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14탄을 감싼 비닐 위 쌓여가는 더께 만큼 나의 세월도 쌓여갔다
중학교 때 나이키 에어 조던이 너무 가지고 싶었다. 울 집 형편에 그건 너무 비쌌고, 대안으로 내겐 프로월드컵의 두툼한 농구화가 쥐어졌다. 프로스펙스도 아니고 프로월드컵. 꼭 축구화 만들법한 이름의 브랜드에서 나오는 농구화. 아디다스나 리복 정도만 되었어도 어느 정도 수긍했을 텐데, 프로월드컵이라니! 그건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은 대안이었다.
형편이 좀 나아진 고등학교 시절, 열아홉의 여름. 아부지는 내게 조던 14탄을 선물해주셨다. 매년 맞는 생일이었지만 예년 같지 않은 특별함에 나는 기뻐 환호성 질렀다. 엄마는 선수도 아닌데 뭣하러 그 비싼 걸 사주냐고 아부지를 타박했다. 그럼 당신은 연예인도 아닌데 왜 김희선 화장품 쓰냐는 아부지 반박은 제법 논리적이었다. 다만, 엄마의 등짝 스매싱에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 이기는 게 지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때 배웠던 것 같다.
그건 어쩌면 신발이라기보다 로댕의 조각처럼 느껴졌다. 왜 로댕인가 하면, 그때 로댕 말고는 이름 외우는 다른 조각가가 없었으니까. 그냥 조각이라는 게 중요했다. 신으라고 만든 게 아니었다. 조던 14탄의 예술적 자태를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었다. 감동하고 감탄해야 마땅했다. 나는 조던 14탄을 투명 비닐로 감싸 책장에 올려놓았다. 외출할 때에는 여전히 프로월드컵을 신고서. 아부지는 신지도 않을 신발을 왜 사달라고 했느냐며 한 마디 하셨지만, 내게 조던은 감히 신고 올라탈 대상이 아니었다. 모시기 위해 그 신발이 가지고 싶었으니까. 읽지도 않을 책을 왜 사서 책장에 꼽기만 하느냐고 내가 반박하자 아부지는 묘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 웃음에는 무어랄까 일종의 뿌듯함 같은 게 서려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고 조던 14탄님을 들여다보았다. 하얀 몸체의 매끄럽고 날렵한 선과 루비처럼 빛나던 붉은 포인트. 페라리 스포츠카를 본 따 만들었다는 조던 14탄은 가히 고급스러웠다. 각종 버튼으로 치장된 프로월드컵의 내공으로는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법한 품격이 느껴졌다. 진짜 멋은 심플에서 온다는 걸 그때 배웠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 하루,
조던 14탄을 감싼 비닐 위 쌓여가는 더께 만큼 나의 세월도 쌓여갔다. 대학생에서 사회초년생을 지나 사회찌듬생이 될 때까지, 조던 14탄은 비닐 안에 고이 모셔졌다. 일을 하고 돈을 받고, 받은 돈을 모으고, 모은 돈을 쓰고, 쓴 돈을 다시 메우기 위해 일을 더 하는, 그런 나날들이 흐르며 내게 조던 14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다. 맘만 먹으면 그것보다 더 좋고 비싼 것을 살만한 경제력을 갖추었고, 더 이상 농구화가 어울리는 자리에는 거의 갈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던은 은퇴했고, 그를 동경하던 어린이들은 이제 로퍼를 신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딱딱한 종류의 신발을 신게 되는 거라는 사실을 한창 배우는 중이다.
신줏단지 같던 조던 14탄을 신어보게 된 계기는 허무했다. 몇 년 전, 오랜만에 만난 고교 동창들과 술을 마시고, 딱 사리분별 가능할 만큼만 취한 채로 걷다가 공원 농구장을 발견했다. 학창 시절 종종 어울려 농구하던 추억에 젖어 공을 수소문했고, 나는 우리 집 창고에 오래된 스팔딩 농구공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네 명이었던 우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내가 사는 동네로 향했다. 뒷자리에 장정 셋이 부둥켜안고 가야 했기에 가위바위보로 앞에 앉을 사람을 정했다. 나는 승부에 강한 타입이 아니었다.
