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비 Nov 11. 2017

0.02%의 기적

내 인생에도 기적같은 시즌이 한 번쯤은 오겠지

Up Team is Up, Down Team is Down


축구는 이변 많은 스포츠다. 공은 쉴 새 없이 필드 위를 날아다니고 끊임없이 선수들은 몸을 부딪힌다. 저변이 넓어 워낙 많은 경기가 열린다. 통상 한 경기 후 사흘은 쉬어야 몸이 제대로 회복 된다는데, 리그와 리그컵,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게다가 국가 대항전까지 경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빅리그 상위권 팀들은 심할 때면 일주일에 세 경기까지 치뤄야 한다. 체력이 남아나질 않는 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출전 대회가 적은 약팀들의 반란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축구에서 언더독의 반란은 꽤 흔한 일이다. 그렇다고 리그 전체 판도에는 또 큰 영향이 없다. 일정은 길고 스쿼드가 두꺼운 팀이 유리한 건 사실이니까. 약팀의 돌풍은 대체로 리그 초반을 지나 사그라든다. UTD와 DTD로 불리는, 결국 올라갈 팀 올라가고 내려올 팀 내려온다는 말처럼.


그런데 2015-16 시즌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재작년까지 강등을 걱정하던 팀이 보란 듯 리그 우승을 차지해버린 것이다. 레스터가 처음 빅클럽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건 이변이었다. 기나긴 리그 레이스가 끝나기 전 조기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 아무도 이변이란 단어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우승할만한 팀이 우승했다고, 이견없는 강팀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바로 영리한 여우 군단 ‘레스터시티(이하 레스터)’의 이야기다.


처음이자 마지막 영광으로 남을 듯한 리그 우승의 순간



정말 가진 게 없던


레스터 동화가 펼쳐지던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 시 도박사들이 책정한 레스터의 우승 확률은 고작 0.02%였다. 무려 5000분의 1 확률로 아무도 베팅하지 않을 도박이었다. 장난 삼아, 혹은 팬 심으로 돈 버리는 셈 치고 레스터의 우승에 돈을 걸었던 25명에게 지불된 총 배당금은 약 160억 8천만 원으로, 이는 다른 종목에서 전혀 나온 적 없던 수치라고 한다. 그만큼 레스터의 우승은 기적을 넘어 거짓말 수준이었다. 


[감독]

레스터의 수장 라니에리 감독은 늘 준수했지만 특별히 두각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 무수한 우승 경력 덕에 스페셜원으로 불리는 무리뉴 감독은 라니에리를 두고 70 먹은 노인네일 따름이라며 우승 타이틀을 거머쥘 정신력이나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레스터를 우승시킨 이후 첼시에서의 업적 등 지난 행보까지재평가되는 중이다. 리빌딩에 능한 라니에리는 숨은 보석을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덕장의 면모로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다. 라니에리는 굉장한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다. 언변에 깊이가 있고 결코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변화무쌍하진 않지만 일관되고 효율적인 전술을 운용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직하다. 라니에리가 레스터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만 해도 그의 성공을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부 리그 승격과 중위권 안착이면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라니에리는 오랜 지도자 생활을 거치며 단련된 내공으로 0.02%의 기적을 일구었다. 레스터가 우승하던 해, 라니에리를 조롱했던 무리뉴는 첼시로부터 감독직을 박탈당했다.


[선수]

리그 11경기 연속 골로 신기록을 갈아치운 간판 공격수 제이미 바디. 그는 공장 노동직을 겸하며 8부 리그에서 주급 30만 원을 받던 선수였다. 차근차근 7부,6부, 5부 리그를 거치며 올라왔다. 프리미어리그에서 24골을 박으며 팀의 우승을 이끌 재목으로 보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87년생의 나이로 비교적 늦게 빛을 보았지만 그 임팩트만 틈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언론은 바디를 두고 신데렐라라고 표현했다. 영국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어 골을 넣었다. 아스널을 비롯한 명문 팀들이 그를 욕심냈다. 하지만 바디는 레스터 잔류를 선택했다.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우수 선수로 뽑힌 리야드 마레즈. 발기술이 좋고 속도가 빠른 선수로 레스터 우승의 일등 공신 중 한 명이다. 그역시 프랑스 2부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레스터가 2부에 있던 시절 이적하여 승격과 잔류, 마침내 우승에 기여한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바르셀로나 링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마레즈 역시 잔류를 선택했다.


