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견 핀과 오르카 틸리쿰의 이야기
우리는 흔히 동물을 ‘사람을 돕는 도구’ 혹은 ‘자연 속의 일부’로만 여깁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사건들은 동물이 더 이상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질문을 던집니다.
경찰견 한 마리의 희생이 법을 바꾸고, 범고래 한 마리의 저항이 산업을 흔들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동물도 권리를 말할 수 있을까?”
2016년 영국 스티버니지에서 경찰견 ‘핀(Finn)’은 강도범을 추격하다 칼에 찔렸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범인의 자기방어권을 인정했습니다. 이 판결은 시민들의 거센 분노를 불러왔고, 결국 2019년 ‘핀법(Finn’s Law)’이 제정되었습니다. 이제 경찰견을 해친 경우 자기방어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2013년, 군견은 단순한 ‘군 장비’가 아니라 ‘군견 장병’으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동물이 도구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주폴리스’의 상상
캐나다 퀸스대학 철학자 수 도널드슨과 윌 킴리커는 『주폴리스』에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속한 정치 공동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동물복지·권리 담론이 더 이상 동물운동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동물권력』의 저자 남종영 기자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동물을 다룰 때 돌봄을 받는 대상, 해방이 되어야 할 ‘수동적 객체’로만 여길 뿐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다”(p.342).
두 학자는 이어 “모든 동물에게 보편적 기본권이 있다”며,
버림받지 않을 권리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
서식지를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p.343)를 제시합니다.
이 주장은 동물이 객체가 아니라 시민적 권리를 가진 주체라는 새로운 상상으로 이어집니다.
1. 영국에서는 경찰견 ‘핀’ 사건을 계기로 2019년 ‘핀법(Finn’s Law)’이 제정되었고, 미국에서는 2013년 군견이 ‘군견 장병’으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동물이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보여줍니다.
캐나다퀸스대학의 동물권 철학자 수 도널드슨과 윌 킴리커는 『주폴리스』에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속하는 ‘동물 정치 공동체’ 개념을 제시하며, 기존 동물복지·권리 담론이 “더는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동물권력』의 저자 남종영 기자 역시 “우리가 동물을 다룰 때 돌봄을 받는 대상, 해방이 되어야 할 ‘수동적 객체’로만 여길 뿐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다”(p.342)라고 말합니다. 두 학자는 이어 “모든 동물에게 보편적 기본권이 있다”며 “버림받지 않을 권리,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 서식지를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p.343)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은 동물에게도 보편적 기본권이 있다는 이 주장이 어떻게 다가왔나요?
캐나다 퀸스대학의 동물권 철학자 수 도널드슨Sue Donaldson과 윌 킴리커Will Kymlicka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주폴리스’zoopolit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주’zoo는 동물을 뜻하고, ‘폴리서’polis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즉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치 공동체를 의미한다. 두 학자는 민주주의라는 원칙으로 인간과 동물을 아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주폴리스는 인간과 동물이 모두 속한 ‘동물 정치 공동체’다.
두 학자는 “동물 운동은 난관에 봉착했다”는 문장으로 『주폴리스』를 시작한다. 동물복지, 동물 권리, 생태학 이론이 더는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은 정치적인 기획이 없다는 데 있다. 고통에 기반한 이론들은 ‘공장식 축산 반대’라는 대문자 정치나 ‘채식’으로 끝나는 개인적 윤리 지침에서 멈춰 버리고 만다.
