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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사람...

by 김주임 Jan 22. 2025



  어렸던 어느 날 나는 한국도, 한국어도,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싫었던 적이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났다. 혼자 떠났다. 거진 하루를 비행기를 타고 멀리 도망쳐 버렸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약해빠진 모습이라 티를 내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도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떠났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1주일정도 문화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자신감과 용기가 있었는지, 영어라고는 일절 할 줄도 모르면서 유럽으로 떠났다. 심지어 여행하는 중에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기기도 잃어버려서 혼이 쏙 빠져나가기도 했다. 외국인들의 배려를 받기도 했고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을 보며 한 자리에 맥없이 앉아 있기도 했다. 발이 퉁퉁 붓도록 이리저리 헤메이며 다녔다. 


 영 대화도 안통하고 음식도 다 니글니글하고 여행이 끝나갈 즈음에는 친구 한 명쯤은 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그 때의 나는 친구과 일정이 맞았다고 하더라도 혼자 다녀왔을 것이다. 진짜 한국과 관련된 모든것에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냈던 내가 못해도 2000여명은 족히 살 것 같은 아파트로 출근하게 되었다. 사람에 지쳐서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싫었는데, 이제는 이렇다할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닌 오롯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를 위해서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미소는 아니지만 적당히 '미소 가면'을 얼굴 위에 덮고 출근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두고 영혼 없이 일하는 것 아니냐. 다 아파트 주민이 주는 관리비로 월급 받는거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월급을 주는 회사에 늘 진심과 영혼이 가득찬 밝은 미소로 일하는가? 오롯이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청에서도 그 날 밥이 짜게 나왔는지 인상을 가득 구기고 진짜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응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나는 최소한 '미소 가면'이라도 쓴다. 가면이라고 해서 쉬운 것이 아니다. 결혼 한 여자들이라면 웨딩 촬영을 해봤을 것이다. 그 때 하루 종일 웃는 얼굴을 유지 하라고 한다. 그 날의 얼굴 경련을 떠올려 본다면, 가면도 쉬운게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저는 아직 결혼을 안해서 그런 경험이 없는데요?'라고 한다면 앞으로 책을 몇 장을 읽는 내내 치아가 최소 6개는 보이는 미소를 유지해봐라. 가면도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게 웃고 있는데 주민이 찾아와 "제 말이 웃겨요?" 이럴수도 있고 면전에 "아줌마" 혹은 "여보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표정을 굳히면 본인의 말을 무시하는거냐고 장난하냐고 하는데 그때는 정말 똑같이 받아쳐주고 싶은 욕구가 꿀렁 꿀렁 올라온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상황은 그래도 끝이 있다. 우리는 앵무새 같아도 정해진 원칙대로 이야기를 해야하고 그게 무너지면 모든 세대의 각 사정에 맞춰서 일관성 없이 그때 그때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해주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완전히 새 되는거다. 


 새 된 기분을 얼음 동동 띄운 차디 찬 냉수 한잔으로 눌러 내리고 조금만 견디면 어디선가 힐링의 소리가 들려온다. 뾱뾱뾱뾱뾱 이제 걷는게 익숙해진 어린 아가들이 일명 뾱뾱이 신발을 신고 줄기차게 뛰어간다. 킥보드를 타고 도로로로로록 지나가기도 하고 뭔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빽! 울면서 엄마를 찾기도 한다. 


 나의 약점은 귀여운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점이다. 알러지 때문에 동물은 키우지도 못하는데 강아지 고양이를 좋아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를 좋아하고 작고 순두부 같이 순수한 아기들의 원초적인 귀여움에 사족을 못 쓴다. 나도 모르게 빙긋 웃기도 한다. 젊은 엄마들의 센스로 엄청 귀엽게 입히거나 어른스럽게 입히거나 아이의 고집이 생겨서 한 여름에 패딩을 입는다거나 더운 날 장화를 신은 모습도 귀엽다. 


 그런 아이들이 유치원 하원을 하는 시간에는 일부러 사무실을 나가서 조금 돌아가야하는 화장실을 들리고는 한다. 그 짧게 마주치는 귀여움이 한 번에 몰려오는 시간을 짧지만 강렬하게 만끽하고 돌아오면,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속에서 화가 치밀어오르던 기분이 '피식' 웃으며 몽글몽글하게 하루의 업무를 마무리 한다.



 사람에 상처받아 놓고 사람을 위해 일하고 다시 사람을 통해 기분이 전환되는 요상한 직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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