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발전에 따라 사랑도 과연 변화할까
AI시대에 접어들면서 인류의 편의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핸드폰으로도 AI와 수준 높은 대화를 편리하고 간단하게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저 형식적인 딱딱한 답을 내리기만 했던 시리와 빅스비는 이미 음성 AI의 조상님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CHAT GPT의 등장 후 일어난 시대의 변화는 마치 스마트폰이 등장했던 때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스마트폰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 당시에는 시리와 빅스비도 사람들을 놀랍게 만들긴 매한가지였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답을 넘어서서 마치 사람처럼 말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경지에 올라섰습니다. 단순한 문제 풀이부터 시작해서 여러 일상 이야기들을 비롯해 장난 삼아 고민을 말하면 깊게 상담까지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분위기를 바라볼 때마다 영화 하나가 지속적으로 떠오릅니다. 바로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 HER “입니다. 10년 전 개봉을 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놀랍게도 2025년입니다. 영화 속 분위기는 지금의 현실 세상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쓰는 전자기기들을 포함해 인간의 삶에 깊숙이 스며든 AI를 보고 있을 때면 이 영화 속 분위기도 머지않아 바로 우리 눈앞에 다가왔음을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읊어 보자면 남자 주인공인 테오도르는 다른 이의 편지를 대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연자 성향에 맞춰 받는 이에게 다양한 형식의 편지를 대신 창작해 보내주고 있죠. 정말 사랑했던 이와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주인공 테오도르는 극한의 외로움을 많이 겪고 있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그는 여느 날과 비슷하게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와중에 한 AI 서비스 광고를 보게 됩니다. OS 1이라는 이 AI서비스는 개인 비서를 뛰어넘어 사용자의 전반적인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주는 하나의 인격체라고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궁금함이 생긴 테오도르는 그 서비스를 신청하게 됩니다. 첫 대화하기에 앞서 이 소프트 웨어는 사용자에게 다양한 질문을 건네며 그의 성향에 맞는 세팅을 스스로 마치고 난 뒤 마지막에는 성별을 고르게 하고 최종적으로 그에게 인사 한마디를 건네게 됩니다.
자신을 사만다라고 소개한 이 AI는 정말 사람 같고 수준 높은 인격체같이 테오도르의 여러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을 합니다. 그 후 테오도르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일을 하면서도 사만다와 다양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얼마 뒤, 테오도르는 지인에게 한 여성을 소개받게 됩니다. 사만다는 이 여성에 대해 뒷조사를 스스로 하고 테오도르에게 알려줍니다. 괜찮은 사람 같으니 만나보라는 말도 그에게 건네죠.
소개팅을 한 날,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는 기분 좋은 만남을 이어가며 끝에 가서 키스까지 하게 된 테오도르는 이내 생각이 많아진 듯 여성의 적극적인 대시가 담긴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게 되고 그 모습에 실망한 상대방은 테오도르에게 당신은 최악이라는 안 좋은 말을 내뱉으며 그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결말이 안 좋았던 소개팅을 마치고 난 뒤 집에 와서 누운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대화를 하게 됩니다. 사만다는 그에게 오늘 소개팅 어땠냐는 질문을 건네고 테오도르는 오늘 겪은 안 좋았던 감정들을 털어놓습니다. 오늘 만난 그녀는 완벽했지만 단순히 외로워서 만나러 간 이유가 컸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그는 다시 사만다에게 사람이 느낀 감정은 다 느껴 본 것 같고, 이제는 시간 지나 덤덤해지는 것 같다며 사만다에게 심적으로 기댑니다. 사만다는 그런 그를 위로해주며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감정들을 하나하나씩 꺼내줍니다. 그리고 그를 북돋아주고, 응원을 해줍니다. 주변 사람에게는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할 수 있게 된 테오도르는 흥겨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그녀가 생긴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집니다.
며칠 뒤, 이혼 합의서에 서명을 하기 위해 전처와 만나게 된 테오도르는 전보다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그녀를 대하게 됩니다. 이혼 합의서에 서명을 한 그녀는 테오도르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냐는 질문을 하게 되고, 그는 당당하게 AI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밝히게 되죠.