실상 레스터의 중추였던 은골로 캉테.  작은 체구지만 놀라운 활동력과 피지컬로 중원에서 상대 공격을 커트하고, 아군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한다. 캉테가 있어 바디와 마레즈가 마음 놓고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레스터 우승 다음 시즌 캉테는 첼시로 이적했고 다시 한 번 첼시의 리그 우승에 큰 역할을 담당하며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거듭나고 있다. 레스터는 캉테의 빈자리를 절감하는 중이다.


가장 유명해진이 셋 이외에도 대니 드링크워터, 마크 울 브라이튼, 웨스모건, 로베르트 후트, 캐스퍼 슈마이켈 등 모든 선수가 기대이상의 몫을 해주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들 상당수가 빅클럽 적응에 실패했거나 하부리그에 소속되었던 선수였다는 점이다. 솔직히 언제 강등당해도 이상할 것 없던 팀이었다.그런 그들이 맨유를 잡고, 첼시를 넘어, 맨시티를누르고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랐다. 그건 분명한 이변이었다. 리그 중반까지도 사람들은 레스터의 선전을 축하하면서도 한 켠으로 DTD를 언급했다. 리그 후반기에 접어들고 레스터가 또다시 강팀들을 연달아 잡으며 승점을 굳건히 쌓아나가자 DTD는 UTU가 되었다. 레스터가 ‘올라갈 팀’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웅크린 자의 한 방


레스터는꼭 질 것처럼 경기했다. 점유율을 가져온 적은 거의 없었다. 온종일 두드려 맞으며 꾸역꾸역 버텨냈다. 그러다 조금의 틈이 나면 빠르게 비집고 들었다. 레스터가 골을 넣을 기회는 경기 당 한 두 번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들을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공을 오래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레스터의 전술은 점유율로 대변되는 현대축구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즌 이적료 백억도 쉽게 쓰지 못하는 작은 구단은 그렇게 이적료 천억은 우습게 쓰는 구단들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이런 레스터 정신을 대변하는 라니에리 감독의 말이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나은 팀이 3-0 혹은 4-0으로이길 경기를 1-0으로 이기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레스터는 대부분의 경기를 2점 내로 마무리했다. 1-0 승리는 수두룩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레스터가 무너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뒤로 물러나 수비하는 측은 공격 측보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그러나 레스터는단 한 번의 기회, 묵직한 반격으로 거인들의 급소를 찔렀다. 되려 체력이 빠지는 쪽은 온종일 두드려대다 선 실점한 거인들이었다. 허탈해진 거인들은 거의 그대로 주저앉았다. 사람들의 냉소가 응원이 되기 까지 그렇게 많은 경기수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레스터는 자신들의 승리가 요행 아닌 실력이란 걸 증명했다. 라니에리는 선수들에게 이제 꿈을 이룰 시간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꾸어만 오던 꿈이 현실로 오고 있다고.




좋다, 솔직해지자


나는 별로가진 게  없다. 내가 무언가 위대한 걸 이룰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사람 구실이나 온전히 하면 그걸로 됐다고. 모처럼 품은 내 원대함은 가볍게 치부된다. 누구나 상상은 할 수있지, 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늘 대단한 꿈을 꾼다. 더 나아질 내일과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걸 이루어 낼 언젠가를 그린다. 모두가 비웃을 망상이라 해도 나는 아랑곳 안 할 거다.


가진 게 없을 뿐 나 그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잘난 부분은 내가 잘 안다. 내가 잘 하는 일들은 누구보다 잘 한다. 아직 사람들에게 진가를 채 못 보였을 뿐. 남들은 헛되다고 말려도 나는 망상 속에서 비전을 본다. 내겐 나름의 전략이 있고, 근거가 있다. 분명 세상 모두가 알게 될 거다. 5000분의 1 확률을 책정해 놓고 그걸 진짜 이룬 레스터 때문에 배당금 수습에 허덕이는 스포츠 배팅업체들처럼, 지금 내게 고작 0.02의 확률만 준 사람들도 언젠가 나 때문에 크게 놀랄 날이 온다. 장담한다. 내 손에 쇠와 숫돌이 있다. 열심히 날을 가는 중이다. 곧 날카로워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벼려지는 중이고.


