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비 Nov 09. 2017

노력도 배신한다

너도 내게 그걸 물었지. 그리고 너도, 너랑 너도

.     
다른 삶 사는 여럿이 한 질문을 번갈아가며 묻는다. 그 질문은 나도 해봤고, 아마 당신도 해 봤다. 또, 답해봤다. 꼭 돌림 노래 같은 질문이다. 차례 정해 주고받듯 서로 묻고 답하고를 번갈아 한다. 묻는 상대가 변해도 답은 아마 그대로일 공산이 높다.


 –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잘 되겠지?
– 맞아. 열심히 하면 잘 될 거야. 힘 내.  


순간 맘을 위로받고 싶은 거라면 문제없는 대화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열심히’는 답 없는 세상살이의 보편적 해법이 된다. 술 한잔에 공감을 담아 건배로 토닥이는 좋은 자리에서라면 애초에 답이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었을지도.     

하지만 진정 변하고 싶다면, 겨우 버텨낸 오늘의 반복을 넘어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고 싶다면 열심히는 생각만큼 도움되지 못한다. 같은 사람이 두 번 이상 저 질문을 내게 하면, 대답 전에 내가 새치기 물음 먼저 던진다.


– 그동안은 열심히 안 했어?



 
[노력도 배신한다.]

     
‘노력’만큼 이미지 세탁을 잘 한 단어도 없을 거다. 노력이란 말은 실상 얼마나 두루뭉술한가? 알고 보면 노력은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다. 반기 들 여지를 안 준다. 노력에 대항하면 의지 없는 사람이 되고, 노력에 충실하면 ‘조금만 더’를 외쳐댄다. 살면서 노력에게 배신당한 적 한 두 번 아닐 텐데 아직 거기 책잡혀 살 이유 없잖은가. 아마, 이 말 때문이려나?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내기 위해 대입해야 하는 공식이 몇 개 있는데, 노력은 그 풀이 과정 중 하나일 따름이다. 답이 아니다. 열심히 하는 건 필요하지만 열심히만 해서는 제자리걸음인 이유다. 사실 [노력=결실] 이란 공식은 현상유지에 더 적합하다. 노력이라도 안 하면 가진 것마저 잃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제, 누군가 우리에게 ‘열심히 하다 보면 잘 되겠지?’를 기어이 또 묻는다면, 단호하게 답해주자. 모두가 ‘네’라고 할 때 무어라 말하랬다고?


아니!




[그럼 대체, 무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럼 대체로 무얼 어떻게 하면 된다. ‘무얼’과 ‘어떻게’를 더해서 노력에 곱해 풀어야 해답에 가까워진다. 노력이 막힐 때면 자꾸 멈추어서 변수를 체크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수시로 변하고 그때마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기민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력에 의해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노력의 방법을 달리할 때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세상 처음 듣는 해법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어쩌면 뻔한 소리다. 하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에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지 않고, 멈추는 것이 두려워 대안조차 되기 힘든 노력에 매달리는 사람들 많이 봤다. 그럴수록 열심히를 멈추고 여실히 주변을 분석해야 한다. 인생 목표 자체는 전략의 큰 틀을 유지한 채 멀리 보고 나아가야 하겠지만, 일과 주, 월과 년으로 쌓여가는 일상에서는 전술을 수시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유연하지 못하다면 부러지기 십상이다.

거의 대부분 인간이 약간의 강박증을 지니고 있다. 정해둔 무언가를 수정해야 할 때 심지어 패배감까지 맛보기도 한다. 익숙해진 방법을 바꾸어야 하는 일은 꽤 짜증스럽다. 한국은 뭐 어쩌고 하는 사대주의적 표현을 싫어하지만, 한국은 특히 변경에 보수적인 나라다. 한 번 정해둔 것을 바꾸는 걸 싫어하고, 뚝심으로 밀고 나가 어떻게든 되게 만들고자 필요 이상의 비용과 인력을 투입한다. (한국만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런 성향이 두드러지는 민족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변경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수정은 실패의 상징이 아니다. 보완에 익숙해져야 한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집착과 강박으로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킨다는 신념 같은 걸 내세우는 건 자기 손해밖에 안 된다. 찝찝해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든 의지와 열정으로 본 계획을 달성해내도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다면 성공적이라 하기 어렵다.


