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유지관

사랑의 죄인

by 간히

싸우다 말고 피식 터진 웃음에 민망해하다 자연스레 넘어가버리는 우리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너랑 이렇게 지쳐 쓰러질 때까지 언성 높여가며 싸우지도 않겠지 자꾸만 화가 나는 건 몰라주는 게 서럽고 이런저런 것들이 속상해서인데 입 밖으로 나가면 삐뚤어진 단어가 너의 맘에 박혀 버린다.


서로가 참고 노력하고 있는 걸 아는데도 싸움이 시작되면 내가 너 보다 더 / 네가 나보다 더 노력하는데 그에 비에 넌/난 덜 참는 거 같아서 내가 지금까지 한 게 물거품이 되어 헛수고로 남고 내 노력이 네가 참은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 말하며 굽혀지지 않는 의견에 납득 가지 않는 말들로 가득 차 마침내 누구 하나 지쳐 쓰러지기 직전 안 되겠다 포기하고 미안하다 말하며 끝내 침대에 누우면 둘 다 뒤척이며 밤새 잠 못 들고 씩씩거리며 짜증을 되뇌고 억울해하다 아침이 밝으면 안 그러기로 한 행동을 다시 반복하며 어제 일을 꺼내 또 싸운다.


어디선가 아침 기분이 하루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을 들은 후로 아침 시간과 남편이 출근 시간은 조심하려 애쓴다. 사실 나에겐 그게 조금 어렵다. 출근하고 혼자 남은 집안에서 생각이 많은 상태로 있다 보면 이것저것 생각나기 마련이고 하루 내도록 그걸 참고 기다리긴 내가 아직 감정이 미숙하고 어린것인지 어렵다. 게다가 퇴근하고 말을 하면 개싸움이 나니까 피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한 번싸우면 애는 살아있을까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살이 쫙 빠지고 뇌가 쪼그라 들어서 멍해지며 온몸에 열이 나고 탈수 증상이 오는 것처럼 에너지가 소모되는 거 같았다. 이런 싸움들을 반복하다 보면 지친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될 만큼 정말 눈에 힘이 풀려 빛을 잃고 멍해져서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일 베스트 1위 선정으로 삼을 만큼 상처와 상실감, 외로움 온갖 부정적 감정이 몰려왔다.


안 싸우려고 대화를 하지 않기 시작하고 결국 대화가 단절되어버린 부부들이 이렇게 생겨나는구나 깨달았다. 이혼 사유 1위가 의사소통 불가라던데 그래도 우린 인터넷 썰이나 예능에 나오는 부부처럼까진 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서로가 화가 나서 말없이 기계처럼 할 일만 하면서 사람대접도 안 하고 지내도 봤지만 결론적으로 그럴 거면 같이 살 필요가 있나 기계랑 살지 결혼은 왜 하고 너랑 같은 공간에 왜 있나 싶었다.


신혼부터 여러 번이나 그럴 거면 혼자 살아, 따로 살자 고래고래 소리치고 꺼지라고 화에 받쳐 시발 거리며 크게 싸우고 누구는 성질 없는 병신이라 욕 안 하고 참고 부술 지 몰라서 가만있냐며 난리 치고 개 무시도 해봤고 내가 죽을게, 나 때문이네 자책도 하면서 집에서 나가고 각방도 써 가며 온갖 더럽고 치사하고 찌질한 절대로 서로에게 하면 안 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상처 입히고 싸워댔다. 서로가 무슨 말에 제일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하는지 너무 잘 알아서 한 바탕하고 나면 둘 다 속으로든 겉으로든 엉엉 울었다.


사랑하는데 왜 우린 자꾸만 이렇게 싸울까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는 아내가 맞고 살면서도 이혼을 못하고 같이 사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습관이 되어서일까 생각했다. 여러 이혼 예능도 많이 봤다. 똑같은 사람끼리 살아서 그럴까 했다.


그런데 그걸 떠나서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정도 정이지만 가정에 대한 이상한 책임감 같은 게 생기기 시작하고 여러 오묘한 감정들을 더 많이 배우게 된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거도 더 많아지다 보니까 짠하다거나 생각보다 더 마음이 깊고 생각이 많았구나 같은 걸 깨닫게 되면서 멋지다던가 책임감 있다던가 이 사람은 뭘 하든 간에 다 잘할 거야라는 믿음이 자연스레 생기면서 그냥 실을 가위로 잘라내듯이 쉽게 끊어내기가 힘든 거 같다. 마치 내 운명의 실 한 자락을 잘라내는 거처럼 신중하고 어려운 일이다.


우리 둘 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그만두고 다 때려치우고 자유를 찾고 싶었고 죽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지쳐서 사람의 몰골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다시 손 잡고 마음을 다잡고 함께 잘 살고자 일어서고 다시 또 눈을 맞추고 발을 맞춰 걷는 건 그럼에도 사랑하고 사실은 이런 의도로 말을 한 게 아닌데 그렇게 말해서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을 서로인 걸 알기에 내가 준 상처를 내가 직접 씻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였다.


난 남편을 신뢰하고 믿었고 지금도 뭘 해도 끝까지 잘 해내는 다재다능하고 능력 있는 멋진 사람이라는 걸 안다. 남편이 읽는다면 부담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처음 상견례 자리에서도 난 시부모님께 남편만 있으면 된다고 했을 정도였다.


정말 쪽방 월세여도 단 둘이서 잠만 자고 생활만 할 수 있으면 만족했고 행복이 필수는 아니지만 둘이 한 집에서 조금씩 소소하게 제일 힘들다는 평범한 가정 열심히 꾸려서 서로 힘과 믿음이 돼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며 셋이 되었을 때에 아기를 겨우 재우고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영화 한 편 틀어 놓고 웃으며 몰래 조용히 수다 떠는 그런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남편은 더 좋은 집에서 날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했지만 여하튼 우리 둘이 원하는 미래가 비슷하고 행복하게 잘 살자는 목표가 같은데도 이렇게 싸우기만 하면서 심한 말을 내뱉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고 자책하게 만들다니 왜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의 죄인으로 만들고 내가 죄인이라며 고통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