그 택시 뒷좌석에서, 그마저도 2차 가위바위보에서 진 관계로 중간 좌석에 앉아, 술과 땀으로 절은 몸들에 짓눌리며, 나는 봉인해 둔 조던 14탄을 떠올렸다. 평일 퇴근 후 만남이었던지라 다들 구둣발이었다. 농구라도 이기고 싶었다. 조던 14탄을 신으면 구두 신은 아재들 따위 가볍게 제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 근처 공원 농구장에 친구들을 대기시키고 나는 집으로 들어가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선반 꼭대기에 놓인 박스를 내려 열었다. 여전히 비닐에 쌓인 조던 14탄이 거기 온전했다.
하지만 열아홉 여름에 느꼈던 영롱함은 거기 더 이상 없었다. 그건 그냥 오래된 농구화 한 켤레였을 뿐. 나는 무심하게 비닐을 뜯었다. 약간 빠듯하긴 했지만 사이즈는 그럭저럭 맞았다. 두어 번 팡팡 뛰어보았는데 기대보다 편하지가 않았다. 조던 14탄을 신고 점프하면 천정에 닿는 게 아닌가 걱정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막상 몸뚱이는 똑같이 무거웠다. 그냥 좀 서글퍼져서 서너 번 더 뛰었다. 그러다 창고에 쌓아둔 소쿠리를 와장창 엎었고, 야밤에 술 처먹고 지랄한다는 엄마 고함에 도둑처럼 농구공을 잽싸게 집어 현관을 빠져 나왔다. 공은 바람이 꽤 빠져 있어 잘 튈 것 같지 않았지만 별 다른 수 없었다.
돌아온 나를 보고 친구들이 가장 먼저 건넨 말은, ‘이 치사한 새끼’ 였고 그 다음에 건넨 말은 ‘이게 공이냐 니 뱃살이냐’ 였다. 공은 튕긴다기보다 펑퍼짐하게 내려앉았다. 그 공도 아부지를 참 오래 졸라서 받아낸 보석이었는데, 금빛 스팔딩 로고가 참 눈부시게 빛났었는데. 어느새 아무짝에 쓸모 없는 고무 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뭐라도 해야 덜 억울하겠단 욕심으로 종목을 미식축구로 바꾸었다. 너무 즉흥적이었다. 업무만 아니라면 아무거라도 좋다는 듯 쓸데없이 다들 의욕이 넘쳤다. 양쪽 농구 골대 기둥까지 가면 터치다운. 그게 규칙의 전부였다.
시합은 거의 아수라장이었다. 맞닥뜨리기만 하면 이종격투기 선수들처럼 서로 그라운드 기술을 걸고자 혈안이었다. 이미 공 따위 집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의 로열럼블 수준이었달까? 어느새 편을 나눈 것조차 무의미했다. 나의 조던 14탄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도리어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자꾸 발바닥이 신경 쓰여 더 방해만 됐다. 원래대로라면 삼단 점프 정도 가볍게 뛰어 터치다운을 기백번도 더 했어야 할 농구화였는데 웬걸, 발목에 맨 족쇄처럼 거추장스러웠다. 이건 무려 조던 14탄이란 말이다!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었다. 친구 두 명에게 양쪽으로 암바를 당하는 동안에도 나는 조던 14탄과 스팔딩 농구공을 생각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꺼내 신지 말아야했다. 거기, 더께 쌓인 추억 그대로 선반에 두어야 했다. 변한 것들이 변했다는 사실은 별로 아무렇지 않았으나, 변한 모습을 확인해버린 그 순간이 서글펐다. 상자를 나온 순간 일상이 되어버린 보물. 무엇이든 언젠가는 변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는 것과 확인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환상을 벗어나 현실을 사는 게 어른이라면, 어른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닌 의도치 않게 되어지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날이었다. 그런 건 조금도 배우고 싶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