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기억들이 모여 그리움이 된다.

by nangbii

7년 전 강원도 삼척으로 촬영을 가 있던 당시, 나는 아침에 아버지의 전화를 보고 잠에서 깼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힘든 투석의 기간을 3년 넘게 버티고 버티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바뀔 즈음,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할머니는 청라 막내 이모네에 계셨고 그 마지막 모습은 중학생 기택이가 봤다고 한다. ‘할머니의 마지막이 우리 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던 건 이모들에 대한, 사촌들에 대한 나의 하찮은 ‘생색’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인제 그만 가셔야지.”하는 엄마의 말이 정말 듣기 싫었지만 듣기 싫은 만큼 나는 엄마보다 할머니에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테레비에 나오는 ‘그 프로’ 만드느라 힘들다고 전화 통화로 할머니에게 우쭐대며 말했던 내가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군대 제대 후 망나니처럼 지내던 시절, 밤새워 놀다 집으로 들어오면 할머니는 늘 거실에 이불을 펴고 누워있었다. 술 때문인지 잠 때문인지 반쯤 몽롱한 상태로 할머니 품에 파고 들어가 누우면 내가 다섯 살 시절로 돌아간 것같이 너무나 편안했다. 할머니의 품은 십여 년의 시간은 거뜬하게 거슬렀다. “정말 술 너무 먹지 말어.” “오라질 놈, 담배 피우지 말어, 담배 피우지 말어.” 심각하게 말하는 할머니는 반대로 나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껴안아 주었다. 아직도 그 음성이 또렷하게, 따뜻하게 들린다.


나는 다섯 살에서 여섯 살이 되는 추운 겨울을 할머니와 보냈다. 엄마 아빠의 바쁘고 고된 서울살이는 동생 문영이만으로도 많이 벅찼을 것이다. “할머니, 엄마 나 언제 데리러 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물을 때면 할머니는 “밥 잘 먹고 씩씩하게 있으면 온다.”고 말해주었다. “김치도 잘 먹는 씩씩한 내 새끼.” 할머니의 축 늘어진 가슴을 만지고 있으면 나는 금세 엄마의 품인 듯 편하게 잠들었다. 추운 겨울 할머니가 장독에서 가지고 들어오는 김치 한 포기, 오래된 고무 털신, 막걸리에 밥을 가득 말은 흰 대접. 그 기억의 물건들과 하얗게 눈 덮인 강원도 외갓집의 전경이 그립다.


갓 스무 살, 대학 새내기의 첫날, 뒤뚱거리는 할머니와 천천히 터미널로 함께 걸어갔다. 나는 횡성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한 장, 천안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한 장 끊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 안 가도 어디서든 열심으루 하기만 하면 성공한 사람 돼.” 버스를 기다리며 할머니는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할머니집이 있는 횡성으로, 나는 학교가 있는 천안으로. 우리 둘은 그 곳에서 잠시 헤어졌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횡성까지 가야 하는 할머니가 내내 걱정되어서 떠나가는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스물네 살.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딱히 계획이 없다면 이번 방학 동안 할머니 좀 돌봐 드리자.”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방학 동안 나도 무얼 해야 할지 몰랐기에 잘 됐다 싶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할머니의 밥을 빼앗아 나누어 먹었다. 내가 간이침대에 누워있으면 할머니는 이모부 이야기, 외삼촌 이야기, 강원도에 누나들 이야기… 그동안 할머니 마음속에 있었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할머니는 딸들 모두 공평하게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딸들의 생활을 걱정했고, 자식의 자식들을 걱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시기였다.


돌아가시기 1년 전,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보러 병원에 갔을 때, 할머니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코에 산소 튜브를 꽂아 숨 쉬는 것을 몹시 불편해했다. 내게 용각산 뚜껑을 열어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손쉽게 뚜껑을 열어주었다. 휠체어를 밀어 바깥공기를 맞으러 밖에 나갔을 때 할머니가 말했다. “낭비야, 저 부추꽃 좀 봐라.” 가녀리지만 꼿꼿하게 솟은 하얀 부추꽃 한 포기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부추꽃을 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 때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잠시 뒤 기력이 없는 눈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우리 집에 있는 할머니 옷과 신발들, 자신이 정리한 물건들의 위치를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때쯤, 할머니는 당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서서히 맞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모든 장례 일정이 끝난 뒤 인천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할머니에게 했던 다짐들, 약속들은 아직 잘 지켜지고 있을까? 떳떳하고 바르고 정직한 30대를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소중히 지켜 나가야지 싶다. 나중에 내가 죽어서 하늘이든 지하든 다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떳떳하게 할머니를 꼭 안아 볼 수 있을 테니까.


“할머니. 나 갑자기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네. 꿈에라도 만나서 할머니 손 잡고 내 철없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우리 서로 할 수 있을까? 나 할머니한테 마지막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너무나 아쉽다. 만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나는 왜 소홀했을까. 너무나 후회가 돼.

할머니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거야. 할머니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 그동안의 추억, 기억을 단 한 개라도 잊고 싶지 않다. 평생 홀로 우리 엄마, 이모들 키우느라 고생 많이 하셨으니 이제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 마지막까지 아파하고 많이 힘들어했으니까…

사랑한다는 말, 마지막 병원 간 날에 말할걸. 너무 후회된다. 마지막이 너무 아쉬워서 미련이 많이 남고 너무나 슬퍼.

할머니. 나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될게. 떳떳한 사람이 될게. 정말 고생 많았고 수고 많았어요 할머니. 고마워 정말 많이 사랑해.(201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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