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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비 Nov 06. 2017

맥거핀 라이프

패닝이나 틸트경로에서 포커스 아웃되는. 실상 아무것도 아닌 맥거핀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무얼 하든 남다르고 어디서든 돋보이는. 과감한 선택으로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는. 역경의 끝에서 마침내 특별한 가치를 창출하는.


그들은 귀감이 된다. 영웅담은 빠르게 퍼진다. 요즘엔 좋아요를 타고 더 빨리, 보다 멀리.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하면 말이 다 돈이 된다. 책이 나오고 방송을 타고 강연을 다닌다거나. 누가 봐도 비범한 그들은 참나, 겸손까지 갖추었으니!


저도 평범한보통 사람이에요. 그저 꿈을 믿고 포기하기 않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긍정적인 마음과 열정으로 달려 나가세요! 지금 당장, 행동하세요!


강단 있는 목소리와 무럭무럭 진취가 깃든 눈동자. 청중은 그들의 몸짓하나, 말씨 한 톨에 온통 감동한다. 그렇게 성공담은 대중의 신화가된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준비된 주인공들이 새로운 드라마를 써 나가고 있을게다.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고, 의외로 많은것 같다.


근데 그게 나는 아니다.


그럼 나는 조연인가? 그 역시 무리다. 주연 곁에서 열연하는 조연 덕에 극이 빛나는 거라는데, 살며 누군가에게 별 도움된 적 없다. 악역도 못 된다. 권력도 없고 독기도 없어서. 기본적으로 나는 카메라 워킹동선에 있는 사물 같은거다. 슬쩍 중요한 척 비췄다가도 패닝이나 틸트경로에서 포커스 아웃되는. 실상 아무것도 아닌 맥거핀. 주연들은 나 없이도 잘만 성장한다.


내가 주연인 줄 알고 열연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진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었지. 노력이 모든 것을 담보할 것처럼, 스텝들의 격려에 감격해 온 힘 쏟아 공부하고 일하고, 잠도 적게 자고 먹는시간도 아끼면서, 그렇게 겨우 얻어낸 자격증 혹은 취업 합격 통지 전화. 작은 무언가를 성취한 그 순간엔 기뻤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오랜학창 시절과 대학시절을 통으로 갖다 바친 결과가 이력서몇 줄 스펙, 잘 되면 연봉 2~3000만원대 정규직이라는 건 좀 야박하지 않나 싶다. 애써 온 나날들을 폄하하고픈 맘은 없지만 별 대단한 걸 얻지도 못했다. 솔직히 아무것도 아닌 것들. 얻은 어려움에비해 쉽게 사라질지 모를.


나는 대단한일을 해낼 만한 위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텔레비전이나 신문 기사에 나온, 잡지에 인터뷰실린 그런 주인공들 예로 들며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말아주라. 나는 못한다. 주인공의 시나리오를 들이대 봤자 내가 소화가능한 스펙트럼이 아니다. 특별히 기억되지도 못할 일들을 하고 아무 의미도 안될 나날들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생각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이 별로 아깝지않다. 그냥 좀 새로운 무얼해 보고 싶단 말만 하면 꼭 그러더라.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심지어 목숨 걸고 하라고. 진취가 진지하게 우글우글한 그런 조언 들을때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기분이다. 아, 대충하고 싶은데…


가벼움이 결여된 세상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것들 중 해본 게 거진 없다. 밴드도 좀 해보고 싶었고 만화도 살짝 그려보고 싶었고 배우 오디션도 보고 싶었다. 잘 되고 잘 할거염두에 없이 그냥 재밌어보이길래. 맥거핀으로 족하다. 주인공은 다른 멋진 사람들이 하면 되는거고. 그러다 그 중 무언가에 폭 빠져서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거나 진행하던 학업을 포기할수도 있는거다. 그것조차 별 대수롭잖게. 그냥 하다 말 수도있는 거고. 그래도 세상 무너지는 큰 일 안 난다. 지금 나이가 몇 살이며, 철이 들고 안 들고를 따질 일이 아니다. 어차피 똥꼬 빠지도록 힘들게 살아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을.


노력의 성과는 결국 주인공에게 가더라. 기를 쓰고 무얼 이루어도 그건 별 것 아니라는 더 대단한 분들께서 친히기 죽여주더라. 행동이 정직한 사람보다 정직을 말로 하는사람들이 더 대접받더라. 작은 것을 이루면 그건 이룬 게 아니란다. 더 높이, 더 멀리 보고 쉼 없이 뛰란다. 소소한 성과는 쳐주질 않고, 그나마 그럴듯해 보이는 건 어느새 우리의 성과가된다. 우리의 성과는 사장님 덕이고. 어차피 모든 아무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앵글이 잠시 나를 비출지 몰라도 그건 주인공에게 가는 카메라 워킹 동선일 따름. 맥거핀은 포커스 아웃 된다. 멍텅 뭉텅흐려진다. 여기 있었고, 여전히 있고, 앞으로도 분명 있을테지만 맥거핀이다. 아무것도 아닌 삶이다. 아무것도 안 될 꿈이다.


그러나 맥거핀의 존재가치는 그 아무것도 아님에 있다. 꼭 대단한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생은 이유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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