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언제나 엄마한테 아기야.
토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토끼 판매상 할머니가 주는 대로 쇼핑백 속에 피비를 받아 들고 왔다. 태어난 지 2주 갓 지나거나 2주 정도 된 아기 토끼는 그저 세상이 신기한 듯, 쇼핑백이 자기 몸보다 훨씬 길었을 텐데 쫄아서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니라 까치발을 하고 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내가 과외를 하러 간 동안 친구가 공원 같은 곳에서 잠시 내려주니 겁도 없이 뽈뽈 기어 나와 그 주변 여기저기를 탐색하던 아가 토끼.
6개월이 되면 아기 토끼는 성토(어른 토끼)가 되는데, 그전에 가장 많은 폐사율을 보이기 때문에 절대 토끼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다가가서 만지거나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 아기 토끼는 그저 세상이 궁금하고 호기심이 많은 듯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다가오고 탐색하기 바빴다.
일을 마치고 다시 아기 토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1시간 반 남짓. 그동안 쇼핑백에 다시 아기 토끼를 넣으려니 어쩐지 불쌍했다. 3월이었음에도 늦꽃샘추위로 패딩을 입고 있던 나는 아기 토끼를 내 호주머니에 넣기로 결심했다. 거긴 솜이 있어서 따뜻하고 깊이도 낮아서 마치 만화처럼 고개만 빼꼼 내밀고 구경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지하철 소리가 무서웠는지 어쨌는지 8년이 지난 기억이지만 그 당시 지하철 안에서 피비는 내 호주머니에서 가만히 있어 주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10분 남짓 걸어야 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꺼내서 손에 쥐고 가슴팍에 감싸 춥지 않게 데리고 왔다. 그때도 고개를 빼꼼시 내밀며 밖을 구경하고 싶어 했다. 정말 너무도 무지하게 피비를 데리고 와서 ‘이동장’이라는 걸 사야 하는지도 몰랐고, 토끼는 산책을 하는 게 위험한 동물이라는 것도 몰라서, 피비를 데리고 집 앞 마트, 집 앞 슈퍼, 집 앞 공터, 놀이터 등 안 가본 적이 없고 밤길 무서울 때면 토끼 그 한 마리가 무슨 큰 힘이 된다고 피비를 데리고 나가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늘 내게 폭 안겨서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쁜 피비를 보고 있으면 오히려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내가 지켜줘야겠다며 나 같은 겁보가 다짐을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 마트를 데려갔는데, 잠깐 계산하느라 옆쪽으로 내려놓으니 내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에구머니나, 토끼예요? 토끼?”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호들갑을 떠시며 토끼인 줄 알면서도 재차 확인을 하며 되물었다.
“네...”
토끼가 소리에 예민하기도 하고 그렇게 관심받아서 달가운 일이 별로 없었던지라 그냥 조용히 네. 하고 대답을 했는데 그런 내 반응이 시원찮아 그랬는지 정말 그냥 속마음이었는지
“어이구 난 뭐 강아진 줄 알았네, 토끼가 크네” 라며 내 뒤꽁무니에 대고 이야기를 해 댔다.
집에 가서 가만히 피비를 바라보다 보니 어쩐지 커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기 토끼가 아닌 토끼들은 그저 큰 토끼인가 보다.
하긴 몸무게가 2킬로가 넘었으니 웬만한 소형견만 할 테니 작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토끼의 평균적인 몸무게는 1.5-3킬로까지다. 즉 피비는 토끼 치고 큰 아이는 아니다. 그러나 마트나 시장 장터에서 몇 주 되지 않은 새끼들을 2-3달짜리라고 속여 팔곤 하니 손바닥만 한 토끼만 보던 사람들에게 성토는 커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만약 마트 같은 데서 지금의 피비를 봤다면 큰 토끼보다 아기 토끼를 선호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그냥 내 눈에 크든 작든 피비는 아가였고 작았다. 내 품에 포옥 안기는 피비는 정말로 작고 소중했다. 7년은 넘게 키우면서도 매일 같이 놀랍고 경이로웠던 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귀엽고 매일 예쁘다는 사실이었다. 하는 짓 마다마다 귀엽고 사고를 쳐도 귀엽고 행복했다. 작고 작은 게 나이를 먹을수록 영리해져서 내 말에 대답을 하는 것도 소중했고, 그저 흘리고 다니는 똥알조차 소중했다. 나이를 먹어 빙키(토끼가 기분이 좋으면 날뛰는 모양으로 몸을 뒤트는 것)를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어째서 피비가 빙키를 하지 않는지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사람도 50대쯤 되면 그냥 세상살이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일 없잖아요. 토끼 나이 그 정도면 이제 사람 나이 4-50 대니 뭐가 재미있겠어요. 이상 있는 게 아니라 정상이에요”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토끼 나이로는 아줌마라는 피비.
그럼에도 내 눈에는 마냥 아기고 마냥 어린애였다. 내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 우리 집으로 온 그 순간부터 피비는 나만의 작고 소중한 보물이 된 것 같다. 물론 이 보물 때문에 재산상의 손해도 입고 (컴퓨터를 아작 낸다든지, 물건을 뜯고 부수고 오줌 싸고 등등..) 화도 나고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들은 찰나였다.
키우는 내내, 내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를 늘 주는 건 바로 ‘피비’였다.
작은 손, 작은 발, 작은 꼬랑지, 작은 얼굴, 옴짝거리는 작은 입술, 그에 맞지 않게 유난히 크던 큰 눈.
생후 2주부터 나랑 쭉 지내서 사람에게 해코지를 받아 본 적이 없는 피비는 ‘사람이 무서운 동물’이고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언제나 본인이 예쁨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그저 사람이 좋아서 택배 아저씨도 뛰어 나가서 반기고, 편의점에서 처음 본 사람의 신발도 핥아주고, 집에서 수업을 하고 있으면 꼭 와서 그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했던 토끼.
사랑만 받아서 사랑을 주는 것 밖에 모르던 작고 작은 소중한 나의 피비.
피비 이야기로 하루 날을 새도 멈출 줄 모르는 게 바로 팔불출 엄마인 나의 버릇이었다.
토끼같이 무해하고 하찮고 귀엽고 작고 소중한 존재가 또 있을까
아아아....! 나는 정말 토끼 바보다.........!
아니 딸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