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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예비역 회의>, <여학우 회의> 예정입니다.

by nangbii


대학 시절 우리 과에는 <예비역 회의>라는 모임이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복학생들과 고학번 선배들로 이루어진 남자 학우들의 모임. 병무청에서 실시하는 ‘학생 예비군 제도’로 학과 내 전역자들(같은 과 선후배)이 같은 버스를 타고 훈련을 받으러 간다. 이 ‘학생 예비군’이 좋은 점은 예비군 훈련 시간 단축의 혜택이었는데 일 년에 2박3일 동안 받아야 하는 동원훈련을 단 하루, 8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는데 학생 예비군 훈련을 가려면 학과 내 소모임인 <예비역 회의>에 무조건 참여(자동으로 가입되었다.)해야만 했다.


학과 행사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예비역 회의는 개강총회, 종강총회, 소모임의 교수님이 동석하는 뒤풀이 자리에 함께 앉아 술 시중을 드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MT를 가면 예비역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야 하고, 술에 취해 실수하는 학우들이 없는지 돌봐야 한다. 술자리의 좌석 배치는 나름 치밀하게 기획되어 있는데, 고학번 형들은 교수님의 맞은편 자리에, 갓 복학한 예비역 신입은 교수님의 양옆에 앉아 술을 마신다. 교수님을 빨리 취하게 만들어서 귀가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형들의 예리한 눈짓으로 복학생들은 1시간에 한 번씩 로테이션 되어 자리를 교체된다.

복학하고 새 학기 첫 예비역 회의 날. 우리는 모두 강의실에 모였다. 예비역 회장과 학회장, 임원 형들이 앞에 나와 한마디씩 했다. “선배에게 인사는 기본인데 몇몇 이름들이 계속 들리고 있어. 긴장해.” 힘든 군 생활을 끝마치고 돌아온 우리에게는 또 다른 군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회의라고 볼 수 없는 회의가 끝난 뒤 우리는 술집에 가서 술을 먹었다. 친목 도모였지만 친목은 없었고, 단순히 술자리를 갖기 위해, 선배들이 후배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어떤 날에 ‘긴급 공지’가 문자로 뜨면 모든 예비역이 강의실에 모여 머리를 박았다. “머리 박아.” 누군가 선배에게 인사를 안하고 쓱- 지나쳤다는 이유였는데 그것이 과연 바닥에 머리를 박을 만큼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을까? 하지만 우리는 모두 회장의 명령에 순응했다. 군대에서부터 배워온,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워온 ‘연대책임’이라는 것은 20년이 지나도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내년에는 편해지겠지. 참자.’라고 생각했지, ‘내년에는 이런 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거야.’라고는 생각 못 했다.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나와 친구들은 밤마다 형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 불려 나갔다. 그래서 선배들과 친해지면 ‘학교생활 잘하는 친구, 훌륭한 친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렇게 되면 학교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선배들의 눈치를 볼 일이 없어졌다. 일 학년 새내기 시절 무서웠던 예비역 형들을 피해 다녔다가 이제는 어엿한 ‘군필자’가 되어서 늠름한 모습으로 더 자유롭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예비역 회의에 참여할 수 없는 친구들은 남자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1, 2학년 후배들이 그러했고, 군 면제를 받은 3, 4학년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 면제를 받은 학생들은 이런 학과 내 분위기 속에 학과 행사나 여러 활동을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를 다녀와야 진정한 남자가 되기 때문이었고 그래야만 학과 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학우 회의> 또한 존재했다. 여학우회의는 학과 내 여학우들의 친목과 복지 증진이 목적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회의에 여학우 전원이 무조건 참석해야 했고 여학우 회의안에서도 ‘군기 잡기’가 존재했다고 한다. 회장 언니가 앞에 나와서 인사를 잘 안 하는 후배가 누구인지, 선배들에게 밥, 술 사달라고 하는 후배는 누구인지 이른바 ‘잡도리’가 이어졌다. “선배(남자)는 지갑이 아니다.”라는 회장의 선창으로 후배들이 크게 복창했다고 한다. 여학우 회의가 있는 날이면 친구들은 모두 아침부터 하루 종일 울상이었다.


여학우 회의 제일 큰 행사는 바로 ‘예비군 훈련 도시락 준비’였는데, 여학우 전원이 모여 ‘오빠들’이 가는 힘든 훈련을 위해 맛있는 도시락을 싸야 했다. 예비군 훈련 전날 3학년 언니들의 지휘 아래, 1, 2학년 여자 후배들은 모두 모여 장을 보고, 둘러앉아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선배들이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우리 과의 전통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추진해 온 도시락을 받아먹는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맛있게 받아먹었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좋아했던 후배가 나를 위해 특별히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를 붙여주었고, “오빠, 맛있게 먹어요.”라는 문구를 써주어서 나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내가 졸업하고 2년 뒤, 예비군 도시락 싸기 행사는 없어졌다고 한다. 어느 날 집행부 회의에서 누군가가 “왜 그래야 돼?”라는 물음으로 그냥, 없어졌다고 한다. 당연히 없어져야 할 것이 없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대학교 후배들을 만나 이야기할 때면 가끔 ‘예비역 도시락’ 이야기가 나온다. “언니, 그때 우리 진짜 좆같았어. 왜 우리가 그 도시락을 쌌을까?” 그런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을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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