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비 Nov 15. 2017

옷 못입는 패션 바보의 스타일 철학

평범한 게 나쁘냐고? 아니, 잊히는 게 슬픈거다

나름 옷 잘 입기 쉬운 시대다. 조금만 시간 들여 웹 검색을 거치면 다양한 코디 제안을 발견할 수 있으니. 남자 친구 룩, 여자 친구 룩, 커플룩, 패밀리룩, 프렌드 룩처럼 관계 중심 패션부터 오피스룩, 전시회 룩, 콘서트 룩, 아웃도어룩 같이 장소를 기반으로 한 차림. 또, 스포츠 유니폼에서 차용된 레플리카 룩이나 직업 요소에 특징을 둔 영업사원 룩, 예술가 룩 등 세세히 다 분류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패션이 소개되어 있다. 모바일 대세로 넘어오면서는 코디만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도 많아졌다. 그저 따라만 해도 어느 정도는 구색을 맞출 수 있게 된 거다.


옷을 구입하는 절차도 간단해졌다. 모니터 한쪽에 코디 제안을 띄워 놓고 쇼핑몰을 뒤져 주문 버튼을 누르면 며칠 안에 택배가 딱. 요즘에는 아예 코디 페이지에 각 아이템 구매 링크를 걸어놓는 친절함까지 장착했다. 때론, 상품페이지와 다른 실물 모습에 실망하여 반품에 수고를 겪기도 하지만 발품 파는 번거로움에 비할 바 아니다.


처음부터 옷 잘 입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코디를 보고 따라 하며 차츰 센스를 키워나간다. 웹이 산업과 사회 전반을 장악하기 이전에는 잡지를 찾아보고 일일이 숍을 누비며 경험치를 쌓아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옷 잘 입는 사람이야 주변에 얼마든지 넘친다.



유행과 스타일


사실, 패션이란 개념은 옷뿐 아니라 외적 요소 전체를 의미한다. 사전은 이를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복식이나 두발의 일정한 형식’이라 정의한다. 스타일에 대해서는 ‘복식이나 머리 따위의 모양’이라고 나와있다. 두 용어는 거의 비슷한 뜻을 담고 있지만, 차이를 만드는 핵심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유행’이다.


패션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흐름을 따르며 최신 경향에 따라 끝없이 갱신된다. 이미 지난 유행을 입고 나갔다간 구닥다리 소리 듣기 십상이다. 패션은 돌도 돈다는 말은 순환에 대한 순응적 태도를 담고 있다. 사회 문화적 요소가 그때마다의 패션 흐름을 주도했고, 현대에는 굵직한 패션 브랜드들이 조절하는 흐름에 따라가는 경향이 짙다. 미디어에 집중하고 최신 카탈로그를 들여다보고, 셀레브리티들을 따라 하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패셔너블하다는 평을 듣게 된다.


반면, 스타일에는 유행이 없다. 수많은 요소를 배합하여 자신에게 맞는 품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스타일이 완성된다. 거기에는 그 사람의 성향과 성격이 반영된다. 옷을 잘 입고 예쁜 머리를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대중적으로 선호받는 패션 트렌드가 전혀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과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려서 독특한 매력을 자아낸다. 확고한 스타일에는 캐릭터가 담겨있고, 덕분에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쉽다. 나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에겐 따로 명함이 필요 없을 만큼.




별로 적절치 못한 사례지만


내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옷 정말 못 입는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무렇게나 입는다. 편한 게 우선이고, 조화 따위 전혀 고려 안 한다. 운동복 바지에 ‘마이’를 입는 건 예사다. 압구정에서 잠시 일했던 어느 여름 동안에는 늘 삼선 고무슬리퍼를 신고 로데오 거리를 활보했다. 옷 좀 신경 써서 입으라 말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포기하고 만다.


수염도 기른다. 결코 다듬지는 않는다. 지저분하고 덥수룩해 별로 매력 없는 수염이다. 머리는 또 어떤가? 앞머리가 코까지 내려올 만큼 산발하고 기르다가 년에 딱 2회, 3mm 삭발을 해 버린다. 안경은 클래식한 테를 선호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외출은 비즈니스상 미팅이었는데, 면바지에 러닝화, 촘촘한 체크남방에 골덴 마이를 입고 다녀왔다. 골덴도 어디 동묘시장에서나 볼 법한 낡은 느낌을 풍기는 것이다. 가방은 헤링본 소재 크로스 백이었는데, 군데군데 작은 뜯김이 있고 쇠로 된 고리는 녹슬었다. 마이 앞 포켓과 가방 간이 포켓에는 볼펜 한 자루씩 끼워 넣었다.