늘 우승하는 팀이 우승하는 건 당연하게 여겨진다. 1등에게도 1등은 쉬운게 아닌데, 정상에서 한 계단이라도 내려오는 순간 사람들은 호들갑 떨며 위기론을 대두시킨다. 부담으로 자멸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꼴찌가, 꼴찌에서 두 번째가 되면 그나마 나아졌다고 해 준다. 꼴찌에서 세번째, 네 번째, 그러다가 한 열 번째 이상 되면 굉장한 격려가 쏟아진다. 거기서 다시 뒤처져도 큰 비난은 없다. 치고 올라오는 사람에겐 부담이 적다. 잃을 게 없어서다. 리그 중반, 꼭 우승하지 않더라도 상위권에 랭크되는 것만으로 이미 기적을 일군 레스터는 리그 막판 승점 경쟁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고, 만년 4위 아스널은 오랜만의 명예 회복 기회 앞에 자주 침착을 잃었다. 나는 한 번도 정상이었던 적 없는 레스터에 가깝다. 하부리그에서 좀 하는 축에 속하던 작은 재능일 따름이다. 내 포부를 하찮게 여기는 냉소 따위, 별 잡음도 아니다.


지방대 중퇴 (실은 제적), 꾸준히 적을 둔 직장 없이 어중 떠중 프리랜서, 허물어져가는 극장에서 적자에 허덕이는 연극을 했고, 돈 십만 원으로 단편 영화를 찍으며, 골방에서 등단을 꿈꾸는, 설상가상 덜컥 부모가 되어 예술이고 나발이고 먹고사는 문제 위해 조잡한 기술 죄다 긁어 모아 하루하루 연명하는, 진 빚을 두고 또 대출을 받아야 하는, 그 대출마저 부결 난, 거의  아무것도 없는, 이글을 쓰는 지금 주머니 속에 750원이 있는, 이런 내가더 잘 될 거라 믿지 않는 사람들. 내 아들을 재벌 2세로만들어 줄 거라는 간절한 포부는 내 부모에게 마저 비웃음을 산다. 현실을 봐, 현실 감각을 가져. 왜, 난지극히 현실만 보는데.


내 현실에선꼭 다 이루어질 테니까.



하… 역시 내가 잘난 탓인가?


딱히 남들 심보가 못돼서 그런 게 아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듯 냉소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나 말고는 다 잘못되라는 저주라기 보다 남들은 잘 되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은 불안에서 오는 자기 연민과 히스테리. 냉소는 두 가지 측면에서 비롯된다. 원래부터 잘난 사람이 잘 난 업적을 이루었을 때. 사람들은 그걸 온전히 개인 성과로 보지 않는다. 금수저니까. 저런 애는 고생 한 번 해 본 적 없을 거야. 또 하나는 세상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을 경우. 그게 될 리 없다고 여겼던 일을 누군가 해내면 그에 대한 존경 이전에 지레 포기하고 해내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게된다. 그게 심해지면, 네가 얼마나 오래갈 것 같아? 라는 심술이 된다. 냉소는 어쩌면 질투의 일종이다.


역사적으로 질투는 많은 비극을 야기해왔다. 질투로 뒤집힌 역사가 한 둘 아니다.요즘 시대에도 질투가 따돌림을 만들고, 범죄의 원인이 된다. 질투는 먼저 눈빛에서 드러난다. 고깝게 보다 보면 아니꼬와진다. 그러다 트집 잡고 괴롭히고, 끝내는 방해까지 이른다. 방해가 뭐 대단한 게 아니다. 뒤에서 헐뜯는 말들이 퍼지다 보면 왜곡된 폄하가 진실처럼 자리 잡는다. 논란의 중심이 된 본인 입장에서 수습은 거의 불가능하다. 괴벨스의 말처럼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냉소의 무서움은 바로 여론을 선동한다는 점이다. 소문이 제일 무섭다.


