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확 달아오르셨네요

"네에~" 속에 담긴 이번 표현은요?

by 김주임

아파트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한 것보다 일이 많고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순간들이 있다. 대답을 할 수 없을 문의 사항들이 그렇다. 창과 방패같은 내용으로 문의가 올 때가 그렇다. 답을 내릴 수 없는 대표적인 예시가 담배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많은 단지 내에서 어떻게 다배를 피울 수 있느냐? 금연아파트 지정 안하냐?" "베란다 안된다. 화장실 안된다. 1층으로 나가서 분리수거장까지 나가서 피우는데 이걸로도 뭐라고 하면 어떡하냐.흡연장을 따로 마련해 달라." 결국 양측 입장에서 인권의 문제가 아니냐고 양쪽의 입장이 다 전화가 오는데 눈만 도로록 굴릴 뿐이다.


해결책 없이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라 뿌연 콧김이 보일 듯한 얼굴로 관리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허다하다. 담배가 기호 식품의 문제라서 깔끔한 답변 없이 서로 양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라 어려운 것이라면, 어렵지만 단순하게 끝나는 일도 있다.


전화벨 소리 너머의 이야기는 늘 긴장이 된다. "네 안녕하세요. 동그라미 아파트입니다." 인삿말로 마음을 진정시키니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에. 저 0동 사는 입주민입니다. 다른건 아니고 어떻게 입주민 차인데 주차 경고 스티커를 붙일 수 있죠?" 아... 쉽지 않은 주제다. 주차 공간이 넉넉한 아파트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네에.." 어려운 주제인 만큼 섣불리 말하기가 어려워, 주민이 진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이야기 해주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본다.


"아니, 주차를 해도 된다고 떡하니 표시까지 해놨으면서 어떻게 그래요?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이렇게 모질게 운영할 수 있냐면서 한소리를 하더라구요. 안그래도 0동 쪽은 주차 자리도 부족한데. 거기서 더 잘 아실거잖아요." 안다. 너무 잘 알고 민원도 많아서 그려놓은 임시 주차 칸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임시다. 낮이고 밤이고 아무때나 주차 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 퇴근하고 오는 사람들이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자리에 표시해 둔 것이다.


하지만 전화가 온 시간은 오후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와다다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다 쏟지 못하셨는지 내용은 이어졌다. "아니, 주차를 하라고 그려놓고 시간을 지정한다는게 말이 되요? 언제부터 이렇게 한거에요?? 얘기가 된건가요?" 이제서야 나는 대답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았다.


"아 네에. 저희가 0개월 전에 주자창 이용 규칙을 정할 때 이의신청도 받았었고, 시간대를 따로 안내하는 공고문도 나갔고, 각 칸마다 이용 가능한 시간대를 적어두었습니다. 결정이 된지는 조금 되었어요." 답변의 내용이 되바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최대한 나긋한 목소리로 천천히 설명 드렸다. 그러나 주민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성개 가시가 비죽 솓았던걸까. 잘 알길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스티커를 붙이냐'고 우아하게 화를 내시는데 그런 포인트를 되짚어볼 여유는 없다.


"음 그렇죠. 저도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가끔 붙이는데 짜증 나죠."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하는 고오급 스킬을 사용해서 우아하게 흥분한 주민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 노력해본다. "그러니까요." 라고 들려오는 답변에 속으로 됐어.를 외쳐본다.


이제는 통화를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귀 동냥으로 들었던 소장님과 대리님의 통화 스킬을 적용시켜서 회심의 한 방을 조심스럽게 굴려본다.


"사실을 저희도 스티커 붙이고 싶지 않아요. 스티커도 결국은 관리비로 제작하고 근무하는 틈틈히 경비 대원님이 나가서 돌아보셔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스티커 붙은게 안보이면 안보이는대로 전화가 와요. "돈 받고 왜! 일 안해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이중 주차한 차량 단속 안해요?"라고 하시는데 저희도 할 말이 없어요. 사진 찍어서 막 보여주신다니까요. 말씀하신 것 처럼 주차 자리 부족으로 무엇보다 '주차'에 예민하시거든요."


깔끔한 답변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수화기 넘어의 답변을 기다려본다.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고 "흠... 알겠습니다. 주차 가능 시간을 봤다면 전화를 안했을 텐데. 이런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나는 속으로 '오 깔끔한 사과'라고 생각하며 좋은 사람인 척 해본다.


"아이 아닙니다. 이런 전화도 있을 수 있죠. 괜찮습니다." 본인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며 잘 확인하지 못하고 전화해서 미안하고 고생이 많다며 격려를 담은 한마디로 전화를 끝났다.


관리사무소는 시청이나 동사무소는 아니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불편한 점을 토로하는 민원을 직접적으로 받는 입장이면서도 또 자주 마주치고 엮일려면 엮일 수 있는 자리여서 그런지 멋쩍게 사과를 하시거나 하얗게 태워버릴 듯 화를 내다가 휙! 돌아 나가시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필요한 사항이 생기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오셔야 하는 곳이 관리사무소다.


