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과 폐수종....(!)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비는 일정한 시간에 나를 깨우곤 했다. 본인의 영양제 먹을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이를 때는 아침 6시 반 엄마를 좀 봐준다 싶을 때는 8시 정도에 늘 나를 깨우곤 했다. 깨우는 방법은 내가 1층에서 잘 때면 달려와서 이불을 긁는다든지, 나를 핥는다든지 괴롭혀서 내가 짜증을 내다 결국에는 일어나게 만들었고, 내가 2층에 잘 때는 어떤 사고든 쳐서 내가 자다가도 눈치를 재고는 내려오게 만들어서 일어나게 만들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오래 잔 기분이었다. 1층에서 자고 있었는데, 피비가 나를 늘 일찍 깨우기 때문에 늘 잠이 부족한 나는 피곤했었는데, 그 날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잔 기분에 눈을 뜨니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벌써 오전 9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이상하다..? 나를 깨우고도 남았을 애가 왜 나를 안 깨우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피비를 불렀다. 사료통을 흔들며 불렀더니 어디선가 튀어 올라 내 배 위로 올라왔다. 밑에서 내려다보는 토끼의 얼굴은 꽤나 귀여운데 입가에 똥인지 갈색 무언가를 묻히고 있었다. 토끼는 종종 식변이라고 하는 영양가 가득한 본인 똥을 직접 똥꼬에서 받아먹기 때문에 (더러운 게 아님) 그걸 묻힌 건가? 하고 보고 있었다. 안 그러던 애가 본인의 왼쪽 어깨에도 내 손톱만 한 똥을 묻히고 있었다. 이상했지만 그럴 수 있다 생각하고는 좋아하는 영양제를 한 알을 주었다. 물고 가더니 틱 - 하고 내 배 위에 흘려버렸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잽싸게 물고 튀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쳐다만 보고 다시 주워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다.
토끼가 좋아하던 사료나 영양제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일이라는 신호다. 여름쯤이었으므로 제일 먼저 나와 있던 선풍기 선을 확인했다. 피비는 선을 종종 갉곤 했었는데 그즈음에는 선풍기 선에는 흥미가 떨어졌는지 갉지 않았기에 너무 방심하고 선풍기 선 단속을 안 하고 자버린 게 화근인 건가 하고 철렁한 마음에 확인을 했다. 그러나 선이 멀쩡했다. 그 외에는 늘 피비가 선을 물거나 사고를 칠 수 있었기 때문에 6평 남짓한 작은 내 방은 늘 피비의 사고에 대비가 되어 있어 다른 이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뭐가 문제지..?’
이곳저곳 샅샅이 뒤지던 나는 뒤늦게야 고데기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피비 때문에 접착식 고리를 달아서 그 위에 걸어놨던 고데기가 그날따라 왜 떨어졌는지,.. 피비가 닿지 못할 거리라고 생각해서 고데기 전원은 껐지만 선은 그대로 콘센트에 연결을 해놨었는데 그게 그대로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평소 물어보지 못한 고데기 선은 피비에게 충분한 유혹거리가 되었고 내가 자는 사이 피비는 그 전선이 흐르고 있을 고데기 선을 갉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보니 피비의 한 쪽 이는 전선이 터지면서 이도 같이 터뜨려 까맣게 타고 깨지고 입술 안쪽 껍데기(?)는 다 벗겨지고 왼쪽으로 씹던 버릇이 있던 피비의 왼쪽 입술을 자세히 보니 일자로 선 모양 그대로 갈색으로 그을려 있었다.
너무 놀라서 부랴부랴 24시간 하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그날이 공휴일이라 원래 다니던 병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기에 강남에 유명한 병원으로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차분히 물어보려고 했는데 친구 목소리를 듣자마자 서러움이 복받쳐서 꺼억거리며 피비 상태를 설명했더니 본인의 토끼는 전선이 꽂히지 않은 상태에서 갉아서 큰 이상은 없었다고 어서 병원에 다시 전화해 보라고 했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젊은 여자분이 받았고 피비의 상태를 설명을 했더니 의사 선생님을 바꿔주셨다.