학계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철학, 지리학, 인류학에서 만개하고 있지만, 정치학에서는 여전히 동물은 소외된 주제다. 우리가 동물을 다룰 때 돌봄을 받는 대상, 해방이 되어야 할 ‘수동적 객체’로만 여길 뿐 우리 사회를 이루는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두 학자는 모든 동물에게 보편적 기본권이 있다고 말한다. 보호자로부터 버림받지 않을 권리,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 서식지를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 같은 것들 말이다. 전통적인 동물권 이론과 동물 운동이 요구했던 바다.(pp.342~343)
https://www.youtube.com/watch?v=Ka-zfr6dSE4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쉬>(2013)는 시월드에서 사육된 오르카 틸리쿰 사건을 고발했습니다. 오르카는 가족 단위로 바다를 이동하며 살아가는 고도의 지능과 사회성을 지닌 해양 포유류입니다. 그러나 틸리쿰은 전혀 다른 삶을 강요받았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일 밤 주 공연장 옆의 비좁은 물탱크에 들어가야 했다. 길이 9미터밖에 되지 않는 ‘철제 깡통’은 몸길이 23미터는 족히 되는 범고래 세 마리가 밤을 보내기에 지나치게 좁았다”(pp.321~322).
좁은 수조, 사회적 고립, 불규칙한 먹이와 체벌 속에서 틸리쿰은 점점 분노와 우울에 휩싸였습니다. 그의 저항은 결국 트레이너 사망 사건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4. 분노인가 메시지인가 ― 우리에게 남은 두 가지 질문
남종영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틸리쿰은 그저 비좁은 수족관이 참을 수 없어서 반란했다… 그리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었고 세상의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p.246).
그렇다면 틸리쿰의 저항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한 ‘억압된 분노의 폭발’이었을까요?
아니면 인간 사회에 던진 ‘무의도적 저항의 메시지’였을까요?
이 질문은 독자 모두가 스스로 답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입장 논제
2.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쉬>(2013)는 시월드에서 벌어진 틸리쿰 사건을 중심으로 오르카(orca, 범고래) 사육 산업(orca captivity industry)의 문제를 고발했습니다. 오르카는 가족 단위로 살아가며 넓은 바다를 이동하는 고도의 지능과 사회성을 지닌 해양 포유류입니다.
그러나 틸리쿰은 “매일 밤 주 공연장 옆의 비좁은 물탱크에 들어가야 했다. 길이 9미터밖에 되지 않는 ‘철제 깡통’은 몸길이 23미터는 족히 되는 범고래 세 마리가 밤을 보내기에 지나치게 좁”(pp.321322)은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 남종영은 “틸리쿰은 그저 비좁은 수족관이 참을 수 없어서 반란했다”, “그리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었고 세상의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p.246)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틸리쿰의 저항은 단순히 ‘억압된 분노의 폭발’이었을까요, 아니면 인간 사회에 던진 ‘무의도적 저항의 메시지’였을까요? 여러분은 틸리쿰의 저항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셋은 하루 여덟 번씩 365일 동안 쉬지 않고 쇼를 했다. 점프를 하고 물을 튀기면 죽은 생선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항상 부족할 만큼 주었다. 다른 범고래보다 서열에서 아래였던 틸리쿰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매일 밤 주 공연장 옆의 비좁은 물탱크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길이 9미터밖에 되지 않는 ‘철제 깡통’은 몸길이 2~3미터는 족히 되는 범고래 세 마리가 밤을 보내기에 지나치게 좁았다.
게다가 범고래는 음파를 쏜 뒤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반사파를 감지해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주변 상황을 읽는다. 이를 반향정위echolocation라고 하는데, 범고래가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은 사람으로 치자면 사방이 거울로 도배된 엘리베이터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과 비슷했다.(pp.221~232)
나는 틸리쿰의 저항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쯤에서 이렇게 걸고 넘어지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틸리쿰에게 저항할 의도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고려 시대 반란을 일으킨 노비 만적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근대 민주주의’를 알아서 봉기한 것인가?
아니다. 그는 계급이 폐지된 세상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허기와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삶의 밑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창을 들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마찬가지다 틸리쿰을 그저 비좁은 수족관이 참을 수 없어서 반란했다. 갑갑한 일상이 죽을 만큼 싫어서 반란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엄마가 생각나서 반란했다.
그리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었고 세상의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p.246)
경찰견 핀의 법 제정, 군견의 지위 상승, 그리고 틸리쿰 사건은 우리에게 같은 메시지를 던집니다.
동물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고, 행동하며, 때로는 저항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주체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동물도 권리를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존중받는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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