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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독백 Sep 10. 2024

포기하고 얻은 것들


낯선 곳이 주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내 안에 흩어져 있던 의욕이란 덩어리가 뭉쳐져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듯했다. 한 아이의 엄마라는 것 외에 다른 이름으로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도 같다. 아이가 초등학생 입학을 준비할 때 나는 학원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옛날 옛적에 제가 아이들을 가르쳤었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증발해버린 시간과 경험을 다른 무엇으로라도 메워야 했다. 3개월을 잡고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초등영어지도사, 영어독서지도사1급, 자기주도학습지도사, 하브루타지도사1급, 심리상담사1급, 독서심리상담사1급, 영어동화구연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물론 모두 민간자격증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과정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학원 로비에 진열해놓기에 적당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 도움이 될 것들이었다.



사업을 해보는 것이 처음이고, 그 분야에서의 경험이 끊긴 지 오래라서 남편은 프랜차이즈 학원을 운영해보는 것을 권유했다. 맞는 말이었다. 시스템을 잘 갖춘 회사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용자의 후기가 중요하므로 블로그와 인터넷카페 글을 뒤지면서 선호도와 만족도를 알아보고 커리큘럼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 중 가맹비가 괜찮은 곳을 골라 연락했다.



면접은 집에서 봤다. 남편은 자신이 보는 면접인 것마냥 한껏 긴장했다. 사주에 사업운이 하나도 없다는 말에 세뇌되어 살아온 그는 나를 통해 대리만족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바쁜 일정으로 굶다시피 하다 온 젊은 팀장은 우리가 준비한 피자와 치킨 저녁을 아주 반가워하며 인증사진까지 찍었다. 면접 분위기는 좋았고, 팀장이 열정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거듭했다. 이제 학원의 위치만 고르면 되었다.



몇 군데 괜찮은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상가 자리는 없었다. 내가 차리려는 프랜차이즈 학원은 저학년도 많이 오는 곳인데 난감했다.



한편 남편은 나무늘보 같은 자기 아내가 이제 꿈틀거리며 무언가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것에 잔뜩 흥분해있었다. 게다가 자기가 못 이룬 사업가의 꿈이 아닌가. 자신도 셔터맨(아내가 뼈빠지게 일한 일터의 뒷정리를 담당하는 남편) 역할을 잘해낼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였다. 아이가 혼자서는 도저히 올 수 없는 곳에 학원을 차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학원을 비우고 내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도 불가능해보였다. 그동안 조용했던 내 안의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1학년 아이는 급식에 적응하는 기간도 주기 때문에 4교시가 끝나자마자 나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해. 학원 아이들이 먼저 학원에 와있으면 어쩌지? 아이가 아파서 결석할 땐 병원에 오전에 데려가면 되고.. 그런데 집에 혼자 둘 수는 없고. 학원에 데리고 있으려면 작은 공간도 따로 만들어야 하나? 같이 하는 운동과 산책도 못 하겠네. 이야기도 많이 못 나누고..’ 등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일어나면 나를 우울하게 만들 것 같은 일들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내 불안을 감지해내지 못했고 '무엇이든 일단 하면서 해결해나가면 된다'고 했다. 하루하루 삶의 전장에서 뛰는 직장인다운 말이었다. 그렇지, 어떻게든 해내야지.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길 수도 있어. 그러나 만약에...



남편은 ‘만약에’라는 말이 금지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업인 ‘엄마’의 입장에서는 내 아이의 문제가 엮일 것을 생각하니 패기넘치던 첫 마음이 불붙은 부싯깃처럼 생각되었다. 창업에 대한 기대가 마음 속에 활활 불타올라 아직 엄마 손이 닿아야 하는 내 아이를 내버려두게 할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마음과 그걸 진정시키려는 마음 간에 전쟁이 벌어졌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결국 나는 갈등하는 일에 삶을 더는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포기를 선택했다. 남편에게는 ‘당분간 아이를 키우는 본업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그렇게 힘이 빠진 모습은 이전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포기하는 것에 도전했던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학원은 언제든 차릴 수 있지만 아이는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학교 끝난 후에 했던 도서관 나들이, 공원 산책과 행복한 아이의 웃음이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사랑스럽게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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