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반 준희
비가 오던 어제 같이 일하는 준희가 다쳤다. 180에 100킬로가 훌쩍 넘는 거구의 준희가 못을 밟고 쿵-하고 쓰러졌다. 땅바닥에 누워서 구르고 있는 준희의 신발 바닥에는 손가락 세 마디 정도 되는 길이의 검정색 못이 아주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준희는 아파서 계속 ‘악-’ 하고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나는 순간 프랑켄슈타인이나 찰리채플린 같은 것들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다. ‘내가 이렇게 잔인한 사람인가.’싶으면서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났다. 준희에게 너무 미안했다...
준희 본인이 스스로 못을 뽑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못을 잡는 것조차 도저히 엄두를 못 내서 결국 내가 대신 못을 뽑기로 했다. 오른손에 잡고 있는 못이 직각으로 잘 뽑힐 수 있도록 왼손으로 그 아이의 발목을 단단히 잡았다. “쓱-“ 못은 온전히 잘 빠졌다. 아직도 못을 빼던 그 순간의 느낌이 잊히지 않는다. 내 손 위에 올려진 못의 단면은 매우 거칠었고 거멓고 붉게 녹슬어 있었다. 준희는 너무 아파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급한 대로 내가 끼고 있던 목장갑을 뒤집어 지혈하고 사무실에 있는 소독약을 가져와 소독한 뒤 동네 병원으로 준희를 데려갔다.
아침 내내 비를 맞으며 일하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들어간 나와 준희의 행색이 약간은 우습기도, 창피하기도 했다. 검정색 얇은 ‘몸뻬바지’와 땀과 비에 젖은 기능성 티셔츠, 더러운 운동화와 팔 토시. 쉰내가 나는 우리 둘. ‘노가다 일’을 하는 우리를 병원 안에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신경이 쓰였다. 그딴 눈빛들과 인식들은 바보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막상 그 대상이 나와 준희라고 생각되니 몹시 부끄러웠다. 혹시라도 나의 옷차림과 행색을 우연히 마주친 지인이 볼까 두려웠다.
기록에 준희는 2006년(초등학교 시절)에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반드시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의사는 며칠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파상풍 주사를 맞고 일터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준희는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와 회사에 미안하다고 말했다. 파상풍 주사 비용은 3만 원이었다. 치료비, 약 처방까지 총 5만 원도 안 되는 돈에 눈치를 보는 준희가 매우 답답했다. 나는 내일 일은 쉬어야 되겠다고 말했지만, 준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회사로 돌아왔고, 새벽반 근무가 끝난 준희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퇴근 했다.
그리고 오늘, 준희는 결국 출근했다. 준희는 새벽부터 나와서 뒤뚱뒤뚱 열심히 일하고 퇴근했다. 일을 하는 중에 준희가 계속 신경 쓰여 나는 준희의 몫까지 더 많이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퇴근 시간, 준희는 마땅한 신발이 없다며 파란 장화를 신고 집으로 갔다. 오늘 하루 종일 일도 문제없이 하고 밥도 잘 먹고 잘 웃고 떠들었던 것을 보면 준희는 꽤 괜찮았던 것 같다.
준희가 퇴근한 뒤 우리는 어제 준희의 일을 하나의 해프닝처럼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각자 자신의 경험담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김 부장님은 비 오는 날 계단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쳤다 말했고, 박 과장은 눈이 박스에 긁혀서 아직도 앞이 살짝 씩 흐릿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문득 “형, 별일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일하는 중간중간 준희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생각해 보면 사장님은 준희의 발에 얼마나 오래되고 얼마나 오염된 못이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잘 모를 것 같다. 당장 ‘성실맨’, ‘일당백’, ‘에이스’ 준희가 내일 새벽에 근무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걱정은 좀 했을지도 모르겠다. 새벽 근무자는 준희 한 명뿐이니까. 그런데 준희 또한 자신이 내일 근무를 빠지게 되면 동료들이 힘들 거란 걱정을 한 걸 사장님도 알고 계실까.
그리고 나는, 나는 내 일이 아니었으니 곧 잊히겠지 싶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고 준희는 웃으면서 어제 일을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맞아! 너 그때 못 밟았잖아.”하면서.
별일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하겠지만 과연 별일이 아닌 게 맞는 걸까. 이게 내 일이었으면, 내가 못을 밟았으면. 그리고 왜 계속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 너무나 답답하다. 일을 할 사람은 부족한데 일은 넘치도록 많다. 단 5분도 앉아있을 시간이 없이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다치는 것은 곧 고장나는 것이다. 고장난 것을 고치면 된다고만 생각하는 사장님의 생각이 너무나 괘씸하다. 사람은 기계가 아닌데. 그런데 나는 왜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걸까... 나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내가 너무나 밉고, 그런 내가 너무 싫다.
근무시간에 잠시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준희에게 다친 발을 보여달라 했다. 준희는 끝까지 양말을 벗지 않았지만, 얼핏 틈새로 보이는 준희의 발바닥은 많이 부어있었다.
나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엇이 삶인가, 삶다운 삶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돈이 그렇게 중요한가.’ 머릿속에 여러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