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비 Nov 06. 2017

조언하지 않는다. 설명한다.

우리, 조언 대신 설명이라고 하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겠습니다

[불안을 수요로 조언을 공급한다]


자본사회에서 평등은 실상 이념에 그치고 만다. 만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곤 하지만 법 앞에 설 일이 없다면 불평등하다고 꼬인 시선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막상 법 앞에서마저 자본과 권력이 누리는 특혜를 수 없이 보아왔기도 했으니. 사회학에서 말하는 평등의 세 가지 조건 – ¹기회의 평등과 조건의 평등, 결과나 산출에서의 평등 – 은 실생활에서 무참히 무시되곤 한다. 같은 시험을 앞두고 누구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부족한 잠에 시달리는 반면, 누구는 개인 과외를 받고 보약을 달여 마시며 꿀잠을 통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 이 두 경우 사이에도 정도가 다른 수많은 경우들이 나뉘어 있다. 개인의 성취를 보조할 수 있는 좋은 수단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투자 가능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게 된다. 이젠 라면만 먹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악과 깡의 시대가 아니다. 소위 개천에서 용 났다는 사례들이 왜 미디어에 소개되고 화제가 되겠는가? 극히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다수에게 천재가 되기를 당연하게 강요할 순 없다. 다들 노력하고 근성으로 버텨낸다. ²절박함이 보편화된 100만 실업자 돌파 시대에 순수 개인 역량만으론 반전을 노리기 어렵다.


그나마 똑같다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은 합의된 시간 개념 속에서 하나의 몸뚱이로 살아간다는 정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버릇처럼 튀 나오는 바쁜 세상에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꿈과 목표를 위해 온종일 시간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바른 길보다 빠른 길을, 개성보다 개괄적인 방법을 찾게 되는 건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빠듯한 조건 탓이 크다. 우왕좌왕 준비생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멘토가 필요한 시대지만, 간혹 멘토링마저 상업성을 띄는 경우가 보여 안타깝다. 카드 뉴스나 영상 클립 등으로 멋지게 추려진 각 분야 선배들의 조언이 성공을 위한 절대 규칙처럼 통용된다. 당장 그들처럼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다 잘 못될 것처럼, 기막힌 화술로 불안을 자극한다. 불안을 수요로 조언을 공급하는 사업형 멘토링은 대상의 의지를 순간 불태울 순 있더라도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주진 못한다.


내가 들었던 최악의 조언은 ‘정말 죽을 만큼 다 걸어 보았냐’며 멘티 스스로를 탓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몇 개 대학 투어를 돌며 이루어진 취업 컨설팅 프로그램의 스케치 영상을 제작하던 중 마케팅 분야 멘토가 했던 말이었다. 단지 직업을 가지기 위해 죽을 정도까지 애써야 한단 말인가? 일대일 멘토링이었기에 조언을 듣는 학생은 마치 꾸지람 듣는 어린아이처럼 풀이 잔뜩 죽어 움츠려 들었다. 그 날, 그 학생이 얻어간 건 자책 이외 무엇이 있을까? 이 하나의 사례로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미디어와 SNS만 보아도 여전히 열정과 노력을 강조하는 조언들이 차고 넘친다. 물론, 둘 다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방향이 먼저고 영리한 전략 수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조언과 설명의 차이]


2016년 12월 스페인 국적 축구선수 ³‘다비드 비야’가 내한했다. 한국에 DV7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를 세우기 위해서다. 비야는 어린 선수 육성에 관심이 많아 전 세계 곳곳에 유소년 아카데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로 인기가 많은 비야를 한국 팬들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홍대에서 진행된 팬 미팅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언론에서도 여러 기사가 쏟아졌다. 그중 비야와의 단독 인터뷰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는데, 답변 하나에 생각지도 못한 큰 감동을 받았다.


질문은 이랬다. 한국 유망주들에게 성공한 축구선수로서 조언을 해 주신다면? 특별할 것 없는 질문이었고, 비야는 좋은 말 몇 마디 정석대로 뱉어주면 그만이었을 거다. 그런데 비야가 어떻게 답했는가 하면,


“저는 조언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조언 대신 설명이라고 하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겠습니다.”


과장 조금 섞어서 나는 이 말을 보는 순간 하마터면 울 뻔했다. 이 시대 멘토들에게 원했던 건 바로 이 설명이었는데, 그들은 조언을 앞세우곤 했다. 싫은 소리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조언하며 꾸짖었다. 설명은 짧거나 생략되어왔다. 멘티라는 이유로 멘토보다 덜 노력하고 못하는 사람 취급받으며 아랫사람 위치에 있어야 했다. 당신은 나를 잘 모르고, 나 역시 당신에 대해 아는 건 약력뿐인데, 무얼 그리 속속 다 아는 사이처럼 혼이 나야했던가?


