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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독백 Nov 22. 2024

심장과 뇌를 파먹는, 스트레스

#상상  #글쓰기  #스트레스


있잖아, 스트레스가 피부 속으로 짙게 스며들 땐 어떻게 해? 온몸의 혈관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순식간에 다 태워버릴 것 같을 때.

아마 9개월쯤 됐을 거야. 참다가 분노하다가 이젠 내 입에서 시퍼런 저주가 쏟아져나와서 그냥 입 다물어버려. 보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눈 앞에 띄면 내가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겠어서 되도록 안 마주치려고 해.


요즘 스트레스가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있어. 공포와 분노에 가장 취약한 게 심장이 아닐까. 먹먹한 새벽 고요 속에 천장을 쾅 하고 울리는 망치 소리는 느리적거리던 심장을 헐레벌떡 뛰게 하더라고. 그러면 잠이고 뭐고 남아있질 않게 돼. 무언가 보거나 읽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로 아침까지 깨어있게 되지. 사람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난데없이 날아오는 소리가 두려워지는거야. 쾅, 쾅. 조만간 고장이라도 날 듯한 심장때문에 두려움이 똬리를 틀었어. 마음에서 생긴 게 아니라 순전히 심장 때문에.

적당한 스트레스에는 체중이 늘지만, 한계를 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 같아. 와, 5kg가 줄었더라고. 내 안에 경계경보가 울려대니 느긋하게 앉아 밥 먹을 여유는 없는 거겠지. 그런데 신기한 건 안 먹어도 살더라고. 하루에 한 끼도 안 먹을 때가 며칠 있었는데 살은 쪽쪽 빠지지만 정신은 또렷하고 버텨내더라고. 하지만 더 야위면 정신도 무너질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기본 열량은 채우고 있어.

뇌에도 변화가 생겼어. 10초 전에 생각한 것을 하얗게 잊는 일이 잦아졌어. 휴대폰을 어디에다 둔 지 기억이 안 나서 가족들한테 전화를 걸어달라고 여러 번 말하곤 해. 혼자 있을 땐 찾을 길이 없어서 누군가 문자를 보내오거나 전화를 걸어주길 기다렸어. 스마트워치와 연결하면 된다는 간단한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고. 이젠 휴대폰을 한 곳에만 둬.

슬픈 일은 운전할 때 나타났어. 태어나 가장 재미있게 했던 게 뭐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난 지체없이 '운전'이라고 말할 건데. 최근에 내가 내비게이션을 잘못 보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 거리감각이 없어진 건지 판단력이 흐려진 건지, 길을 잘못 선택해서 20분이면 도착할 곳을 50분 가량 돌아서 갔어. 무섭더라고. 내가 왜 이러지? 무슨 문제가 생긴 거지? 인지장애가 온건가... 알아보니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거야.


인생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닥칠 땐 정말 힘들어. 내 경우엔 사람 문제를 제일 힘들어하는 것 같고. 이웃과 소통하려고 망치로 바닥을 쳐대는 막되먹은 인간도 있다는 것, 적어도 몇 개월 동안 더 그 소리를 듣고 지내야 한다는 것때문에, 요즘 내가 말이 없었던 거야.

누구에게나 견딜 만큼만 시련이 주어진다고 믿으며 살아왔는데 이번엔 쉽지가 않네. 그래도 남은 기간 동안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 연구해보려고. 그러면서 심장도, 뇌도 다독여야지.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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