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가 너무 좋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내가 처음 시를 인용했던 마음은 순수했다. 시는 내게 세상의 틈을 비집고 스며드는 은유였고, 언어의 무늬였다. 천양희 시인의 『목이 긴 새』와 『2월은 홀로 걷는 달』로 시작된 시를 들려주는 일은 황인찬의 『무화과 숲』, 유하의 『끝없이 부서지는 파도같이』, 고영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사인의 『화양연화』,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최영미의 『선운사에서』로 이어졌다.
브런치에 연재하던 『AI로 그린 아포리즘, 시로 엮은 한 줌 에세이』 시리즈에서 이 작품들을 마음껏 소개했고, 언제나 출처를 밝히는 성실함을 잊지 않았다. 그 출처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게 시인을 향한 예의였고, 시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지한 생각이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서울시민대학의 <저작권이 뭐길래? SNS와 콘텐츠 창작자를 위한 필수 법칙> 강의였다. 그날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작권위원회 소속 전담 강사의 말은 명확하고 단호했다. “출처를 밝힌다고 해서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다. 출처를 밝히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믿었던 행동들이 그동안 창작자의 권리를 조용히 침범해 왔던 것이다.
열심히 『AI로 그린 아포리즘, 시로 엮은 한 줌 에세이』에서 아포리즘의 풍경을 기록하던 중, 『AI로 7일 만에 자기역사쓰기』 출간을 앞두고 출판사의 편집장님과 상의하던 중 진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일반 단행본에 시 한 편을 전부 인용할 경우 사용료는 6만 3,530원. 1연이 넘지 않게 인용해도 3만 8,120원, 2연 이상이지만 절반이 넘지 않을 경우 5만 820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출처만 밝히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시 한 줄을 애정으로 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에는 대가가 따랐다. 사랑에도 책임이 따르고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연재는 이미 『아포리즘의 풍경』 16편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 이후 17편부터는 시를 발행하는 매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사용한 시들이 퍼블릭 도메인인지 하나하나 확인하고, 출판사에 문의하며, 한국저작권위원회 자료도 꼼꼼히 찾아봤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저작권 소명 작가 목록을 받아, 그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장들을 다시 고르고, 글을 다시 썼다. 때로는 허락을 구하는 메일을 직접 쓰며, 기대와 조심스러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답을 기다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저작권을 하나의 벽으로만 여겼다. 창작을 방해하는 장벽, 영감의 흐름을 막는 규칙.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작권은 창작자를 위한 울타리이다. 그 안에서 창작자는 보호받고, 독자는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시를 인용한 이유는 그 시가 너무 좋아서였지만, 그 좋아함의 방식 또한 시인과 시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해야 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교육과정은 그런 깨달음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각 연령과 직군에 맞춘 강의가 다양했고, 산업 종사자, 대학생, 교사, 청소년, 학부모 등 각 계층에 맞춘 교육이 마련되어 있었다. 'OTT 콘텐츠와 저작권', 'AI 창작물과 저작권', '창작자를 위한 쉬운 계약 가이드' 등 현실 밀착형의 실용적인 프로그램이 돋보였다. 이런 교육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나는 민망할 정도였다. 교육을 통해 나의 무지를 마주했고, 더 나은 창작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니 거듭나고자 다짐했다.
『아포리즘의 풍경』 17편 이후부터는 하나하나 출처를 넘어서 허락 여부까지 확인하며 글을 썼다. 그 과정은 마치 불투명한 유리창을 한 겹씩 닦아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저작권은 나를 가두는 철장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약속이라는 것을.
여전히 글을 쓴다. 그러나 이제는 묻는다.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 내가 사용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제 더 이상 “출처만 밝히면 되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는 저작권을 지키며 글을 씁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나의 문장을 인용할 때도 같은 마음이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언어로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니까.
아이쿠 실수했습니다.
응모부문_산문인데, 응모부문_시로 했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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