이제 멘토들은 조언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과감히 말하겠다. 대신, 우리 설명해주자고. 단어는 뜻을 담고 있으니, 조언을 설명으로만 바꾸어도 인식과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하나, 설명은 구체적이다.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한다는 사전적 정의처럼, 설명은 풀어 전달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방법만 있을 뿐 강요는 없다. 설명대로 해 나가면서 시행착오를 겪어 볼 여지를 준다. 반면, 조언은 자주 충고를 동반한다. 결정에 관여한다. 그래서 두루뭉술할 때가 많다.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반문했을 때 마땅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다. 설명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어떤 분야에 진출하고 싶다면 무얼 공부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각자에게 맞는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된다, 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게 중요한 데 그걸 위해선 무엇부터 어떻게 하고 이건 이렇게 준비하면서 어디에 집중하면 좋단다, 까지 알려 주는 거다. 상세히 설명하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면 개별적인 적용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전자 제품을 구매했을 때 처음에는 설명서를 보며 사용방법을 익히지만 나중에는 자신만의 응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처럼. 설명은 이해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


둘, 설명은 동등하고, 때문에 현실적이다.


조언은 윗사람이나 선행자가 판단을 대신해 주는 경향을 띤다. 때문에 서로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설명에는 위아래가 없다. 그저 내용에 대해서만 알려주지 태도를 지적하지 않는다. 설명을 받아들여 활용하느냐 못하느냐는 개인의 몫이다. 다만, 잘 못 따라온다 싶으면 다시 설명해줄 수 있다. 몇 번이고 괜찮다. 설명은 단계를 나누어 난이도 별로 제공 가능하다. 어설픈 위로보다 낫다. 공감의 말과 애정 어린 시선은 맘을 따스하게 해 주지만, 그 분위기를 벗어나면 다시 냉정한 세계 앞에 발가벗고 서야 한다. 정말 필요한 건 눈높이에 맞춘 설명이다. 지금 너의 그 상황은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저러하게 헤쳐 나가면 좋을 것이다. 그걸 이겨내면 다음 상황에는 이러저러한 방법을 사용해 보면 좋을 거다. 조언이 광고 카피라면 제대로 된 설명은 정성 들인 사용 후기와 비슷하달까.


셋, 설명이야 말로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최선을 다 해 열심히 해야지!라는 결심에는 지속성이 없다. 최선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과 정신에 기운이 돌아도 기준이 없으면 금방 시들해진다. 설명은 그 기준과 단계별 실행법을 알려준다. 개인마다 감당 가능한 범위로 계획을 잡도록 한다. 하나씩 작은 성취를 이루며 무언가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점점 감당 가능한 범위가 넓어지고 하루가 빈틈없이 들어찬다. 실행과 피드백을 통한 이런 행보야말로 행복한 동기부여다. 그동안 못했으니까 이제 잘 해야지, 라는 다짐에는 자책이 따른다. 오늘도 잘 했고 내일은 더 잘 할 거다, 라는 뿌듯함이 있어야 지치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할 수 있다. 설령 못했던 일에 대해서도 설명은 사람 탓을 하지 않는다. 이유를 분석하고 보완할 방법을 강구할 따름이다.


다양성의 획득을 위해


각 분야에 먼저 진출해 있는 사람들을 선배라 부르고, 그 사실 자체는 특권이 될 수 없다. 다른 분야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선배였던 위치는 언제라도 준비생이 될 수 있다. 누구라도 선배와 준비생 사이를 오가며 산다. 먼저 해봤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에 잣대를 댈 순 없다. 설명에는 위계가 없으니 모두가 자신만의 경험을 설명으로 공유하면 좋겠다. 가이드로 작용하는 설명에는 그대로 따라야 할 것 같은 위압감도 없어 각자만의 개성으로 길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시행착오 줄이기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배울 기회를 좁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대신 실패를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설명서가 많아진다면 성공을 위한 길도 여러 갈래가 될 것이다. 준비생, 아니 이제 모든 준비생을 유망주라고 부르자, 성장한 유망주들이 각자만의 설명서를 써 준다면 지금보다 창의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 나아가 성공 이외의 평가 기준들도 생겨나길 바란다.


어디에나 늘 유망주가 있다. 이건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흔살에도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한다면 능히 유망주다. 나 역시 선배이자 유망주로 동시에 존재한다.


———————————————————————————————————————————–

1) 사회학사전, 고영복, 2000. 10. 30., 사회문화연구소

2) 통계청의 ‘2016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자는 101만2,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6,000명 증가했다

3) 다비드 비야 : 스페인 국적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발렌시아CF와 FC바르셀로나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유로 2008 득점왕과 남아공월드컵 실버슈 등을 수상했으며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경험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국제경기에서 50골 이상을 득점한 선수이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역대 최다 득점자로 스페인의 월드컵 역사상 최다 득점자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돈 키호테를 좋아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