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40이 찍히면서 요즘 자주 하게 된 것이 "어른이 뭘까?"에 대한 물음이었다.
'어른'... 이전까지 거의 생각하지 않던 단어였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난 어른이 아니었으니까.
그 단어는 마땅히 어른들이 하는 생각이거나 혹은 어른이 되어야 할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단 한 번도 '젊음'이란 범주안에 내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Young 한 것은 나의 것이었고 여전히 푸르른 청년 속에 있다고 당연하게 여겨왔다.
몇 달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90세를 넘기지 못하고 우리와 작별했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사실 많이 슬프지 않았다.
치매로 고생하셨고 뼈만 남은 앙상한 할머니를 보내며 명복을 빌었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운전을 하며 신호를 기다리다 문득
"아... 할머니 이제 안계시구나..."
그러고 보니 이제 할머니의 주변 분들이 아무도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주차하시고 나와 우리 누나를 불러내셨던 우리 할아버지.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던 나의 꿈을 처음으로 응원해 주셨던 우리 외할머니
까만색 콩코드를 몰고 우리 할아버지와 민화투를 치시던 김사장님.
늘 우리 집 대소사를 챙기시던 박 회장님.
그 시절 일본여행 다녀오시고 헬로키티 필통과 크레파스를 사 오시던 큰할머니까지.
불과 10년 전까지 이 세상 안에서 주인공처럼 호령하셨던 분들이 너무나 고요하게 사라졌다.
마치 한 시대를 풍미하다 멸종한 공룡처럼.
태어난 지 몇 년 안 된 우리 조카들에겐
그들이 존재했던 시절과 공룡의 이야기가 비슷한 체감이지 않을까?
한 세대가 접히고 다음 세대가 올라갔구나.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좀 이상했다. 어른이 되어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느끼는 것이.
그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마땅히 어른의 숙명을 순순히 수긍하며 역할을 해온 것일까?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나잇값 좀 해라'
생각해 보면 너무 가혹한 말 아닌가? 아직은 온전히 공감하며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른의 나이가 되었다고 달라지는 건 크게 없는데...
여전히 편안한 게 좋고 아이스크림이 맛있는 것처럼.
거울을 보았다.
한 두 가닥 보여서 자르고 다녔던 흰머리가 이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시간은 말해준다. 가혹한 단어를 받아들이라고.
내가 딱히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아도 억울한 일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상실감에 울고 싶어도 덤덤히 참고 무던한 척 살아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이제야 감사함을 표합니다. 먼저 받아들였던 어른들에게.
알려주세요 좋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