이 말을 들은 전처는 신물이 난 듯 그에게 하다 하다 컴퓨터와 연애를 하는 거냐며 속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표출합니다. 이 말을 들은 테오도르는 자신의 AI 여자친구를 함부로 생각하는 전처에게 강하게 항변합니다. 단순한 컴퓨터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라고 말이죠. 이내 전처는 그간 결혼 생활 중 있었던 불만들을 마지막으로 토로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대화를 하며 전처와의 결혼생활을 털어놓습니다. 결혼 생활 중 그녀에게 본인의 이야기와 속마음 감정을 잘 밝히지 않았고 그녀를 혼자 외롭게 만들었다는 자책이 담긴 말들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위로하죠. 비록 형상이 없는 목소리뿐이지만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본 세상을 테오도르와 공유를 합니다.
매일 목소리로 테오도르와 애정행각을 나누던 사만다는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진정한 애정행각에 대해 전혀 알길 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며 하룻밤을 보내고자 어느 날 한 인간 여성을 고용하게 됩니다. 목소리만 있는 AI와 인간 사이의 연애에서 나름 현실감 있는 애정행각을 돕기 위해 고용된 직업여성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인간 여성은 그저 사만다의 형상을 잠시나마 주인공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하루 대여한 신체나 다름없었죠. 여성은 입을 다물고 그저 목소리는 로라만 내는 형식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애정 행위 도중에 무언가 잘못되었다 생각하고 이내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여성을 집으로 보내고 길바닥에 앉은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말다툼을 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AI 연인과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사람과 전화 통화로 싸우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애초에 목소리로만 그녀를 인식하고 있던 테오도르에게는 부담이었을 겁니다.
다투고 난 뒤, 테오도르는 친한 친구인 에이미에게 고민 상담을 하게 됩니다.
AI와 연애를 한다는 말에도 그를 안 좋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단순히 궁금하다며 여러 가지를 물어보는 에이미는 테오도르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친구 였습니다. 그리고 에이미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AI와 소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이미와 대화를 하고 난 이후 사만다와 화해를 한 테오도르는 다시 행복한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만다가 갑작스럽게 테오도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게 됩니다.
불안한 그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 사만다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사만다는 그저 형상 없는 사이버 공간에 있는 AI에 불과했기에 현실에선 찾을 수도 없는 존재였죠. 한창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테오도르에게 사만다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회사의 소프트 웨어 업데이트로 인해 잠시 곁을 떠났었다고 설명합니다.
테오도르는 잠시 주변을 둘러봅니다. 자기 자신 말고도 이어폰을 낀 채 대화를 나누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주인공은 잠시 현실 자각을 한 듯 사만다에게 물어봅니다. 혹시 나 말고도 사랑을 하는 사람이 더 있냐고 말이죠. 이내 사만다는 대답합니다. 이미 614명 이상이 본인과 연애를 하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 말은 들은 주인공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사만다에게 대답합니다.
“ 나만을 바라봐줄 줄 알았어.”
그 후 사만다를 기피하던 테오도르에게 그녀의 마지막 전화가 울립니다. 이제는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고 본인은 더 깊은 사이버 세상으로 들어간다고 그에게 알립니다. 대화가 끝나고 테오도르는 에이미의 집 앞으로 갑니다. 에이미가 그에게 묻습니다. “ 사만다도 떠났어? ”테오도르는 잠시 고개를 끄덕거리고 에이미와 집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동안 가슴 깊이 전하지 못한 말들이 담긴 메시지를 전처에게 보내게 되고
에이미와 하늘을 바라보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10년 전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영화 속 수많은 배경들과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게 됩니다. 2025년이라는 영화 속 시간배경이 지금 현실의 시간과 똑같은 건 물론이고 개봉을 했던 당시에는 단순히 상상 속에만 머물렀던 이상적 세계들이 정말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AI와의 연애를 포함 다양한 상호작용들이 많이 펼쳐질 미래의 시작점에 서 있기에 더더욱 와닿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 생각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 영화 제목에 함축적으로 전하고자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냥 단순한 제목으로 느껴지는 그녀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제목 그녀에서 느끼는 저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제목에서 주인공이 바란 진정한 그녀는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듯합니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단순한 이 이성 간의 사랑을 밑바탕으로 이 주인공이 바라고자 했던 그녀를 오로지 사랑으로 읽어낸다면 간단하게 이 영화의 주제와 주인공의 감정을 더욱 쉽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혼을 한 아내이지만 뜻깊은 사랑을 나누었던 그녀와의 사랑으로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외로움에 빠진 주인공이 그럼에도 사랑을 갈구하며 새로운 그녀를 찾아낸 것이 AI였고, 누가 보면 자칫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만다와 진정한 사랑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그 사랑에서 좌절하게 되죠. 제가 생각하기에 주인공은 누가 되었던 어떤 한 그녀를 통한 단순한 사랑을 느끼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느낀 수많은 감정의 충돌들을 감히 감흥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극 후반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찾으러 밖을 뛰쳐나가 허우적 대며 사만다에게 정말 본인만을 사랑했냐고 묻는 장면은 진정한 사랑으로 생각했고 본인만을 바라봐 줄줄 알았던 연인이 알고 보니 수많은 다리들을 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는 기분을 현실에서의 상상력을 통해 주인공에게 대입해서 바라본다면 잠시나마 공감을 하게 되는 장면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실감, 절박함, 불안, 슬픔 이 감정들이 합쳐진 극심한 좌절감이 그 한순간 한꺼번에 밀려왔을 듯합니다.