“지금 애가 전기가 흐르는 고데기를 갉아서 전선이 터졌는지 애 입이 다 타고 이도 깨지고 블라블라..”
울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 말로는 터진 입은 어차피 연고를 발라도 아플 거고 삼킬 거고 해서 해줄 게 없고, 원하면 소독이나 하러 오라고 했고, 문제는 ‘폐수종’이라는 것인데 그건 토끼가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갉으면서 전기가 몸속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폐에 피가 고여서 나중에 폐가 더 견디지 못하면 죽는 병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병은 애가 숨을 헐떡 거리면 30분 안에 응급 수술에 들어가지 않으면 취사율 100%에 이르는 큰 병이라며 병원으로 오는 게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아무리 빨리 가도 30분 안에는 무리인 거리였다. 그래서 애기 입술이라도 어떻게 치료가 안되냐니 그건 어차피 소독 말고는 다른 건 약을 발라도 애가 약을 먹을 거라 안된다며 너무나 차갑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래서 그 병원은 한 번도 거들떠도 안 봤었다.)
아무튼 그래서 여차저차 시간이 지나 원래 피비가 다니던 병원이 문을 열 시간이 되어 전화를 하니 일단 데리고 오라고 하셨고, 병원에서 입술 부분은 일단 치료를 해주시고 난 후 폐수종에 대해서 설명을 다시 해주셨다.
피비가 전기를 안 삼켰으면 다행인데 침과 함께 삼켰으면 폐수종이 올 수 있고 보통 14일까지 견디다가 가는 친구를 봤다. 고 하시면서 강아지 고양이는 이가 날카로워서 깊게 전선을 물어서 전류를 삼키는 애들이 많지만 토끼를 겉만 핥았는지 그걸 삼켰는지 알 수가 없고 그 병은 발병을 해야 알 수 있다며 혹시라도 갑자기 숨을 헐떡 거리면 최대한 빠르게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로 따로 살던 여동생까지 동원해서 2주를 서로 잠도 안 자고 교대로 밤낮을 피비를 지켜보며 케어를 했다. 애가 숨을 헐떡이는 순간 ‘00 병원에 00 원장님이나 @@원장님으로 해서 빠르게 수술을 해달라’고 하라고 동생에게 신신당부를 해 두고 무조건 택시를 타고 총알 같이 날아가라고, 병원비는 내가 낼 테니 일단 숨을 헐떡이는 순간 바로 택시 잡고 튀어가라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결과는..?
피비는 2주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다행스럽게 전류를 삼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피비가 아픈 걸 알고 울고불고 병원에 전화하느라 몰랐는데, 병원을 다녀와서 집을 보니 고데기를 올려놨던 간이 책상이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피비의 어깨에 묻은 똥은 가까이서 보니 똥이 아니라 털이 탄 자국이었다. 내 손톱만 한 크기였는데, 내 추측으로는 스파크가 일면서 피비 어깨에 불이 좀 난 거 같다. 그걸 끄려고 애가 혼자 통통 튀면서 난리를 했었나 보다. 그래서 그 간이 책상이 밀려나 있고 피비는 불을 껐지만 다 타버린 입 속과 깨져버린 치아를 선물 받았던 것이다. 그건 불과 내가 잠든 4시에서 9시 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는 cctv가 없었다.
워낙 방이 작고 직사각형이라 그냥 한눈에 다 보였고 피비가 들어갈 구멍이란 구멍도 없었기에 필요성을 몰랐다. 가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씨씨티비를 달았다. 내가 자는 동안, 내가 없는 동안 우리 피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만약 피비가 잘못됐다면 적어도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그렇게 됐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이사 나와 11평대의 큰 원룸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는 무려 집에 cctv는 5대가 되었다. 집이 커서 사각지대가 생기길래 사각지대 없이 피비를 보기 위해서 설치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밖에 나가면 cctv로 피비 훔쳐보기
-2층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피비 어디 있는지 cctv로 확인하기
-집에 들어오기 전에 CCTV로 피비 부르면서 ‘엄마 지금 갈게’ 하고 이야기하기
나는 내 새로운 취미가 내심 맘에 들었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