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와요! 재미있는 하루 보내!
가족들을 배웅하고 아침 집안일을 끝내고서 낭독공부를 한다. 듣기와 말하기. 말 배우기 시작한 어린애도 아닌데, 말만 잘하고 사는데. 그래도 책을 들면 하려는 ‘말’은 안 나오고 읽기와 말하기를 왔다갔다 한다.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일 테니 연습으로 채워나갈 수밖에. 오늘도 어떤 작가의 이야기를 떠듬떠듬 나에게 들려주었다.
낭독이 끝나면 내 목소리로 가득했던 집안은 조용해진다. TV도 없고, 통화도 거의 하지 않으니 들리는 건 바깥의 차소리와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도는 실링팬 소리뿐이다. 조금 기다리면 따뜻한 차와 책의 마중으로 저 멀리서 내 안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이 순간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학생이거나 직장인이었을 땐 내 안의 소리와 바깥의 소리가 뒤섞여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걱정이나 고민이라고 해야 할까. 한시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불안을 잘 느끼는 성격 탓에 뭔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스스로를 못 살게 굴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으니 내 안의 소리 또한 비명으로 가득 찼다.
‘고요’가 주는 평온함을 깨달은 건 아이가 좀 크고 나서다. 책을 좋아하는 외동 아이. 그래서 아이가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엄마가 혼자 있는 걸 허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난 고요의 세계에 입문했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안했다. 생각해 보면 의미를 가진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생각을 부려먹을 재료를 찾질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한시도 멈추지 않는 생각과 마음이기에.
가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짧은 명상을 다. 어느 순간 ‘의미’가 필요 없게 되었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생각할 거리를 찾아 헤매던 뇌가 변했다. 지금의 나의 몸과 내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데 만족하게 된 것 같았다. 물론 걱정거리가 있으면 방해를 하기도 했지만, 그럴 땐 걱정거리가 원하는 만큼 들여다봐주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고요에 파묻혀 무얼 하고 있는가.
그동안 놓아주지 못한 것들, 그리고 또 붙잡혀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나 자신을 신기해서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 같다. 마치 물 위에 누워있는 듯이. '웅웅' 거리며 멀어지는 세상의 소리. 나를 감싸 안은 따뜻한 물을 손가락 사이로 느끼며. 물결에 내 몸이 줄렁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