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아빠와 목욕탕을 간다

그때는 커 보였던 곳이 작아 보인다

by 낭말로

어렸을 적 그렇게도 커 보였던 사람보다 이제는 키가 커졌다 보니 그 어떤 번호키를 받아도 전혀 망설여지지 않는다. 옛날에는 신발장과 옷장도 그리 커 보였는데 이제는 까치발도 필요 없이 신발과 옷을 자연스럽게 넣고 있다.


어렸을 때 너무 뜨겁다고 느낀 열탕을 이제는 온탕 들어가듯 들어가고, 사우나의 열기는 한없이 익숙해진 듯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빠랑 대화를 나눈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곳에서 대화마저 따뜻해진다.


요즘 가장 큰 걱정과 고민이 뭐냐는 아빠의 질문 자체에서도 따뜻함을 느끼고 이내 마음이 풀어져 나는 곧바로 고민 없다는 대답을 한다.

사우나를 나와서 그렇게 몸서리치던 냉탕을 들어가 시원함을 만끽한다.


그때와 똑같이 아빠는 내 등을 먼저 밀어준다.

여전히 똑같은 바디 타월로. 그때도 시원했지만 지금도 아프지 않고 시원하다.

발까지 밀어야 한다며 발을 내밀라는 아빠의 말에

계속 거부를 했다가 못 이기고 발을 내밀었다.

발바닥 간지럼 때문에 도저히 참지 못했다.

그래서 발 윗부분을 아빠가 밀어주셨다.

이 장면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아가겠지.


나는 바통을 이어받고 아빠 등을 밀어준다.

그 넓었던 등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제는 힘을 그리 쥐어짜내지 않아도

조절하며 아빠 등을 밀고 있다.


면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서로 다르다.

아빠는 5중 날 면도기로 수염을 거침없이 미신다.

쉐이빙 폼, 쉐이빙 젤 그런 거 상관없다.

비누면 된다. 그래도 그 시절 2중 날 일회용 면도기를 쓰시던 때보단 걱정이 덜하다. 나는 여전히 그 거침없는 모습에 놀란다. 내가 피부가 연약해서 그런지 면도는 몇중 날이던 언제나 따갑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제티를 찾았지만 이곳에는 없었다. 바나나 우유를 봤는데 확실히 값이 많이 올랐다. 편의점에서 사 먹자는 마음으로 참고 아빠와 집을 걸어갔다.


아빠 눈에는 여전히 내가 그 시절 약수동 목욕탕을 여기저기 뛰어놀던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보이려나.

오늘 유독 많이 본 아빠의 잔잔하고 흐뭇한 미소를 머릿속 깊은 곳에 자세히 새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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