 옆에 있어 주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제일 먼저 달려와 이야기를 들어주고 걱정하고 기뻐해줬고 내 일을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생각하고 해결해 주었다. 결혼은 내 인생에 절대 없고 특히나 아이는 더더욱 없다고 어릴 적부터 사촌 언니와 결혼 먼저하는 사람이 서로의 추한 모습이 담긴 영상을 퍼뜨린다며 장난치던 영상도 있을 정도의 비혼주의였던 내가 이 아이라면 결혼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낭만 있는 말을 서툴게 전 할 줄 알고 정석적으로 조금은 어색하게 감동을 주는 경상도 남자인 그는 생일날에는 받아 본 적 없던 트렁크 이벤트를 해주어 날 울리고 힘든 날에는 어떤 장소 보다 아름 다운 곳에 데려가 야경을 보여주며 많이 힘들지 한 마디를 건네어 날 울렸는데 행복해서 흐르는 눈물, 그와 함께 몰려오는 신기하게 벅차오르면서 미묘하게 복잡한 감정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설명하라고 해도 그게 무슨 감정인지 몰라서 한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가족들은 행복하게 집에 들어오는 날 보며 많이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좋아하면서도 헤어지면 내가 너무 힘들어할 걸 아니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본 적도 없는 아빠는 칭찬이 난무했다. 똑똑하고 책임감도 있는 거 같고 착하다며 내가 많이 성장한 게 보인다고 말했다.
난 그 아이 옆에 떳떳하게 서기 위해 매일 노력했다. 내게 해주는 만큼 보답하고 싶었다. 아끼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큰 마음들이 그에게 닿을 수 있게 표현하고 행동했다. 매일이 행복해서 웃음이 날 수는 없는 건 나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이왕이면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여서 예쁜 추억으로 남아 돌아보면서 다시 꺼내 봤을 때 기억에서 풍겨 오는 기분이나 분위기가 웃음 지으며 좋았구나 말할 수 있는 날들이 될 수 있음 했다.
나 때문에 부정 탄 사랑이 그 덕분에 긍정적인 사랑으로 변환되고 차가웠던 내 마음을 뜨겁게 데워준 그의 마음으로 인해 마침내 우리는 하나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