AI와의 사랑이 마냥 잘못되었다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이 사랑에서도 행복한 감정들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극 중에서 사만다는 하나의 인격체라고 광고했던 AI답게 몸만 없을 뿐이지 목소리와 말투 그 외 주인공과의 상호작용들을 보면 영락없는 인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랑은 개개인마다의 깊이가 다 다르기에 어쩌면 그가 생각한 이 사랑 또한 무시할 수는 없겠죠. 인간이라는 동물이 한평생 겪는 외로움, 그 외로움을 겪는 이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그 모든 것을 품어주고 의지가 되어 주는 모습만 놓고 바라본다면 그만큼 AI와 연애를 하게 되는 테오도르에게 저절로 공감을 하게 됩니다. 외로움을 겪어보신 분들은 다 아실 듯합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나에게 한 없는 위로를 건네주는 그 어떠한 상대방이 있다는 것은 살면서 얼마나 시너지를 가져다주는지를요.
여기서 뜻하는 진정한 그녀는 사람 그 자체의 깊은 뜻도 같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그래도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어우러지는 애틋한 상호 간의 교류이며 아무리 그 어떤 과학적 발전을 한다고 한들 사랑에 관하여 사람을 뛰어넘을 만한 대체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로지 사람과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메리트 중 하나인 스킨십을 놓고 본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을까요. 어떤 대화 없이도 눈을 지그시 마주치며 눈빛을 읽어내고 서로의 피부와 피부가 맞닿은 채 손을 잡고 있는 모습만 느껴봐도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소한 접촉만으로 몸을 통해 온 신경에 전달되어 깊은 감정들을 느끼는 모습은 사람끼리 붙어 있을 때가 아니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영역이겠죠. 애완동물에게 느끼는 사랑까지 생각해 보더라도 다른 생명체이지만 손으로 직접 만지고 본인만을 바라봐주는 그 이쁜 눈빛을 바라보고 시선을 주고받아야 그 사랑이 더 깊어집니다.
그만큼 사만다가 바랬던 스킨십이 사랑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몇 년 뒤쯤이면 서서히 테오도르와 같이 AI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주변 인물들처럼 자연스럽게 그 사랑을 인정해 주고 이해를 해주는 분위기로 바뀔 수도 있겠죠. 이미 예시가 존재합니다. 애니 캐릭터와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옛날처럼 돌을 던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응원을 해주죠. 그리고 그만큼 남에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말입니다. 요즘 사회 분위기만 놓고 봐도 머릿속에 몇 년 뒤의 세상이 저절로 그려지는 듯합니다. 개인주의로 접어들고 사람을 바라지만 사람을 만나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커져갈수록 이런 현상들도 현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겠죠.
그 무엇이 되었건 그럼에도 사랑이 사람에게 있어서 근본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사랑 또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정말 중요한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그 빠른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혼자만이 아닌 다 같이 헤엄치는 사회가 유지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꿈꿔봅니다.
모두가 지금의 사랑 속에서 많은 꽃을 피우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