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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비 Nov 11. 2017

괜찮음의 변방에서

어떤 꿈의 막막함 앞에서

‘걱정말아요, 그대’를 듣는다. 이적 버전으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고 한다.

공감한다. 현재는 과거의 집합이니까. 미래는 다가올 과거고.

매 순간 어떤 일들과 그에 대한 감정을 겪으며 지나왔다면 모두 의미가 된다.

그걸 성장이라 부른다. 그리고 거기에는 성장통이 동반된다.


한창 지나는 중의 모두는 각자 몫만큼 아프다. 이미 지나온 사람들은 때로 이런 격려를 건넨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라고.


동감할 수없다.


그들도 다음의 또 다른 과정을 지나는 중일 터인데, 어쩜 이리무성의한 격려라니.

한 단계를 지난 사람에겐 노련함과 의연함이 배어난다.

그렇다고 타인의 어린 현재를 가볍게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

누구나 현재자신의 상황이 세상 가장 힘든 법임으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로 트랙을 변경한다.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그때의, 그때.

성의없는 위로들에게 되묻고 싶은 게 생긴다.


"그럼, 겪는 동안 아프고 허물어질 맘은 어떻게 하나요? 그냥 두면되나요?"




사실 지나고 보면 괜찮은 일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땐 그때만큼 그렇게 아팠고, 아픔에 대한 내성은 조금도 쌓이지 않았다.

지금의 무언가를 이겨내고 지나 보낸다 해도 다음에 다가올 생소함은 나를 다시 힘들게 할 거다.

지나면 안도할 순 있겠지만 사실 그때 별 것 아니었다는 말은 허세일지 모른다.

 

물론, 면역은 생긴다. 겪어낸 딱 그 순간만큼의 내성만.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겠지만 삶은 변화무쌍한 전술로 우리를 괴롭힌다.

조금의 변칙에도 허둥지둥할 나는 괜찮음의 변방에 산다.





그래, 괜찮지 않다. 괜스레 어려운 길을 택했다.

어쩌면 유니콘을 찾는 여행일는지도 모른다.

호기롭던 장담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세상 다 씹어먹을 것 같던 씩씩함은 턱까지 숨 가쁜 씩씩거림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내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쉬운 길로 가볍게 지나라고 조언했다.

되려 말리는 손길 무수했지 부추기던 이 없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도와달란 말이 삼켜진다.

자존심이다. 알량한 내 전부다. 나는 내색없이, 그저 원체 삶이 그런 듯 의연하고 싶다.

속맘 끓어도,괜찮아 뭐 뒈지기야 하겠어, 지나는 과정의 아픔과 힘듬을 고스란히 받아내겠다.


그렇게 버텨온 시간들이 지금을 받치고 있다.

과거는 현재를 이끌고 현재는 과거라는 버팀목을 매 순간 보강한다.

힘들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거다. 힘들기 때문에 지나고 웃음 지을 미래를 그릴 필요 없는 거다.

지금껏 꾸려온 나날이 있으니까. 아까우니까. 그게 어쭙잖은 내 전부니까.


그런 식으로 꿈에 다가가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열심히 산 노력이 보상받는단 보장 없고 정직이나 성실이 결실 맺는단 소리도 뜬구름이긴 매한가지다.

지나면 별것 아니란 위로도 제대로 지나 보낸다는 것조차 확실치 않은,

겪음의 과정 중에 놓인 이들에겐 무책임한 격려다.


다만, 아까운 걸 아는 사람들은 사소한 모든 걸 소중히 여긴다.

모든 나날의 어떤 것들도 버리지 못한다.

그게 과오나 실수라도 감안하고 받아들인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어제보다 발전한 오늘이 아니게 되더라도,

그 길 위해서 전진하기 위해 기어서라도 움직인다.


그런 미련퉁이들이 결국 꿈과 가장 가까운 곳에 남게 되는거 아닐까?

그냥, 해온 게 아까워, 헤쳐 나온시간이 분해서.


내게 지나간 것의 의미는 훗날 별 것 아닌 추억 정도에 비견할 수 없다.

그때그때의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지금 별것인 일들은 지나고 난 뒤에도 별 거다. 별 거였으니까 의미가 된 거고.


꾸역꾸역 나갈 거다. 기약 없는 미래에 걸기 보다 해 온 과거를 믿고서.

지나온 것은모두 확실하니까. 불확실한 미래도 기어이 확실한 과거가 될 터.

이룬 뒤엔 다음 지날 것들의 한 복판에 뛰어들어 다시 아프고 힘들 작정이다.


그때, 내가 지난 길을 뒤따라 걷는 누군가 있다면 꼭 생색내야겠다.

나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근데, 어쩌다 보니 살아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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