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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비 Apr 09. 2016

부모 곁에 살아야겠다

지금이라도 실컷 보아두어야겠다

부모 곁에 살아야겠다.

갑작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독 창틈으로 새는 바람이 차던 어느 밤,
할로겐 램프처럼 점차 열이 오르던 이마를 짚고
이불 두 개를 겹쳐 덮고서는 끙끙 앓으며, 문득 그랬다.

아쉬울 때만 부모를 찾는 간사한 자식의 본능으로
타지에서 앓는 서러움속에 부모가 생각난 것이다.

부모를 생각할 때란 항상 그렇다.
내가 아쉬울 때, 내가 그리울 때.
오로지 [내가] 찾고플 때만.

그네들이 나를 보고파함은 안중에 없다.
생각해보면 항상 나를 그릴 당신네들.
생각해보면 항상 내가 보고플 당신네들.

생각해보면 생각할 시간보다 빠르게
본능으로 나를 그릴 당신네들.

그런데 왜 나는 당신들을 생각으로만 그리워할까.

한동안 부모님께 연락을 안드렸구나.
오랜동안 집을 찾지 않았구나.
꼭 생각을 거치고서야 나는 그들이 그립다.

책임으로서의 그리움.
따라서 의무로서의 그리움.
겨우 그정도밖에 안 되는 '도리'로서의 그리움.

나는 참 못된 자식이다.

그네들의 그리움은 간절한데
나의 그리움은 사고(思考)라니, 맙소사.

부모를 벗어나고파 몸부림쳤다.
품을 박차고파 발버둥 쳤다.

나의 몸부림 하나가 발버둥 한번이
그네들의 가슴에 붉은 생채기를 내고 있음을 추호도 모른채.
충실히 새끼답게.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스레 그네들과 멀어질텐데,
애써 지금부터 멀어지지 않았어도 될 것을.

나는 무엇이 그리 조급했던 걸까?

'독립' 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존감따위에
철저히 나의 힘으로 살고 있다 착각하며
그네들의 공을 무심히 뒤로 던졌다.

쇠약해진 당신들이
더 이상 휘두를 수 없는 나임을 증명하고자,
스스로 사고(思考)함을 알리고자,

어른이라 소리치며 내가 해온 행동들은
결국 부모 가슴 한복판 무참한 사고(事故)현장을 만들었을 뿐.

되려 나는 어려지고만 있다.
부러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을.

거꾸로 자라고만 있던 내게
문득 무슨바람이 들었는지 부모와 함께하고 싶다.

부비고 맞대고 살갑게 살고싶다.
이왕 어려질거라면 아주 어려져버리자.

그래서 어머니 젖가슴을 조물딱 거리던 유아기때처럼
아버지 무릎을 베고 귓속을 내맡기던 아동기때처럼
그대들과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으리.

머잖아 우리는 어짜피 떨어져야 할 운명인 것을,
미리부터 연습할 필요 무엇 있을까?

어느 세월에 당신들 자식이
이만큼 대가리가 커버려서

당신들 외로이 만들고 고립시켜버리고
그것이 어른이다, 다 자란 자식이다,
그런 말을 지껄이는 내내 나 또한 진실로 외로웠음을.

물론, 당신들이 느꼈을 외로움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서러움이었겠지만.

나 역시 베필을 만나 결혼을 하고
꼭 나같은 새끼를 낳아 속을 썩고

그렇게 살아가노라면 원치 않아도 당신들과 멀어질텐데.

내 새끼 내 마누라 챙기느라
꼬부라져 말라가는 당신들 점차 보지 못할텐데.

지금이라도 실컷 보아두어야 겠다.

참 미안했다.
그리도 앞으로도 미안할 일만 가득 할 테지만,
떨어져서 미안해하느니 꼭 붙어서 속썩이고,
싸우고, 소리치고, 쾅쾅, 당신들 가슴에 못을 박으련다.

대신, 당신들 옆에서.
되는데까진 찰싹 안겨서.

어짜피 못날 수 밖에 없는 새끼라면 마주보기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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