특히, 노력은 화수분처럼 한없이 나오는 재화 취급받는다.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효율을 따져야 한다. 10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을 100의 노력을 쏟아 이루어 냈다면 엄청난 낭비다. 개인 역량에 따라 투입되는 노력의 총량은 차이가 있겠지만 너무 큰 격차가 나면 노력의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학창 시절, 반에 그런 친구 한 명쯤 있었을 거다. 조금 공부하고도 성적 상위권을 유지하는. 그런 친구들을 천재라 부르는 건 박한 평이다. 그들도 열심히 한다. 무작정 노력만 하지 않을 뿐. 내 성적이 바닥을 칠 때 학습 시간만 무식하게 늘릴게 아니라 잠시 멈추고 학습 환경과 조건, 패턴 같은 걸 분석했어야 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아마 서울대 가지 않았을까? 아니 뭐, 서울에 있는 대학교라도…     


매번 근성과 인내로 무언가를 이룰 수는 없다. 자주 발휘할수록 방전이 빨라진다.




[왜냐고 물어라, 집요하게.]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다. 중요한 기본 소양 중 하나다. 하지만 노력은 우리를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헛방망이질을 반복하면서도 열심히 휘두르고 있으니 괜찮다는 위안 삼는 순간 노력은 독이 된다. 분명한 방향와 올바른 방법이 설정되었을 때 비로소 노력의 진가가 드러난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웹상에만 검색해도 수많은 자기계발, 관리 시스템이 나온다. 여러 가지를 사용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활용하면 된다. 하다 질리면 다른 방법으로 갈아타도 되고. 나는 시스템 플래너를 잦으면 석 달에도 한 번씩 바꾼다. 뭐 하나를 끈덕지게 못하는 성격이라 프랭클린도 쓰다가 3P바인더도 쓰다가 그냥 백지에 내가 줄 그어 쓰다가, 왔다 갔다 한다. 일정 및 할 일 관리 애플리케이션도 여섯 개 정도 돌아가면서 쓰다 말다 한다. 어떤 시스템 하나에 완벽히 적응해 빈틈없이 자기관리를 해 내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핵심은 끊임없이 결정을 의심하는 태도다.


왜? 대체 이걸 왜 해야 해? 꼭 그걸 해야 해? 무얼 얻을 수 있는데?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이 방법 말고 다른 건 없어? 여기 목맬 이유가 있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야, 진짜로?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 맞아? 아니, 아니 그전에 나는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거야? 왜 하고 싶은 건데? 다른 목표는?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은? 다른 상황은? 다른 건?

되도록 자주 의심하라 말하고 싶다. 한 번 결정한 일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어제는 맞았던 방법이 오늘은 아닐 수 있다. 한 시간 전과 지금의 상황이 아주 달라질지도 모른다. 노력하다 결실이 요원해 막막해질 때면 더욱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이게 정말 맞냐고.


다시 물어도 여전히 그리 해야 한다는 답이 나올 때가 있다. 어느 각도로 틀어 보아도, 변한 상황에 대입해 봐도 그것만이 길인 경우가 있다.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단, 다시 생각해 볼 때에는 신중히 열 번 스무 번 재봐야 한다. 그럼에도 맞다면 하던 대로 가는 거고, 아니라면 손 볼 구석을 찾아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의 완벽한 보완을 거친 나만의 노하우를 손에 넣게 된다. 추진하는 동안 몸 힘든 것 빼고 별 다른 의심 들지 않는 다면 맞는 방법을 찾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때론, 익숙했던 모든 걸 뒤엎어야 할 수도 있고 조직을 박차고 나와 낯선 땅에 홀로서야 할지도 모른다. 불가능 앞에 도망치는 몰골로 자괴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맘 한 켠 찝찝한 일이나 성향과 맞지 않는 조직에 계속 순응하며 버티는 건 되려 노력을 헛되이 만드는 꼴이될 수 있다.



[완벽한 결정이란 없다.]


무작정 노력해선 답이 없다. 무작정에서 무는 없을 無다. 없어도 된다는 말이다. 작정하고 달려들 때 길이 보인다. 작정은 ‘어떻게’를 포함한 단어다. 작전 성공을 위한 병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작전의 목적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면 어떤 병법도 먹혀들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서, 이루고 싶은 꿈을 막고 선 벽 앞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여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되겠지?’라고 누군가에게 토로하듯 물었다면, 이제 스스로에게 묻자.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건지.

당신도, 나도 충분히 열심히 해 왔다. 세상에 완벽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없다. 자주 그러면 안 되겠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결정을 번복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용감한 사람만이 자기가 한 말이나 먹은 마음을 바꿀 수도 있는 법이다. 정말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노력 이상의 노력을 했는데도 맘처럼 일이 안 풀리면 결국 노력 탓이 아닌 거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필요 없다. 지금만큼만 노력하되 어디에 쏟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자.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거다. 방향과 방법만 제대로 되었다면.
 

작가의 이전글 사실 되게 천재인 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