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유지관

기억나지 않는 너의 고백

by 간히

매일 친구들과 싸워 교무실 앞에서 경위서를 쓰던 유별났던 학창 시절의 나와 달리 위클래스를 다니며 힘든 학교 생활을 했던 너 아쉽게도 지금 내 기억 속 학생 시절 너는 남아있지 않다. 같은 초, 중학교를 졸업해 나는 여상을 가면서 자연스레 멀어졌지만 고등시절 사이클 대표 선수 준비를 하던 넌 가끔 자전거를 끌고 우리 집 앞에 놀러 오기도 했고 심지어 내가 직접 소개해준 여자 아이와 함께 노래방에 가기도 했다. 넌 묻곤 했지 고등학생 때 여러 번 나에게 고백을 했는데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얼핏 보고 그 아이에게 잘생겨졌다고 한 마디 한 기억은 나는데 고백받은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여러 번 나에게 마음을 전했던 모양이고 나는 그때마다 말을 돌리는 바람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지금 기억도 못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시간이 지나 둘은 성인이 되었고 오랜만에 집 옥상에서 동창 한 명과 술판을 벌이기도 하고 아는 친구들과 모여 카페를 가기도 했다. 그러다 그 누구나 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의 연락은 두절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던 어느 날 sns로 그 아이가 팔로우를 걸었고 잘 지내냐는 연락에 답을 하기 시작하면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아는 여동생과 카페에 가기로 한 자리에 오라고 불렀는데 그 아이는 한 껏 멀끔해진 복장으로 멋진 차를 끌고 와서 차분해진 성격과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많이 달라졌다고 한 마디를 했다. 그 이후에도 한 번 약속을 잡았는데 내가 귀찮은 나머지 취소를 했고 며칠 후 집 근 처 양꼬치 집에서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나갔다. 술을 먹고 흥이 오르기 시작할 때쯤 그 아이는 나에게 잔소리를 엄청 해대기 시작했다. 너 학생 때 아주 밝은 에너지를 가진 긍정적인 아이였는데 왜 그렇게 되었냐고 타투가 하나둘씩 생기는데 이런 애 아닌데 안타까웠다고 손 목에 있는 자국 설마 맞냐고 들으면 들을수록 아빠에게 듣는 잔소리 같아서 네가 뭔데 아빠도 아닌 것이 아빠처럼 잔소리를 하냐면서 화를 내며 엉엉 울다 뛰쳐나갔다. 따라 나온 그 아이는 넌 화장도 연하게 하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검은 머리하고 밝게 웃는 게 진짜 너랑 어울린다고 내가 도와줄 테니까 다시 돌아가보자고 다 환경 탓이고 너 잘 못 아니니까 걱정 말고 한 번만 믿어 보라고 내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해보자고 당당하게 나에게 외치는 그의 말에 따듯함을 느끼고 알 수 없는 감정도 요동쳤다.


