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10만 원과 나의 10만 원이 같다?

이것을 알았을 때, 나의 관점이 열린다.



호구

20대 초반 사회생활을 하면서

줄곧 내가 밥을 샀다.

아니지. 대학생 때 동아리 후배들에게 <커피 사 먹이고 밥 사 먹이고 차비까지 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순간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후배들이 짜증이 났지만, 그걸 멈추진 않았다. 가오가 중요했으니까


술을 마시러 갔을 때도 자주 술을 쐈다.

내가 선배니까 (가족에게는 인색하면서 밖에 나가서 가오 잡는 현대판 여자 김보성)


내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밥을 사기 위해서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줄곧 저축 없이 쓰기만 했던 내 소비생활은

요즘은 많이 위축되어 있다.


왜냐하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많기 때문이고

외벌이기 때문


가오가 살지 않아 짜증 날 때도 많지만, 여전히 가오 잡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나는

나보다 돈을 비교도 안되게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얻어먹고 싶었다.

가오 잡기 지쳤기 때문인데 (굳이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 가오 잡는 것처럼 멍청한 것도 없고)


돈 쓰기에 있어 쓰는 대상을

<나이가 적거나 또는 나보다 쓸 수 있는 돈이 적어 보이는 친구들>에게는 밥을 샀지만

정작 나에게 인사이트를 주고, 나의 인생을 다르게 살게 해 준 소정님에게는 밥 한번 근사하게 대접할 생각을 못했다.


부끄럽다.

일본에서 소정샘과 황호님은 우리에게 2시간이라는 귀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에 걸맞은 장소에서 식사 대접을 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얻어먹고 (그곳이 비싸보여서 더 좋았고 맛있었다. 한 끼 식사값 굳었다는 점에서 쾌재 불렀던 사람이 나다…) 신났다.

메뉴판의 가격 안 보고 턱턱 시킬 수 있어서 좋았던 사람이 나다.



기생하려는 마음

기생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


풀마라톤 나에게 페메를 해준 란언니에게는 대접해 주고

내 인생을 바꿔준 소정샘에게는 인색했다니


나의 10만 원과 소정샘의 10만 원은 동일하다

그 돈이 사회에 나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소정샘 지갑에서 나왔다고 해서 더 많은 이자소득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생하려는 마음을 죽이자.




내 돈을 기꺼이 써야 하는 대상 설정이 잘못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적다고 내가 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가오다)

나에게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나에게 내가 혼자는 절대 얻지 못하는 가치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에게

내 돈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얻은 귀중한 인사이트를

더 가치롭게 만들 수 있도록 행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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