이런 식이다.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과정이나 성과를 언급하는 게 아니라 그의 부족한 학력을 부각하여 실상 능력이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든다거나, 실무 능력이나 마인드는 제쳐두고 포트폴리오 네임 밸류와 수상 위주로 평가하는 식. 이런 풍토 속에서는 새로운인재가 등장하기 어렵다. 늘 하던 사람이 하던 일을 하고, 새로운 인물은 배척당한다. 신인들의 도전은 가볍게 무시당한다. 사실, 성장할 기회 자체가 적다. 두각을 나타내는 이에 대한 질투는 현재 내 위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다면 세상의 냉소가 쏟아진다면 ‘내가 역시 잘난 탓인가?’ 하고 생각해버리자. 일일이 대응하고 받아치는 건 별로 영리한 싸움 방식이 아니다.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모욕적 언사를 받았지만되려 무리뉴는 추켜세우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하는 것 뿐이라던 라니에리 감독처럼. 그는 냉소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정공법을 알고 있다. 치열한 우승 경쟁 속에서 쏟아지는기자들의 저질 질문에도, 우리가 아닌 팀이 우승한다면 그 팀이 더 잘해서 그런 것 뿐, 이라는 답으로 허허 웃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경기를 이겼다. 이긴 후 생색 내지도 않았다. 그냥 다음 경기에 또 이기면 그만이었다.


다른 중하위권팀들은 레스터가 일시적 돌풍일 뿐이라고 말했다. 혹자는 우승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레스터 구성원의 커리어를 근거 삼아 우승은 설레발이라고 냉소했다. 레스터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에 대한 현재 인식을 인정하고 매 경기 앞서 어려울 거라고 한 발 물러섰다. 커리어가 초라해서 평가 절하 되던 선수들은 필드에서 행동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골을 넣었다. 리그 최다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리그 컵우승, 이런 저런 우승 커리어를 줄줄이 단 명문들을 하나씩 잡아 나갔다. 레스터는 그렇게 구단 최초 리그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건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오직 다섯 팀 밖에 이루지 못한 업적이었고, 레스터가 위대한 여섯 번째 구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제 매치 프리뷰에서는 기존 명문팀과 레스터 경기가 잡힐시 주저 없이 빅매치라고 부른다.


물론, 우승 이후 시즌부터 레스터는 영광의 지속에는 실패했다. 라니에리는 경질당했고 캉테와 드링크워터는 떠났으며, 마레즈는 이상하리만큼 폼이 죽었다. 나름의 전력 보강에도 불과하고 우승시즌 만큼의 성과를 못 보이고 있다. 정말로 우승은 한순간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역시 그것 봐, 하고 담아뒀던 냉소를 다시 꺼내겠지만 이걸 기억해야 한다. 이루었던 업적이 결코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냉정하게 볼 때 절치부심하고 공격적 투자를 감행한 빅클럽들 사이에서 레스터가 다시 우승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이제 어느 팀도 레스터와의 경기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레스터 경기에 1.5군을 운용하며 로테이션을 돌렸을 빅클럽들이 정예 멤버를 출전시키며 전력을 다 한다. 게다가 레스터는 첫 출전한 챔피언스리그에서 연승을거두며 구단 최초 16강 진출까지 일구었다. 각 리그 상위구단들만 참여 가능한 챔피언스리그 진출만해도 프리미어리그 구단 대다수가 이루지 못한 대단한 성과지만, 첫출전에 16강이란 성과는 그야말로 위대하다.