내 20대 초반 이야기는 너무 암울하고 어둡고 슬퍼서 꺼내서 회상할 자신도 없었고 제대로 마주하며 원인을 해결할 용기도 없었다. 친구에게 어린 나이 사기당한 700만 원과 권유당한 자해가 습관이 된 일, 나에 대한 뒷 말이 오가고 믿었던 친구들이 차갑게 날 버리고 간 과거 속 원망과 탓의 굴레에 빠져 남들 앞에서 억지로 웃으며 거절도 의사 전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채로 한참을 피폐하게 살다가 시간이 지나 내 탓을 하기 시작하며 웃지 않게 되어 집에 박혀 운둔 생활을 하기까지 몇 번이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은 지독히도 빠져나오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그릇도 용기도 안되어서 시도 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말이 혹할 수밖에 나에게 이런 따듯한 말을 해주며 사실 네가 내 초등학생 때부터 첫사랑이었다고 말하는데 내 심장이 요동 치며 혹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양꼬치를 먹고 익숙한 우리 동네를 함께 걷다가 나는 확인할 게 있다며 냅다 입술에 뽀뽀를 해버렸다. 그런데 그 아이는 대답으로 키스를 했다. 남녀 사이 친구 없는 건 알았지만 하루아침 오랜만에 만난 동창 친구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감히 누가 상상을 했으려나 심지어 이 친구는 내 이상형에 전혀 근접하지도 않고 남자로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모든 종합적인 것들이 나의 감정을 고장 냈나 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순간의 실수라고 미안하다고 연락 안 할 테니 정리되면 연락 줘 잘 지내라 말하고 연락을 끊었고 그 아이도 알겠다 말하며 끝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잘 지냈냐고 연락이 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난 너 미친놈이냐고 어제 잘 지내라 했는데 바로 연락하냐며 나무랐다. 좋은데 미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성격이 급했던 나는 솔직히 그 시간이 힘들었지만 9월 초부터 10월 초 한 달 정도 서로를 좀 더 알아간 후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같은 백화점에서 일을 해서 쉬는 날이 다른 날을 제외하고 같이 출퇴근을 했고 쉬는 날에도 차를 태워 내가 가보지 않은 예쁜 곳 숨겨진 곳을 데려가며 네가 놀던 방식에서 벗어나보라고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고 국내에도 네가 안가 본 곳이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며 몰랐던 곳만 골라 나를 데려다 놓고 시내에서 유흥을 즐기고 술 마시며 도파민에 빠져 노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도 좋으니 앞으로도 많이 데려가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정도 빼고 매일을 만났고 어떤 날은 스피커 제작이나 세차를 하며 함께하는 취미도 만들어갔다. 직접 만든 수제 스피커로 노래를 감상하는 게 제일 큰 우리의 낙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특정 많은 노래들을 들으면 그 아이와의 추억이나 언제 들었던 노래인지 상황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말 다재다능하고 할 줄 아는 거도 많고 똑똑하고 친절한 그 아이는 점점 나를 변화시켜 나갔다.

어두웠던 표정 대신 밝은 미소로 그를 바라보고 안광이 없던 눈은 반짝이는 야경으로 비치고 힘없고 어색했던 목소리와 말투로는 당당하고 크게 사랑한다 외치고 있었다.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아이 내 의견을 표시할 줄 모르고 싫은 걸 거절할지 모르는 날 위해 화를 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거절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주변에 도움 안 되는 사람들도 덕분에 정리를 했고 그때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였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잘하려고 바뀌려고 아주 많이 노력하고 성장했다. 한 번에 바뀔 수 없는 게 당연하다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나씩 고칠 수 있게 기다려줌과 동시에 격려해 주고 믿어 준 그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런데 동시에 힘들어하며 매일 같이 울고 부정적인 나인데 진짜 모든 실체를 알게 되면 날 버리고 떠나지 않을까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지며 불안 해졌다. 어쩌면 나 때문에 이 밝고 멋진 아이도 점점 바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감정이 피어나진 않을까 무서웠다. 그 무서움은 내 발로 그에게서 떠나가게 만들었다. 매일 이유도 모르고 우는 나에게 이유가 없는 건 없다고 원인부터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해결해주려 노력하고 눈물이 그치지 않을 때면 날 안아 들고 장난치며 성질을 내도 끝까지 웃음 지을 때 가지 노력해 주던 그 인데 당연히 떠난 후 죽는 거보다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연락하고 싶진 않았다. 떠나간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며칠이 지났을까 그가 먼저 sns 스토리에 나만 볼 수 있게 글을 올렸고 그걸 계기로 우리는 다시 만나 대화를 했는데 그 아이는 당당하다 못해 멋진 눈빛으로 다시 만나면 미래를 보면서 만나고 싶다며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자신의 그릇은 그렇게 작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었다. 이런데 내가 이 아이를 그만 사랑할 수가 있었을까. 매일 같이 회사에서 보고 퇴근하고 봐도 지겨움 같은 건 없었다. 매번 새로운 걸 시도하고 다양한 대화를 했다. 나는 진심으로 사랑해서 하는 연애가 처음이었다. 그 감정이 신기했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해 준 그에게 고마웠다. 나도 그에게 뭐라도 베풀어 주고 싶었다. 표현력 없던 내가 보고 싶다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하기까지 이게 사랑이구나 느끼기까지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이 아이가 없었다면 난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우리의 추억과 기억나지 않는 너의 학창 시절 고백들이 쌓이고 너의 첫사랑인 내가 너라는 귀인을 만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기까지 드라마 보다도 영화 같은 일이 내게 벌어졌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저 멀리서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거만 같았다.


신은 다 계획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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