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짙은 비유로 덮여 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로움을 느끼고 그래서 책 속에 더 오래 머물다 옵니다. 이 책은 이야기를 따라 한 발자국씩 꾹꾹 내딛으며 두리번거리거나 뒤돌아보게 하는 여유를 줍니다.
13쪽 강아지에게 이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 말을 몰랐고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사람 사이에도 언어가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말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저 말을 할 때의 당혹감이란. 눈빛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은 차라리 속으로 삼키는 게 낫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결국 상대의 언어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면 들리기도 합니다.
49쪽 지하는 그 점이 왜 아직도 한빈이의 등에 있는지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노려보면 볼수록 점은 더 크게 번져 나갔다. 살아 있는 것처럼.
삶에서 좋은 것을 보며 나아가면 도중에 겪는 아픔을 겪어내기 수월할까요. 발에 치이는 돌부리를 피하기 위해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삶은 확실히 더 고단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깊이 뿌리내린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로 가는 길이 순탄할 리만은 없겠지요. 오해가 생기고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성한 숲을 헤치고 서로에게 묵묵히 나아가면 언젠가는 만날 겁니다.
71쪽 그럴 때가 있다. 울퉁불퉁한 돌멩이들을 억지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는데, 그 돌멩이들이 못 참겠다며 흔들리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과 생각이 맺혀서 때론 작은 결정이 되는데 그것들이 모여 (작가님이 말하는) 돌멩이가 된 걸까요. 가끔은 저도 속을 들여다보기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글자에 생각을 실어 꺼내놓다 보니 무겁게 가라앉는 날이 줄어들었습니다. 역시 글은 듬직한 친구입니다.
90쪽 번데기는 나비가 될지 말지 정하려고 멈추는 시간이야. 만약 나비가 되기 싫으면 그대로 번데기로 굳어서 죽어 버리는 거야. 나도 여기서 멈출 거야.
성장의 힘은 자기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다는 아이가 있을 때 끌거나 밀어줘도 이미 풀린 다리는 제 할 일을 못할 겁니다. 스스로 걸을 힘을 내도록 기다려주는 수밖에는요. 더 빨리 나비가 되라고 번데기를 다그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125쪽 나는 한동안 울다가 일어났다. 계속 울어 대는 휴대폰을 끄고서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끝에 힘을 주고 아주 천천히. 이제 내 힘으로 아까 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회복 탄력성은 '실패나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능력을 타고나는 것도, 살면서 키워가는 것도 큰 축복이라고 여깁니다. 카드게임을 잘 모르지만요, 어릴 적 궁지에 몰릴 때 휘둘렀던 '조커'의 위력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모난 삶에 부딪힌 시큰한 마음을 다독이고 치유하는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따듯한 담요 같은 책은 선물해 주신 주니어RHK 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