사실, 이 모든 건 내가 추구하는 캐릭터 표현을 위함이다. 썩 멋들어지진 않지만, 왠지 나라면 그래도 될 것 같은 당위성을 가지려 한다. 그건 내 직업에 예술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과 카메라를 다루는 일이 주가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독특한 느낌을 풍길 필요가 있다. 낡은 옷과 잡화, 더벅버리, 수염과 김구 안경. 이런 요소들이 나를 본래의 실력보다 더 내공 있는 사람처럼 포지셔닝한다. 주변보다 본질에 집중하고, 학문과 사고에 시간을 쏟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인간이 주 콘셉트인데, 대체로 잘 먹히는 것 같다.


동시에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꼰대로 보여서는 곤란하기에,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걸 어필한다. 메모할 땐 아이패드를 켜고 애플 펜슬로 적는다거나, 대화 중 신조어나 전문용어를 섞어 말하는 식이다. 70년에서 온 사람 같은 외모로 최신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업계 용어를 태연하게 구사하는 모습은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상대의 눈을 보고 경청하며 열린 태도로 외모 콘셉트에서 오는 고리타분함에 대한 걱정을 상쇄시킨다. 이렇게 나는 기억되는 캐릭터와 인간적 호감, 일의 전문성을 함께 전달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가 예술 요소가 가미된 일을 하기 때문에 유효한 콘셉트이다. 사람마다 자기 영역에서 먹힐만한 스타일 콘셉트가 따로 있다. 중요한 건 나를 특징지을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내는 거다.



그 수염 지저분한 PD 양반. 거, 옷 막 입는 남자 작가. 나는 이런 식으로 불리곤 한다.


그간 내 주변엔 이처럼 확실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몇 있었다. 긴 생머리 찰랑이는 디자이너 형, 스쿨룩만 입는 모던롹밴드 여성 드러머, 야구 유니폼 상의를 꼭 입고 다니는 여자 후배, 커다란 양지 다이어리를 손에 항상 들고 다니던 남자 직장 상사, 주름진 롱스커트를 매일 색색별로 바꿔 입던 여배우, 넥타이 묶음 부분에 작은 스마일 배지를 끼우고 다닌 자동차 딜러 등 자신만의 요소를 어필하던 그들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 연락 안 한 지 오래된 사람이래도 캐릭터는 잊혀지지 않는다. 만일 내가 다음에 차를 산다면 아마 스마일 배지 딜러를 수소문해 찾을 것이다. 10년도 전에 아버지 차를 살 때 만났던 사람인데, 배지뿐 아니라 사람 자체가 스마일이었다. 시원하게 올린 스포츠머리에 넓은 이마와 새하얀 치아. 셔츠는 늘 푸른 계열만 입는다고 했다. 영업직 특성상 격식을 버릴 순 없겠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 온 거다.


물론, 스마일 배지를 달고 다니는 건 그 영업사원만이 아닐지 모른다. 머리 기른 남자도 내가 아는 그 디자이너 형 말고 많을거다. 천문학적 인구 중 오직 나 한 명 만의 스타일은 존재하기 어렵겠지만, 한 사람 주변에서는 나 하나뿐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몇 가지 요소가 더해져 직업 혹은 성향을 나타낼 수 있는 조합이 완성된다면 나만의 캐릭터는 더 견고해진다.


옷은 캐릭터 표현의 주요 수단이다. 잘 입는 기준으로 어울리는 옷을 찾는 것만큼, 나를 떠올리게 만들 코드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시즌마다 유행하는 옷을 입고, 착샷을 웹에 공유하며 브랜드가 만든 기준으로 서로를 평가하고, 실패를 줄이기 위해 판매 수 높은 제품만 찾는 건 당신을 옷 잘 입는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평범한 게 나쁘냐고? 아니, 잊히는 게 슬픈 거다.



패션은 다양해지는데 스타일은 획일화되고 있는 듯 하다.


가끔은 발품 팔던 시절로 돌아가 시장거리를 누비며 나만의 잇템을 물색해보는 건 어떨까? 유행에 맞지 않아도 나만 가질 수 있는 패션 포인트를 찾아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 될테다. 다만, 아무렇게나 특이해서는 스타일이라 보기 어렵다. 대학 시절, 한동안 나는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니트와 남방만 고수했었다. 바구니에 고전 문학 책 두어 권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깔끔히 면도했고 머리는 귀를 덮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날씬했다, 진짜로.) 그때는 뚜렷한 목적 없이 특이해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 결과적으로, 그냥 이상한 애 취급만 받았다.


스타일은 사람 특성을 특징짓는 상징적 장치가 되었을 때 빛을 발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를 드러낸다는 건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목표와 나아가고자 하는 위치에 대한 고찰이 기반되어야 한다. 자기 철학을 구축하는 과정에 스타일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취향도 포함된다. 자, 당신은 옷을 잘 입는 편인가? 그럼 당신은 스타일을 가졌는가?


이상, 옷 못 입는 패션 고자의 스타일 철학이었다. 하지만 당신과 내가 실제로 만날 기회를 가진다면 장담컨대 당신은 나를 기억하게 될 거다. 망측한 내 스타일 요소 중 하나를 떠올리며.




작가의 이전글 압도적이되 유동적인 팀 장악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