여기서 하나 비밀을 말해주자면, 생각보다 사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있다. 예를들면 얼굴 또는 목소리 아니면 어떤 눈에 들어온 특징들. 그런 것은 기억에 남기 쉽고 다음에 방문을 하신다면 알아 볼 수도 있다. 다만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이때 아는 척하고 해당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아는 척하면 소년 소녀처럼 얼굴이 붉은 토마토로 변하기도 한다. 좀 귀엽게.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이었다. 역시 주제는 주차다. 각 아파트마다 차량 등록 1대에 얼마, 2대에 얼마, 3대, 4대, 차량이 하나씩 증가 할 때마다 주차비 또는 주차료라는 이름으로 관리비에 포함되는 비용이 추가 된다. 차를 팔거나 폐차처리를 하게 되는 경우는 아파트 전산에 등록된 차량을 삭제 또는 해지를 하게 된다. 주민은 개인적인 사유로 차량 해지를 신청하러 오셨다.


"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을까요?" 무표정으로 일하던 얼굴에 미소 가면을 쓰고 인사를 해본다. "네 차량 해지 하려구요"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다 되었다 안내를 했다. "네. 저 근데 주차비를 오늘까지 일할 계산되는거죠?" 라는 질문을 받았다. '어! 어... 이런 질문은 처음인데...' 속으로 많이 당황했지만, "네 그렇죠."라고 자연스럽게 대답을 했다. 대략 얼마나 나올지 예상 금액만 알려달라고 안하면 괜찮다. "그럼 얼마나 나올까요?" 아 계산을 해본적이 없던 나는 바싹 마른 입 안에 숨어있는 침을 겨우 찾아 삼켰다. 잠시만요라는 답변과 함께 잘 안쓰는 계산기를 찾아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며 찾아온 입주민의 동 호수를 여쭤보고 전산에 입력된 차량이 2대인지 3대인지 확인한다.


대리님께 설명만 들었지 한번도 계산해본적 없는 주차비 일할 계산 하는 방법을 생각하며, 해당 세대에 등록된 차량이 2대라는 것을 확인했다.


탁탁탁탁 타다닥 탁. "7천 300원에서 400원 사이 나올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닐 계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민이 보고 있는 가운데 앞에서 계산을 해서 말해본 적이 없는 나는 스멀스멀 손에 땀이 났다. "계산 잘 하신거 맞아요? 어떻게 그 금액이 나와요?" 예열도 없이 버럭! 흥분한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다시한번 탁탁탁탁 타다닥 탁. 계산기를 두드봤다. 2대의 주차비 20,000원 11월은 30일. 20,000원 나누기 30일 은! 하고 나온 금액에 오늘까지의 날짜를 곱하면 7333.333... 맞게 계산을 했다. 다만 우리 아파트가 계산 하는 방식이 올림으로 할 수도 있고, 버림으로 할 수도 있으니 대략적인 예상금액도 맞게 말씀 드린것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한번 똑같은 금액을 말씀 드렸다.


"아니 2대 주차비가 만원인데 11일 주차 했다고 그 금액이 나오냐고요." 입주민의 얼굴이 복숭아가 되었다. "아. 우리 아파트는 차량이 2대면 2만원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을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점점 부풀게 불었던 풍선을 손에서 놓쳐 푸슈슉 바람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주민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더니 "아 네! 감사합니다."하고 휙!! 돌아서 나가버린다.


좋은 차 타던 사람인데 조망간 또 차량을 등록하러 올 것 같은데 그때는 어떻게 오시려나. 그때는 계산하는거 안 물어보셨으면 좋겠다. 입주민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진짜 얼굴에 기름지는 일이다.


또 한번은 점심을 먹기 위해 사무실 불을 끄고 점심시간임을 알리는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잠그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들어와 아파트 게시판 광고를 문의 하겠다고 하셨다. 설명을 들어보고 바로 광고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나를 비롯해 과장님도 지금은 점심 시간이라고 조심히 이야기 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을 위해 끈 조명처럼 내 미소 가면도 어디 던져놨는지 표정관리가 안됬었나보다. 우리는 관리사무소 한켠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지나면 혼자 밥 먹기가 애매하기도 하다보니 미소 가면이 아니라 썩은 가면을 쓰고 있었나보다. 그게 기분이 나쁘셨나보다. "저도 점심시간이라는거 알아요. 그런데 그걸 그렇게 몇번이나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그런 얼굴로?" 그제서야 내 얼굴 표정에 기분 나쁜 티가 팍팍 났었나보다 인정하고 사과했다.


결국 그 분은 볼일을 다 보지 못하고 나갔다. 그리고 한시가 조금 넘어서 다시 오셨다. 아까랑은 확연히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다. 미소 가면을 벗고 무표정으로 최소한의 말만하고 일 아파트 내 게시판 광고 일 처리를 마무리했다.


처음에 광고한 기한이 다 끝나고 다시 광고를 위해 방문 하셨다. 그 날은 점심 시간을 피해서 오셨다.


예전에 어릴 때 친구들과 한 잔하러 가면 가게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그 때랑 애인이 바뀌어서 와도 모른척 해드립니다." 라는 한 문장을 보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뭐가 기억이 나서 모른 척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사람의 기억력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문장이 와 닿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이래서 옛 어른들 말씀이 어딜가나 행실을 바로 하라고 하셨나보다. '설마 알아보겠어'라고 생각하고 말 그대로 막! 했던 행동을 누군가는 기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첫 인상은 생각보다 힘이 강하다. 좋은 첫 인상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 반대인 경우 인식을 바꾸는게 어렵고 생각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입주민이 관리사무소의 직원을 보고도 그렇게 기억에 남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도 사람이라 강한 인상과 반복되는 상황이 있다면 똑같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동그라미 아파트 김주임. 모르는 척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람. 사람!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