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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짧고도 긴 소중한 시간

by 낭말로

아침에 반쯤 떠진 눈으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칫솔에 치약을 짜내고 오른손으로 양치질을 시작한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들고 소파에 앉아서 뉴스나 웃긴 유튜브 쇼츠를 본다. 머리는 흩날리고 얼굴은 부어있는 흐리멍덩한 모습으로 입에 칫솔을 문채 허허허 웃는다. 그 작은 화면 안에 있는 영상에 집중하게 될 즘에 이내 정신 차리고 양치질에 집중한다. 샤워의 시작을 알리면서도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양치질이다. 대충 입안을 헹구고 옷장 근처 빨랫대에 걸린 수건과 속옷을 든다.

어젯밤 핸드폰을 충전시키지 못한 탓에 배터리는 20프로.. 샤워하면서 음악을 듣는 걸 포기하고 핸드폰을 충전시킨다. 이내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고 샤워를 시작한다.


머리를 감다가 손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빠진 머리카락이 손에 얼마나 붙어있는지 확인 좀 해보려는 습관이다. 근래 들어 전보다 머리카락이 좀 빠지는 느낌이다.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금방 쌓이는 요즘이다.

한 3일 샤워하면 머리카락이 쌓이는 듯하다. 머리를 감으면서도 아 병원 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고

물로 헹군다. 그리고 간만에 새로 산 바디워시가 풍기는 냄새에 잠시나마 흥겨운 기분을 만끽해 본다.


샤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면도할 차례가 남아있다. 하루면 금방 자라 버리는 수염이 번거로울 때도 많지만 가끔 면도날이 잘 들어서 면도가 부드럽게 잘 될 때의 쾌감은 수염 많이 자라는 사람들만의 소확행이다. 하지만 피부가 예민하면 면도를 매번 하는 게 살짝 고통이기도 하다. 면도를 끝내고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토너를 면도한 부위에 바른다. 오늘은 전보다 피부가 덜 따갑다.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샤워를 마친다.


샤워를 한다는 것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는 일상에서 당연하고 단순한 행동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개운함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크다. 개개인마다 샤워하는 시간은 다르지만 짧으면 10분 길면 20분이라는 이 시간이 하루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 ( 물론 나의 샤워 시간을 예로 든 것이다. )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오로지 샤워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어 아무 잡생각 없이 복잡한 머리를 잠시 쉴 수 있다. 그리고 생각이 많을 때에도 물을 잔잔히 맞으면서 잠시 생각 정리를 할 수 있기도 하다.

무언가를 씻어내고 게워낸다. 몸과 정신도 게워내는 샤워는 어찌 보면 하루 24시간 중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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