쉐도우 복싱


우리는 보이지않는 대상과 싸운다. 상대는 실체 없는 말들로 논점을 흐린다. 냉소를 위한 냉소는 저질 비난이나 다름없다. 그들만의 기준으로 내가 바라지도 않은 평가를 내린다. 제이미 바디가 한창 기록을 세울 때 사람들은 씹는 담배와 레드불 마시는 행위를 두고 문제 삼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디는 기라성 같은 상대 수비 선수들을 뚫고 골대를 갈랐다.레스터 선수는 아니지만 작년 손흥민이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하고 부진한 시기를 보낼 때 사람들은 그의 연애를 문제 삼았다. 그건 조금도 평가 기준일 수 없음에도 막무가내로 연애가 문제라고 비난했다. 손벤딱 (손흥민은 벤치가 딱이야)라며 이미 끝난 선수 취급을 했다. 토트넘 2년 차에 접어들기도 전에 볼프스부르크로 독일 복귀 링크가났다. 하지만 끝내 토트넘에 잔류했고 묵묵히 훈련에 전념했다. 결과는, 2016년 9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선정 및 리그 7주 차 파워랭킹 1위 달성. 아시아최초였다.


냉소에 연연하는건 혼자 하는 쉐도우 복싱에 지나지 않는다. 스파링 상대 없는 링에서 지쳐 나자빠지는 건 영 폼이 안난다.


어쩌면 세상은 드라마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쉽게 이겨내지 말고 반드시 역경을 거치라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냉소로서 돕는거라고. 상처 받기보다 자극 받고 화를 내기보다 오기를 품는다면 냉소를 촉매로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태를 이기는 도구로서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언젠가 그 노력과 행동을 보상 받을 날은 올 거다. 중요한 건 냉소에 휘둘리느라 엉뚱한 곳에 에너지 빼앗기지않는 것. 나만의 방식으로 올바른 방향을 향해 꾸준히 걸어 나아가는 것. 나를 평가하는 기준은 내가 정해야 한다. 잘 해 낸다면 사람들은 결국 내 방식에 동화 될 테다.



리그는 길다


물론, 내가 얼마나 힘들던, 외롭고 괴롭던, 세상은 호락호락 돕지 않는다. 알고 있잖은가? 언제든 비웃을 준비를 마치고 있음을. 그러나 말했듯 드라마를 원하는시대다. 세상은 시대를 따라 흘러간다. 처음은 어렵더라도 조금만 성과를 보일 수 있다면 시대가 우리를 도울 거다. 공유의 시대이기에 더 그렇다. 천근 다리 들어 한 발 내딛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응원을 보내는 소수만 있다면, 그리고 꾸준히 포기 않고 우리의 일을 해 나간다면, 그러면정말 온 우주가 우리에게 기운을 불어 넣어줄지도 모른다. 좋아요 또 퍼가요. 우리를 또 우리의 성과를 알아서 홍보해주고 앞 다퉈 격려를 건넬 수도 있다.그렇게 두 걸음, 세 걸음, 자꾸 걸음이 쌓이고 발이 바빠져 뜀이 된다. 시대가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진 않더라도 우리가 시대 곁에 살포시 다가가면 기꺼이 손 잡아 줄 거다.


사리사욕을 채우겠다고 장난처럼 시작한 ‘혼밥티’가 그랬고, 푸념처럼 늘어놓았던 글이 사회 화두를 던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그랬고, 게시 글 댓글대로 경로를 잡아 여행을 했던 ‘아바타 여행’이 그랬고, 수많은 그런 일들이 이미 있었다. 다 처음에는 별 관심 못 받거나 그게 되겠냐는 냉소마저 받았다. 하지만 딱 한 고비 넘으니 소수의 응원은 다수의 지지가 되었다. 그런 사례들의 공통점은 결국 꾸준함이다. 


고바야시다다야키는 저서 ‘지속하는 힘’에서 꾸준히 같은 일을 반복하는 행위가 위대함을 만든다고 했다. 솔직히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참 많은 걸 가졌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의연함을 가졌고 잃을 것 없기에 패기와 용기마저 지녔다. 정말 큰 자산이다. 행동하자. 맘처럼 잘 안 되면 뭐 또 하면 되지. 리그는 길다. 한두 경기 못해도 뒤집을  경기가 수두룩하다. 전 경기 패배에 맘 묶여 있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한 경기 승리로 100%의 우승 확률을 증명할 수 없듯 몇 경기 패배로 5000분의 1이 기정사실화 되는 것도 아니다. 패배 후 감독 인터뷰에서 라니에리는 곧잘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괜찮음의 변방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